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내내 '어느 선까지 보도해야 하나' 생각뿐

[현장을 달리는 기자들] 인천 8살 초등학생 살해 사건-주영민 경기일보 기자

  • 페이스북
  • 트위치

조현병과 아스퍼거증후군 그리고 심신미약과 다중인격.
8살 초등학생을 목 졸라 살해한 후 사체를 훼손해 유기한 김모양(17)이 1심 공판이 진행되는 동안 주장했던 자신의 병명이다. 조현병은 흔히 정신분열증이라 불리는 정신병의 일종이고 아스퍼거증후군은 일종의 자폐증상의 하나다. 다중인격은 소설이나 영화, 드라마에서 다루는 소재 중 하나로, 한 사람이 여러 인격을 가지고 있으며 서로 다른 인격은 각 인격의 존재 자체를 기억하지 못한다. 한국에선 의료적으로 다중인격이 발견된 적이 없고 세계적으로 따져봐도 실제 사례 자체가 드물고 과학적으로 입증된 것도 없다. 하지만 8살 초등학생을 잔인하게 살해하고 그것도 모자라 시신의 일부(손가락과 폐 등)를 공범 박모양(18)에게 전달한 김양은 자신의 죄를 줄이기 위해 다중인격 등을 주장했다.


▲초등학생 유괴·살해 사건의 10대 주범과 공범에 대해 법원이 징역 20년과 무기징역을 각각 선고한 지난달 22일 인천 남구 인천지방법원에서 재판을 마치고 나온 피해자 측 법률대리인이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사건은 지난 3월29일 사랑이(가명·8·여)가 학교를 마친 후 우연히 김양에게 휴대폰을 빌려달라고 요청하면서 시작됐다. 김양은 자신의 휴대폰은 발신 통화가 되지 않음에도 배터리가 다됐다며 사랑이를 자신의 집으로 유인, 불과 2시간여만에 살해하고 사체를 훼손, 쓰레기봉투에 담아 자신의 아파트 옥상 물탱크 인근에 버렸다. 그것도 모자라 태연히 옷을 갈아입고 나와 공범 박양에게 시신 일부를 전달한 후 함께 서울의 한 대학가 거리를 누비는 상상할 수 없는 범행을 저질렀다.


김양은 처음에는 자신이 혼자 범행을 저질렀다며 공범 박양을 보호했다. 캐릭터커뮤니티 활동을 한 것에 불과했다며 범행 자체를 몰랐다고 부인한 박양이 공범이 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김양의 자백으로부터 시작됐다. 김양은 자신과 박양은 애인사이였고, 박양의 지시에 따라 범행을 계획하고 실행했다는 그동안의 진술을 번복하는 발언을 재판장에서 했다.


캐릭터커뮤니티. 박양은 시종일관 자신은 주범 김양이 가상의 공간에서 거짓으로 살인을 하는 일종의 게임을 한 것이지, 실제 김양이 사랑이를 살해할 줄은 몰랐다는 주장을 펼쳤다. 그러나 박양의 주장은 김양이 시간과 장소, 대화내용과 행위 등을 구체적으로 서술했던 것에 비해 터무니없을 정도로 논리가 빈약했다. 자신에게 불리한 것은 다 캐릭터커뮤니티 활동 안에서 일어난 일이라고 주장했을 뿐, 구체적인 반박도 그에 따른 논리적인 설명도 없었다.


결국 김양과 박양은 그들이 받을 수 있는 법정 최고형을 1심에서 선고 받았다. 사건을 심리한 인천지법 형사15부(허준서 부장판사)는 지난달 22일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미성년자 약취·유인 후 살인 및 사체손괴·유기 혐의로 구속 기소된 주범 김양과 살인 등 혐의로 역시 구속 기소된 공범 박양에게 각각 징역 20년과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또 이들 모두에게 위치추적 전자장치 부착 30년을 명령했다. 사건이 시작된 3월. 그로부터 6개월이 지난 9월에야 1심 공판이 끝난 것이다. 이들은 항소심(2심) 재판을 앞두고 있다.


사건은 시작부터 모든 것이 불확실했다. 8살 아이를 살해하고 사체를 유기한 이들은 10대였다. 모두 여성이다. 남성과 여성을 구분하고자 꺼낸 말이 아니다. 강력범죄의 가해자이기보다 피해자인 경우가 많은 어린 여성이었다는 의미다.


강력범죄를 놓고 정상과 비정상을 논할 수는 없지만, 통상적이지 않은 사건이기에 더욱 충격적이었다. 취재가 진행되는 내내 도대체 어느 선까지 보도가 가능할 수 있을지도 감이 잡히지 않았다.


10대 가해자 김양과 박양은 범행에 나가기 전 ‘사냥 나간다’는 표현을 문자로 주고받았다. 사냥이라는 표현 자체도 충격적이었지만, 결국 그들이 사냥에 성공했다는 사실이 더 무섭고 치가 떨렸다. 그 외에도 수사 브리핑과 재판과정에서 차마 입에 담지 못할 만큼 잔인한 단어가 등장했다. ‘손가락이 예쁘다’, ‘장기를 먹기 위해’ 등은 그나마 말과 글로 표현할 수 있는 수준이었다.


이 사건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2심 재판에서 중형이 나오더라도 이들은 상고할 것이 분명하다. 그렇게 대법원의 판결이 나온다고 해도, 중형이 유지된다고 해도 이 사건은 끝나지 않을 것 같다. 기록이 남아 있듯이, 사랑이의 가족도 영원히 2017년 3월29일에 머물러 있을 것 같아서다. 기억하고 기록해야 하는 우리는 그래서 아프다.


주영민 경기일보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배너

많이 읽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