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직후, 실기한 친일청산의 후과(後果)는 처참했다. 관용을 빙자한 죄가 누적되면서 독립운동가의 명예는 물론, 친일파에 대한 기억도 희미해졌다. 심지어 망각을 틈타 친일파 미화라는 역사 왜곡의 토대가 됐다.
2008년 법원 출입 당시, 친일파 후손의 줄 소송을 지켜봤다. 친일 대가로 얻은 재산을 대물림하고, 이런 땅을 정당한 재산권이라고 주장했다. 친일을 증명하는 사료를 두곤 “잘못된 증거, 다 지난 일”이라고 부정했다.
시간이 지체될수록 부정의가 정의의 외피를 겹겹이 입고, 이를 교정하는 사회적 비용도 커진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다. SBS뉴미디어국 제작1부 <마부작침>과 <비디오머그>가 더 늦기 전에 친일재산 추적에 나선 이유다.
장시간에 걸쳐 단초를 모았다. 단초를 알 만한 사람을 거듭 수소문했다. 1000장이 넘는 토지대장과 씨름을 벌였다. 산을 오르고, 전국을 누볐다. 그 결과 한 번도 드러나지 않은 친일파의 은닉 토지와 실제 재산 규모, 왜곡된 역사의 산물인 단종태실지와 환수 가능성, 유령처럼 떠도는 적산(敵産), 친일 후손의 재산 증식 전 과정 등을 추적 보도할 수 있었다.
이번 보도를 통해 간단하지만, 강렬한 진실을 마주할 수 있었다. 친일 청산을 위한 보도는 계속돼야 한다는 것. 그리고 역사 왜곡은 지금도 이뤄지는 중이고, 우리가 밝혀내지 못한 친일재산은 어디선가 대물림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를 바로잡기 위한 <비디오머그>와 <마부작침>의 취재는 계속될 것이다.
이번 보도는 출발부터 끝까지 같은 양의 땀을 흘리고, 같은 깊이의 고민을 했던 정경윤 박원경 화강윤 주범 이용한 김태훈 기자, 김경연 정순천 안혜민 등 동료 저널리스트들의 집단지성 결과다.
한정된 자원에도 지난한 취재를 참고 기다려 준 심석태 국장 이주형 부장, 그리고 막힐 때마다 뚜렷한 방향타를 제시해 준 진송민 차장에게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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