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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의회 뒤흔든 성추문 파문

[글로벌 리포트 | 영국]김지현 골드스미스 런던대 문화연구 박사과정

한국기자협회2017.11.08 14:31:03

▲김지현 골드스미스 런던대 문화연구 박사과정

영국 보수당 내각이 잇따른 성추문 파문으로 곤욕을 치르고 있다. 테레사 메이 영국 총리의 최측근까지 성추문 스캔들에 휩쓸려 내각의 구조조정이 불가피한 상황이다.


파문의 시작은 마이클 팰런 국방장관이 한 여성 언론인의 몸을 부적절하게 만진 사실이 15년 만에 알려지면서다. 추문의 주인공인 팰런 장관이 잘못을 시인하고 사퇴했지만 이를 계기로 그동안 감춰져 온 성추문 의혹들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왔다.


현재 공식적으로 조사를 받고 있는 보수당 의원들만 5명. 국제통상부 차관인 마크 가니어와 전 노동연금 장관인 스티븐 크랩 의원, 댄 풀터 의원, 찰리 엘피크 의원 등이 각종 의혹으로 조사를 받고 있다. 2001년 보수당 활동가에게 저지른 성추문 의혹으로 조사를 받던 크리스 핀처 의원은 지난 5일 정부 요직에서 사퇴했다.


무엇보다 내각을 흔든 것은 총리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데미안 그린 수석장관이 보수당 활동가인 케이트 말트바이에게 부적절한 행동을 한 사실이 폭로된 것이다. 팰런 장관과 달리 그린 수석장관은 “부패한 정보원에 의한 오보”라며 “그 어떤 잘못도 한 적이 없다”고 항변하고 있다.


하지만 ‘선데이 타임즈’가 지난 5일 경찰부국장의 입을 빌려 지난 2008년 그의 사무용 컴퓨터에서 “극단적인” 포르노그래피가 발견돼 경찰 조사가 한 차례 이뤄졌다고 보도하면서 그에 대한 사퇴 압력이 커지고 있다. 결국 같은 날, 앰버 러드 내무장관이 언론 인터뷰에서 이와 같은 “부적절한 행위”와 “권력의 오용을 방지하기 위한 근본적 변화”를 약속하며 사태 수습에 나섰다.


하지만 영국 언론은 보수당 의원들 수십 명의 이름이 적힌 블랙리스트가 의회 직원들 사이에서 돌고 있다며 이번 파문이 장기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점친다. BBC2 채널의 시사프로그램인 ‘빅토리아 더비셔’ 역시 지난 6일 ‘아만다’라는 이름의 전 보수당 활동가의 증언을 빌어 그녀가 강간을 당한 후 보수당 지도부에 이를 공론화할 것을 요청했지만 무시된 사실을 보도했다. 이번 파문의 근본적인 원인은 뿌리 깊은 성차별적 의회 문화라는 점을 분명하게 한 것이다.


실제 이번 성추문 파문은 보수당을 넘어 노동당으로까지 확대되고 있다. 노동당의 중진인 캘빈 홉킨스 의원이 지난 2일 여성 노동당 활동가를 껴안은 후 부적절한 내용이 담긴 문자를 보낸 사실이 언론을 통해 최초로 고발됐고, 이어 여성의 신체를 부적절하게 만진 혐의로 클라이브 루이스 의원이 함께 조사를 받고 있다. 제어드 오마라 노동당 의원의 품행 문제도 도마 위에 오르고 있는데, 그는 소셜미디어에서 여성과 동성애자에 대한 성차별적 내용이 담긴 메시지를 게재해 온 것으로 알려졌다.


노동당 역시 보수당과 마찬가지로 당의 여성 활동가들이 제기한 성추문 진상조사 요구를 무시한 사실이 조사 과정에서 밝혀지기도 했다. 벡스 베일리라는 이름의 여성 활동가가 2011년 노동당의 파티 이벤트에서 강간을 당한 후 이를 상급자에게 보고했지만 적극적인 대응이 이뤄지지 않은 사실이 BBC의 6일 보도에서 드러났다.


이처럼 보수당과 노동당 모두가 이번 파문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점에서 웨스트민스터 의회 전체가 조사 대상이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당황한 정치권의 지도자들은 성난 민심을 잡기 위해 강경한 조치를 약속하고 나섰다. 제레미 코빈 당수는 5일 노동당이 과거에 잘못을 저질렀다는 점을 시인하는 한편 “비뚤어진 (성차별적) 문화”를 뒤집을 “진정한 변화”를 노동당부터 추진하겠다고 약속했다.


메이 총리는 6일 다른 당수들을 만나 이번 성추문 파문에 대한 연합 대응을 상의했다. 이미 그는 지난 주 영국산업연맹과 가진 회의에서 이번 성추문 파문에 관련된 피해자들에게 조사 과정이 적절하게 알려질 수 있도록 내각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이번 지도자들과의 회동에서는 “새로운 ‘존중’의 문화”를 만들기 위한 정파를 초월한 대응책을 협의했다. 하지만 ‘가디언’에 칼럼을 기고한 한 여성운동가의 지적처럼 수십년 간 지속되어 온 웨스터민스터의 성차별적 의회 문화가 막 민낯을 벌겋게 드러낸 바, “폭로는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말이 나오는 상황에서 파문이 가라앉기까지는 긴 진통이 예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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