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삶을 바꾸는 취재원

[그 기자의 '좋아요'] 손대선 뉴시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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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대선 뉴시스 기자

▲손대선 뉴시스 기자

10년 전 보건복지부를 출입할 때였다. 하자센터 부센터장을 하던 형님의 소개로 학교 밖 청소년들과 강화도로 하이킹을 갔다. 아이들은 저마다 곡절이 있었다. 자신들의 일탈을 내 앞에서 거리낌 없이 말했다.


그 아이는 그들 중 ‘보스급’이었다. 18세에 이미 세상의 비밀을 알아버린 아이였다. 가르치기 보단 같이 장난치려고 애썼다. 상경해서는 밥집 주인 눈치를 보며 소주도 몇 잔 나눴다. 며칠 뒤 학교 밖 청소년 기획기사를 쓰고 싶다며 도움을 청했다. 녀석이 구술한 사연이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2년 뒤 연락이 왔다. 여전히 부모는 별거 중이었고 아이는 습관처럼 집을 나와 찜질방을 전전한다고 했다. 민원이 있었다. 부산 편의점에서 ‘알바’를 하는데 ‘친구가 돈 떼먹고 튀었으니 붙잡아 달라’는 거였다. 도움은 못주고 같이 욕만 한 것 같다. 또 다시 2년 뒤 밥 사달고 전화가 왔다. 서울경찰청 식당에 데려가 경찰들 사이에서 함께 ‘짬밥’을 먹었다. “나쁜 놈들이 괴롭히면, 아저씨한테 일러바치라”고 말했다.


어느 봄날 대학에 입학했다고 연락이 왔다. 사회복지과였다. SNS 배경화면을 가득 채운 사회과학서적이 아이의 현재를 말해주고 있었다. 유치원 교사를 하다 1년 만에 ‘잘렸다’고 푸념하던 아이는 보험설계사가 됐다. 서울시청을 출입할 때도 찾아왔다. 밥을 먹다가, 아이의 첫 번째 자동차보험 고객이 됐다. 회사 후배는 태교보험을 들었다. 보험만료일이 아니더라도 연락을 해왔다. 늦장가 간 내가 딸을 얻었을 때에는 ‘유아용 비키니 수영복’을 보내 함박웃음을 짓게 했다.


얼마 전 결혼을 한다고 연락이 왔다. SNS에 수신된 청첩장을 확대해놓고, 이제는 새색시가 된 아이의 인생역정과 내 기자생활을 함께 복기했다. 지난 주말 부평에서 열린 결혼식에 갔다. 환한 웃음을 짓는 새색시에게 다가가려다 눈인사만 건네고 물러났다. 신랑이 내 정체를 알아서 득 될 게 없어 보였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흔해 빠진 간판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내 삶을 바꾸는 정치인’이던가. 아이가 SNS로 볼펜선물을 보내왔다. 사양했으나 ‘성의를 받으라’고 강권하니 나는 받을 수밖에. 볼펜은 아직 배송받지 못했다. 다만 나는 마음속에 ‘내 삶을 바꾸는 취재원’이라고, 이 사사로운 글의 제목을 꾹꾹 눌러 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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