동인문학상 시상식장의 어떤 축사

[스페셜리스트 | 문학·출판] 어수웅 조선일보 문화부 차장

어수웅 조선일보 문화부 차장

▲어수웅 조선일보 문화부 차장

문학 담당을 지낸 탓에, 알고 지내는 소설가가 좀 있다. 그 중 마흔여덟 동갑내기 A와는 말 놓고 지낸지도 20년 가까운 사이. 지난주 조선일보가 주최하는 동인문학상 시상식이 있었다. 수상자는 열 살 아래 김애란씨. 축사는 A의 몫이었다. 5시에 시작하는 시상식이었는데, 그는 몇 분 뒤에 쭈뼛거리며 지각 입장했다.


축사 역시 특유의 머뭇거림으로 시작했는데, 세 가지 사례를 들었다. 처음 든 예가 시인 백석(1912~1996). 백석의 나이 마흔여덟 때의 일이다. 주지하다시피 그는 ‘주석님’께 충성을 바치는 시를 쓰지 않은 죄로, 이데올로기에 봉사하는 시를 쓰지 않는다는 이유로, 저 추운 함경도 삼수갑산으로 ‘귀양’을 갔다. 양치기나 하라는 것이었다. 마흔여덟에 시를 빼앗기고 절필해야했던 시인의 비극이라니.


지난 가을호였던가. 그는 계간지 문학동네에 ‘낯빛 검스룩한 조선 시인’이라는 제목으로 백석 소재의 단편소설을 발표한 적이 있다. 당시 이 단편을 읽고 이런 문자메시지를 그에게 보냈다. “우리 나이 때의 백석 마음을 네 글로 읽으니 만감이 교차하는구나. 잘 지내라.” 그의 대답은 이러했다. “이 나이에 갓난쟁이 데리고 삼수갑산에 간 사람 생각하며 잘 지내자.” 마흔여덟은 절필하기 좋은 나이인 걸까.


두 번째 예로 넘어가자. A가 열일곱 열여덟인가, 기운 좋을 때 읽었다는 한 인터뷰집이었다. 그가 꽤나 꼼꼼하게 읽었다는 소설가들의 문학 고백록. 소설가 오정희 강석경 조정래 황석영 등이 펄펄한 기세로 등장했다는데, 책이 나올 당시 이 작가들의 나이가 마흔여덟 안팎. 중요한 대목은 이후 3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들 대부분이 소설을 쓰고 있다는 것이다. 마흔여덟에 절필해야 했던 백석과 달리, 칠순이 넘어도 기세 좋은 현역들.


이제 세 번째이자 마지막 사례로 넘어간다. A의 인용은 일본의 하이쿠 시인 고바야시 잇사(1763~1828). 살아서 지옥을 경험한 시인의 인생이다. 나이 쉰둘에 스물여덟 젊은 여자와 결혼을 했다는 것. 그 때까지만 해도 잇사에게 인생은 살 만한 것을 넘어 천국이었을지도. 하지만 그 다음부터 지옥문을 넘는다. 장남은 태어난 지 한 달이 되기 전에 죽었고 이듬해인가 낳은 딸은 천연두로 한 살을 채 살지 못했다. 셋째는 엄마 등에 업혀 질식사. 역시 백일도 지나지 않은, 그것도 설날의 변사였다. “어서 제발 한번만이라도 눈을 떠라 떡국상”이 그 때 쓴 하이쿠. 그의 나이 58세였다. 이제 지옥은 끝난 것일까. 천만에. 넷째 역시 죽었다. 그 때 하늘은 아내까지 함께 데려갔다고 한다.


‘세상은 지옥’이라는 표현을 우리는 클리셰로 생각한다. 하지만 잇사라면 ‘세상은 지옥’이라고 말할 자격이 있지 않을까. 그는 이렇게 썼다. ‘세상은 지옥. 그렇지만 위에서 하는 꽃구경이어라.’


A는 ‘그렇지만’ ‘이지만’의 힘이 문학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후배에게 당부하는 것이다. 나보다 열 살이나 어린 팔팔한 나이라고, 전도유망한 나이라고, 그러니 당근은 오늘만 먹고, 내일부터는 채찍으로 달리라고. 피처럼 붉은 땀을 흘린다는 한무제의 한혈마처럼, 피땀 쏟아가며 쓰시라고 말이다. 백석처럼 나라가 펜을 빼앗는 일만 없다면, 칠순에도 현역인 선배들처럼, 세상이 지옥이어도 시를 놓지 않았던 잇사처럼.


한혈마처럼 달려야 할 사람이 김애란씨 뿐일까. 이날 참석자들만 듣기엔 아까운 것 같아 기자협회보에 기록으로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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