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희롱 예방교육 시간만 때운다

온·오프교육 이뤄지지만 형식적
미수강 불이익 없어 참여율 저조
회사 차원의 교육 독려 필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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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일간지 A기자는 지난달 말 회사 내 성희롱 예방교육에 참석했지만 교육을 제대로 듣지 못했다. 보고 시간보다 앞서 교육이 진행되는 탓에 교육 내내 보고를 준비해야 했기 때문이다. A기자는 “성희롱 예방교육 받는 걸 알면서도 보고 시간을 늦춰주지 않아 어쩔 수 없었다”며 “연말이라 언론사마다 성희롱 예방교육이 열리고 있는데 실효성 있게 진행되는 곳이 얼마나 될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최근 한샘 등 일부 기업에서 직장 내 성범죄 논란이 이슈화되고 언론사에서도 성범죄가 심심찮게 일어나고 있지만 정작 성희롱 예방교육은 형식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성희롱 예방교육은 남녀고용평등법 제13조에 따라 법정의무교육으로 지정돼 연 1회 이상 교육을 해야 하지만 대부분의 언론사에선 ‘시간 때우기 식’ 교육이 이뤄지고 있는 형편이다.


최근 한샘 등 일부 기업에서 직장 내 성범죄 논란이 이슈화되고 언론사에서도 성범죄가 심심찮게 일어나고 있지만 정작 성희롱 예방교육은 형식적으로 이뤄져 비판이 일고 있다. 사진은 여성가족부가 제공하는 성희롱 예방교육 자료 캡처.

▲최근 한샘 등 일부 기업에서 직장 내 성범죄 논란이 이슈화되고 언론사에서도 성범죄가 심심찮게 일어나고 있지만 정작 성희롱 예방교육은 형식적으로 이뤄져 비판이 일고 있다. 사진은 여성가족부가 제공하는 성희롱 예방교육 자료 캡처.

기자협회보가 종합일간지 9개사와 경제지 3개사, 지상파 방송 3개사를 대상으로 성희롱 예방교육 현황을 조사한 결과 이들 언론사에선 온라인을 이용한 사이버 교육과 강사를 섭외해 단체 강의를 하는 방식으로 성희롱 예방교육을 하고 있었다. 올해 기준 7개사가 사이버 교육을 진행했고, 단체 강의는 2개사가 선택했다. 6개사는 온라인과 오프라인 교육을 병행하고 있었다.


문제는 사이버 교육은 사이버 교육대로, 단체 강의는 단체 강의대로 형식적 교육이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사이버 교육의 경우 강제성이 없다 보니 틀어놓고 다른 일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종합일간지 B기자는 “일이 바쁘다보니 동영상을 틀어놓고 기사를 쓴다”면서 “동영상 말미의 테스트도 상식 수준에서 풀 수 있어 제대로 들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통신사 C기자도 “일이 바쁘다보니 3시간짜리 영상을 틀어놓고 클릭만 하면서 영상을 넘긴다”고 했다.


동영상 제공 업체마다 수준이 천차만별인 것도 문제로 지적됐다. 종합일간지 D기자는 “성희롱 예방교육은 주로 개인정보보호교육과 같은 다른 법정의무교육과 같이 받는 경우가 많아 주목도가 떨어진다”면서 “강의 수준도 ‘이걸 들어야 하나’ 싶을 정도로 쓸모없는 내용이 많다. 이런 식의 교육이 성희롱 예방에 무슨 의미가 있을까 싶다”고 비판했다. 경제지 E기자도 “여기자들을 중심으로 동영상 교육이 너무 성의 없다는 얘기가 종종 나온다”며 “집체교육을 해야 한다는 목소리들이 많다”고 전했다.


반면 단체 강의를 한다고 해도 자질 없는 강사가 성희롱 예방교육을 해 논란이 일기도 한다. 세계일보 F기자는 “지난 성희롱 예방교육 때 강사가 자신의 차에 탄 여성 직원에게 포르노를 보러 가자고 한 남성 직원의 사례와 인사 좀 하라며 신문지로 엉덩이를 친 사례를 설명하며 이 사례들이 성희롱이 아니라고 해 문제가 됐다”며 “2001년 기사에 소개된 사례를 그대로 긁어와 교육하다 문제가 된 거였다. 회사에 섭외 이유를 물으니 정보보호교육을 같이 할 수 있는 강사라 섭외했다고 답했는데 그만큼 전문성이 없는 사람이었다”고 했다.


업무 특성 상 참여율이 저조한 것도 문제다. 매일경제는 매년 강당에 모여 강의를 듣지만 출석체크를 하지 않아 많은 기자들이 강의를 듣지 않고 있다. 매일경제 G기자는 “성희롱 예방교육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내용을 전혀 모른다”면서 “입사 이래 지금까지 교육에 간 적이 한 번도 없다”고 말했다. 종합일간지 H인사팀장도 “작년까지 직접 강사를 초빙해 교육을 진행했지만 연말에 기자들이 바쁜 관계로 참여율이 낮아 교육에 차질이 많았다”며 “고용노동부 자문을 받아 올해부터는 노동부가 제작한 동영상으로 교육을 하고 있다”고 했다.


일부 기자들은 ‘직장 내 성희롱을 예방하자’는 교육 취지를 제대로 살리기 위해선 결국 회사가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겨레 I기자는 “2011년부터 회사가 성희롱 예방교육 미 이수자의 연수 기회를 박탈하거나 주요 교육 신청을 못 하게 막고 있다”며 “그 이후부턴 기자들이 100% 교육을 수강하고 있다”고 말했다.


헤럴드경제는 아예 사단법인 여성노동법률지원센터를 통해 성희롱 예방체계 컨설팅을 받고 있다. 지난 6월부터 설문조사와 심층면접조사를 통해 성희롱 인식과 실태를 정밀 조사한 헤럴드는 이달 말 맞춤형 교육방식이 담긴 2차 보고서를 낼 예정이다. 헤럴드 관계자는 “형식적인 성희롱 예방교육을 뛰어넘기 위해 컨설팅을 진행하고 있다”며 “실태 조사 결과 성희롱 수준이 심각하지는 않으나 언어적 성희롱에 무감각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맞춰 교육 방식을 재설계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한국경제, SBS와 같이 성희롱 관련 내규를 마련한 곳도 있다. SBS는 지난 1일부터 성희롱·성폭력 징계 내규를 확정해 시행하고 있다. 한국경제 역시 지난 9월1일 ‘성희롱 예방과 조치에 관한 규칙’을 공표하고 성희롱 발생 신고·징계 등과 함께 성희롱 예방교육을 내용에 담았다. 조재길 한국경제 기획조정실 차장은 “사내 여기자들이 중심이 돼 시작했고 이후 노사 모두 협의에 참여해 규칙을 사내에 공표했다”고 말했다.

강아영 기자 sbsm@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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