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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업 석 달…KBS 기자들이 바라는 세상

최승영·강아영 기자2017.11.29 13:57:56

파업뉴스팀에서 ‘진짜 기자’를 알아가다
허효진 기자(사회2부·2014년 입사)


87일. ‘파업의 시간’이 흘러간다. 파업은 목소리의 시간이다. 공영방송 KBS기자들 머리 수만큼 다양할 ‘미래 보도국의 상(像)’이 ‘제대로 된 뉴스’를 하고 싶다는 열망의 구심력에 팽팽히 매달린 상태. 승리를 확신하면서도 불안감이 슬며시 고개를 든다. 유약해서가 아니라 간절하기 때문에 그렇다. 보도국을 뛰쳐나온 기자들에게 지금은 어떤 의미일까. 어떤 시간이었고, 무엇을 하고 있을까.


지난 23일 4년차 허효진 기자는 빨갛게 양볼이 언 채 나타났다. 광화문에 눈발이 날린 이날 오후 세종문화회관 계단에서 열린 집회에 참석했다. “오늘 저희(KBS 사람들)만 왔는데 진짜 많이 왔어요. 수를 짐작할 수 없는데 계단을 꽉 채웠어요. 집회 참여 조합원 수도 줄지 않는 거 같아요. 다들 같은 마음이구나 싶어요.” 코를 훌쩍이던 허 기자가 집회 분위기를 묻는 질문에 들뜬 듯 답했다. 이날 집회엔 약 400여명이 자리했다.


허효진 기자

▲허효진 기자

주니어급 허 기자에겐 첫 파업이다. “입사 해보니…하아…그게 진짜 생각하는 거랑 달랐다”고 그는 말했다. 시키는 걸 잘 하는 데 방점이 찍히는 시기. 경찰서를 돌았고, 시청출입을 했다. 지역순환근무를 마치고 북한부에서 근무하다 사회2부에 왔다. 시키는 걸 할수록 좌절감이 쌓였다. ‘네가 뭘 아냐’고 물으면 할 말이 없어지는 연차의 기자는 “포기하게 되고”, “괴로움만 늘어가는”, “체념의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최근에 ‘공범자들’을 보면서 많이 울었어요. 최순실 게이트 때 KBS가 북한방송을 많이 했다고 나오는데 제가 그때 북한부였어요. 국민들이 정작 중요한 걸 못 보게 만드는 데 저도 일조한 거죠. 너무 안일했던 게 후회돼요. 영화에서 제 리포트 도입부를 앵커가 가상 스튜디오에서 전하는 게 잠깐 나오는데 전 딱 안 거예요. 그걸 만든 기술직군 동기도 괴로워하더라고요.”


파업 기간 허 기자는 집회 참석 이외에 ‘파업뉴스팀’ 멤버로 뉴스를 만드는 일도 했다. 허 기자는 “(선배들에 대한) 믿음이 늘어가는 경험”, “이렇게도 할 수 있구나 싶었다”고 말했다. 현재 새노조 ‘파업뉴스팀’에선 약 20여명의 기자가 KBS 현안을 유튜브로 전하고 있다. 장비를 빌리고, CG를 맡기고, 평소 시간의 2~3배를 들인 결과물. ‘군 사이버사령부 댓글공작’ 보도는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저희가 취재해서 쓴 기사를 가감 없이 얘기하고 선배들은 최대한 존중해주는 게 너무 달라요. 인터뷰이 성별, 나이까지 지정해서 ‘해와라 아니면 네 책임’이 아니라 솔선하는 모습도 그래요. ‘당연히 내가 할 일이야’ 이러고 새벽까지 해서 최종본 올려주시고 그런 걸 보며 선배들 소중함을 생각해요.”


생각보다 길어진 파업, 허 기자는 이제 “일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배운 걸 잊어버릴까 겁도 난다고 했다. “일 안 해서 좋겠다”던 친구들도 이젠 “힘들겠다”고 걱정을 해준다. “언제 끝나려나” 부모님이 한마디 할 때마다 “잘 마무리되는 게 중요해요”라고 하지만 마음이 쓰이는 건 어쩔 수 없다. 허 기자는 “몇 주 전 집회 때 성재호 선배(새노조 위원장)가 ‘오늘을 파업 1일차로 생각하자’고 얘기했다. 당시 KBS 국정감사 때 국회에서 간부들 말을 듣는데 ‘또 똑같은 일을 되풀이 할 수 없다’ 저도 마음을 새로 먹었다”면서 “끝까지 선배들을 따라서 갈 생각”이라고 했다. “이 일이 저는 일기 같은 직업이라고 생각해요. 사회 전반을 매일 기록하는 일이요. 계속 이상하게 쓸 수 없으니 제대로 된 일기를 쓰는 곳이 되길 바라는 거예요.”

최승영 기자 sychoi@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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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리즘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
정연욱 기자(경인방송센터·2009년 입사)


정연욱 기자를 섭외하고 “식상하지 않냐”는 말을 많이 들었다. 9년차 기자는 지난 2년 새 KBS 이외 매체에 부쩍 많이 모습을 드러냈다. 사람들 앞에서 마이크도 많이 들었다. 지난해 회사 간부들을 비판하는 기고를 했다가 제주로 쫓겨나고 송사 끝에 복귀한 일이 없었다면 정 기자는 “집회도 가끔 땡땡이치고, 잘 안 보이는 중간이나 끄트머리 쯤에 앉았던 평범한 조합원”으로 이번 파업을 보낼 수 있었을지 모른다. 주어진 몫의 책임을 짊어지기로 했지만 그는 “평범한 기자고, 아직 보도로 두 발로 서지도 못했는데 부끄럽다”고 감회를 밝혔다.


어떤 경험은 사람을 바꿔놓는다. 그는 그 시간을 거치며 “KBS 보도본부에 대한 인간적인 신뢰, 그런 순진함이 없어졌다”고 말했다. 제주 발령 당시 국장급 간부 중 유일하게 ‘고생한다’는 문자를 줬던, ‘그 선배 그래도 후배들한테 잘 해준다’고 정 기자가 술자리에서 방어하던 바로 그 선배가 뒤에선 자신을 비난하고 다닌 걸 알게 된 시간. 법정에서 ‘제주 환경이 훨씬 좋은데 왜 부당노동행위냐’며 사측 편에 선 선배들을 본 경험. 정 기자는 “‘저 선배 선의는 그렇지 않은데 정치적인 흐름에 몸을 맡겨서 그런 거겠지’ 했는데 ‘철저하게 우릴 정치적으로 재단했구나’를 여과 없이 느낀 2년”이라며 “소중한 경험”이라고 말했다. 이어 “아직도 제작거부·파업에 동참하지 않는 기자들은 철저하게 지난 세월의 모순에 편승하고자 하는 정치적 욕심을 아직 버리지 못한 것”이라며 “기자로서 자격이 없다”고 덧붙였다.


정연욱 기자

▲정연욱 기자

벌써 6번째 파업이다. 정 기자는 2009년 고대영 사장이 보도국장이던 시기 입사했다. 정연주 사장 퇴진 직후 ‘몸싸움을 벌이던 기자’와 ‘팔짱 끼고 보던 기자들’로 확연히 양분된 보도국을 목격한 시절. 그에게 이번 파업은 어떤 의미일까. “당시 선배들은 치열하게 취재했고 위에선 보도를 막았어요. 그걸 내려고 정말 치열하게 보도투쟁을 했습니다. 지난 9년 KBS가 철저하게 망가졌음에도 저널리즘의 명맥을 유지한 단 하나의 이유라고 봐요. 파업을 통해 그 전통을 KBS의 주류로 교체하고자 하는 거죠.”


파업은 일을 멈춘 시간이다. 멎었기에 일에 대해 생각을 할 수 있는 시간이다. 벌써 3년째 KBS기자협회 집행부로 활동해 온 그는 KBS 기자들의 열망을 확인할 수 있는 자리와 연차에 있다. 기수별로 사적인 모임을 갖고, 보도국 밖으로 밀려났던 고참과 막내기자들이 마주하는 자리도 늘었다. ‘일 욕심 없는 한가한 선배인 줄 알았더니 그런 대단한 기자였냐’는 수군거림이 살아나는 순간. 앞으로 어떤 보도국을 꾸릴지를 얘기하는 기협 워크숍에선 너무 많은 말이 나와 놀랐다고 그는 전했다. “사실 10년차 미만 기자 사이에도 경력과 공채 기자간 보이지 않는 갈등이 있어요. 일부는 회사로부터 물타기 보도에 이용됐습니다. 저도 편견을 갖고 실망했는데 그 자괴감을 솔직하게 토로하고 파업에 열심히 참여하는 모습을 보며 반성이 됐어요. 고민 한 번 들어준 적 없으면서 편견만 가졌구나 했습니다.”


왜 그렇게 집회 때마다 우냐고 물었다. 그는 “KBS·MBC 파업은 행복한 파업이라고 생각해요. 많은 노동현장 파업은 신문 한 줄 나가기 힘든데 독립운동처럼 매일 노출되는 게 부끄럽고 멋쩍은 거죠. 관심 가져주시는 게 감동적이더라고요. 다들 공영방송 기자로 어떻게 살지 생각을 많이 할 거 같아요”라고 했다.

최승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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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영방송 우뚝 세우는 과정…함께 가자
김태선 기자(편집업무·1994년 입사)


김태선 기자는 지난 1994년부터 공영방송 KBS 기자로 살았다. 이젠 선배보다 후배들이 훨씬 많은 연차다. 그는 파업 후 집회에 열심히 참석했다. “나이 든 사람들도 쪽수 하나라도 더 채워 힘을 실어주자는 마음이었다”고 그는 말했다. “지난 2012년 파업 때는 가장 고참이어서 좀 부담 됐는데 이번엔 퇴직을 앞둔 선배들도 같이 하는 초유의 파업이라 편안하게 했다”고 지난 세 달을 돌이켰다.


김 기자의 재직 중 KBS에선 많은 일이 있었다. 그 역시 풍파를 비껴가진 못했다. 노무현 대통령 시절 청와대 출입을 하는 등 정치부에 5~6년을 있었다. 사회부에서 검찰경찰을 몇 년 씩 했고, 3년은 런던특파원으로 가 있었다. 파업 직전 김 기자는 편집 그래픽 업무보조를 맡고 있었다. 지난 2015년 국제부 근무 당시 ‘이승만 정부가 한국전쟁 중 일본 망명을 타진했다’는 보도가 논란이 일며 인사조치 끝에 현 업무를 담당하게 됐다. 청와대를 출입하던 기자가 지금 그 일을 맡는 경우가 흔하냐고 물었다. 그는 “그건 뭐 잘 모르겠습니다”라며 “허허” 웃었다.


김태선 기자

▲김태선 기자

그는 앞으로, 즉 ‘정상화’ 이후에 대한 고민이 깊어 보였다. 특히 현재 분열된 보도국을 어떻게 꾸려가야 하는 것인지 고심했다. “참 어려운 문제입니다. 과거 벌어진 일에 대한 진상규명이 이뤄져 그에 합당한 책임을 물어야 하는 건 사실인 거 같고요. 기자사회, 언론지형 전체 이런 차원에서 진지한 고민이 필요한 부분이라고 봐요.” 김 기자는 아직 파업에 참여하지 않은 이들에게 “지난 9년의 폐해에 어떤 평가를 내리는지 기자로서 소명을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파업을 하면 월급이 안 나온다. 그는 외벌이다. 아내와 수험생 두 아이가 있다. 얼마 전 월급이 아예 안 들어오거나 고작 몇 만원씩 들어오며 KBS 기자들은 파업을 피부로 느꼈다. 그는 “처음이 아니고 지난 2010, 2012, 2014년 때도 비슷하게 돈이 안 나온 거 같다. 마이너스 통장 한도액을 늘리고 그렇게 대비했다”며 “MBC, YTN은 수천 일씩 직장을 떠나 돈을 못 번 분도 계신데 몇 달은 아무 것도 아니다. 이 정도를 고통으로 여기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다만 가족들이 이해해 줘서 다행이라고 했다. “집사람도 많이 이해해주고, 아이들은 부담을 많이 안 주려고 해요. 돈 문제를 얘기 안하려고 하고요. 작은 애랑은 우리 최승호 PD 공범자들을 같이 봤는데 ‘파업 때문에 아빠 돈 못 받으니까 나라도 아껴야 된다’ 그런 농담도 해요.” 아이의 말에 김 기자는 “그런 걱정 말고 공부나 열심히 하라”고 했다.


그를 인터뷰 한 날 감사원은 KBS 이사들에 대한 감사결과를 내놨다. 이사에 대한 해임조치 등을 취하라고 방송통신위원회에 통보했다. ‘사장 퇴진’까지 이를 수 있는 희망적인 소식이다.


김 기자는 함께 파업 중인 동료들에게 “이제 8부 능선을 넘었다고 본다. 완전한 안심은 이르지만 조금 더 힘을 모아 마무리하자”며 “내부 문제를 개혁하고 달라진 미디어환경에서 공영방송을 우뚝 세우는 과정이 남아 있다. 끝까지 같이 가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그게 “먹고 살게 해 준 고마운 직장, 국민”에 대한 “보답”이라고 24년차 기자는 힘주어 말했다.

최승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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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누군가에게 따뜻한 적 있었나
김선영 기자(KBS청주 사회부·2006년 입사)


지난 9월4일부터 시작한 KBS의 파업엔 서울 본사뿐 아니라 18개의 지역KBS가 동참하고 있다. 50여명이 파업에 참여하고 있는 KBS청주 역시 마찬가지다. 김선영 KBS청주 기자는 “지역은 파업 참가 인원이 한정적이기 때문에 일당백의 역할을 하고 있다”며 “‘백수가 과로사한다는’ 우스갯소리가 들어맞을 정도로 힘들게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남들보다 더 빨리 일어나 출근길 선전전을 하고 매번 상경집회에 참가하는 등 소수의 인원으로 파업 프로그램을 소화하고 있다”고 했다.


몸과 마음이 지치면서도 이들이 파업에 참여하는 이유는 언론인의 자존심을 찾기 위해서다. 김 기자는 “MBC 기자들이 부당징계나 해고 등 눈에 띄는 물리적 폭력을 당했다면 KBS 기자들은 교묘한 정신적 학대를 당했다”며 “사람을 피폐하게 만드는 학대였다. MBC 기자들이 겪었던 것 못지않은 괴로움이었다”고 말했다.


김선영 기자

▲김선영 기자

그가 말한 KBS의 정신적 학대는 이런 식이다. 누군가 정권이 불편해할만한 아이템을 발제한다, 그러면 9시 뉴스 큐시트에 잡아놓는다, 기자는 열심히 취재한다, 방송 순서가 밀린다, 11시 뉴스에 잡히고 그 다음엔 자정 뉴스로 밀린다, 그러다 아침 뉴스광장으로 빠진다. 아이템을 발제했는데 큐시트에 넣지 않아 기자가 항의하는 경우엔 여러 차례 데스킹을 한다, 기계적 중립 잣대를 번번이 들이댄다, 기사가 순화된다. 그런 일이 촛불집회 보도나 충북 옥천에서 열리는 육영수 여사 추모제 반대집회 보도 등에서 벌어졌다.


김 기자는 “을지국에서 제작한 리포트는 총국에서 99.9% 받는데 촛불집회 리포트는 뉴스광장으로 빠지는 이례적인 상황도 발생했었다”며 “당시엔 바쁘니까 기자들이 몰랐다. 나중에 기자들끼리 뉴스 제작에 대한 얘기를 하면서 그런 일들이 다년간 교묘하게 일어났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기자들이 파업에 참가한 건 당연한 귀결이었다. “언론인으로서 범죄에 가까운 일이 벌어지는 것”을 더 이상 두고 볼 수 없는 일이었다. 다만 쉽지 않은 싸움이 될 거라고 생각했다. 김 기자는 “확신범들이 많았기에 지리한 싸움이 될 거라 생각했다”며 “역시나 그렇게 되고 있다. 회사가 뉴스를 제작하는 간부들에게 상여금 줬다는 얘기도 들리는데 그런 식으로 노노갈등을 유발하며 구성원들을 더욱 고통스럽게 만들고 있다”고 했다.


그는 이 파업이 이길 수밖에 없는 싸움이라고 했다. 얼마 전 KBS 이사진 업무추진비 감사 결과 역시 그 연장선상에서 봤다. “명명백백한 그들의 잘못을 단죄하는” 일이어서다. 그는 “그동안의 잘못을 되돌아보고 단죄하고 반성을 통해 공영방송이 걸어갈 길을 논의하고 이행하는 과정이 필요한데 지금 그 과정에 있다”며 “오히려 파업을 풀고 난 뒤가 더 중요하다. 공영방송 존립의 가치를 어떻게 세울 거냐는 어려운 문제가 남아 있다”고 했다.


문제의 답은 결국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국민의 공익성과 공공성을 최우선시하는 뉴스를 만드는 것”으로 귀결될 거다. 김 기자는 “이번 파업에서 유달리 손 잡아주고 눈 맞춰주며 우리를 응원한 시민들을 보며, 특히 ‘돌마고’ 행사 때 먼저 전화해 재능봉사를 하고 거마비까지 기부했던 예술단체 분들을 보며 우리가 누군가에게 이렇게 따뜻했던 적이 있나 하는 생각을 했다”며 “공영방송 언론인으로서의 역할을 뼈저리게 되돌아본 시간이었다. 그분들에게 두고두고 빚을 갚는 심정으로 일할 것”이라고 말했다

강아영 기자 sbsm@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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