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화 "MB국정원, 출연 배제로 부족해 광고·지방행사도 막아"

[릴레이기획] 돌아오라 마봉춘·고봉순 ③방송인 김미화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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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2일 오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만난 방송인 김미화씨는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와 관련해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고소 계획을 밝혔다.


의문의 실타래가 풀렸다. 블랙리스트는 문건으로 실재했고 집요하게 실행됐다. 양심 있는 언론인들의 눈과 귀는 철저하게 봉인됐고, 정권에 우호적이지 않은 연예인들은 매스컴에서 사라졌다. “대체 내게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걸까.” 수백여 명의 기자, PD, 아나운서는 영문도 모르고 일터에서 쫓겨났고 끼와 재능을 뽐내던 문화예술인들은 숨죽인 채 그림자로 남아야 했다. 이들의 삶을 서서히 앗아간 'MB 블랙리스트'는 그렇게 9년 만에 수면 위로 드러났다.


지난 12일 국정원 개혁발전위원회 산하 적폐청산 TF는 이명박 정권 당시 국정원이 작성한 블랙리스트 문건의 일부를 공개했다. 모두 82명의 문화예술인이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김미화, 문성근, 김제동, 윤도현 등 그간 정권 비판적인 목소리를 공공연하게 드러낸 연예인들이 표적 대상이었다. 당시 이들은 KBSMBC, SBS 등 지상파 방송 출연을 거부당했고, 심지어 진행을 맡고 있던 라디오프로그램에서도 퇴출됐다

 

더 충격적인 건 국정원이 MBCKBS를 장악하기 위해 기자와 PD의 성향을 사찰해 좌파로 낙인찍고, 지난 2012년 파업 참가자에 대해 보복 인사를 주문하는 등 광범위한 공작을 펼쳤다는 점이다. 유신 때나 있을 법한 일이 지금, 여기서 언론을 상대로 버젓이 일어났다. 지난 18일 문성근씨에 이어 방송인 김미화씨는 검찰에 출석해, 이명박 전 대통령을 고소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기자협회보는 22일 오전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김 씨를 만나 ‘MB블랙리스트로 인한 당시 부당한 경험, 그리고 언론장악에 맞서 싸우고 있는 공영방송 종사자들의 파업과 관련한 입장을 물었다

 

▲'블랙리스트' 발언으로 KBS로부터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를 당한 방송인 김미화가 지난 2010년 기자회견 갖고 'KBS 블랙리스트' 언급에 대한 입장을 밝힌 뒤 서울 영등포경찰서로 출석하고 있다.(뉴시스)

-지난 2010년 트위터를 통해 블랙리스트 의혹을 제기하셨다. KBS는 명예훼손으로 맞섰는데, 당시 상황 설명해 달라.

 

“20104월경에 ‘KBS 내부에 출연금지 문건이 돌고 있어서 출연이 안 된다는 말을 기자들에게 들었다. 20099월에 작성된 해당 문건이 KBS 임원회의 결정사항으로 정해졌고 각 PD들에게 전달됐다는 내용이었다. 이 일로 보도본부장을 찾아가 항의했다. 당시 보도본부장은 블랙리스트 없다고 했고, 그 말을 믿었다. 그런데 7월에 또다시 ‘KBS안에 서류가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그래서 다음날 아침에 트위터에 블랙리스트라는 게 실제로 존재하고 돌아다니고 있는지 밝혀달라고 글을 올렸는데 바로 고소당했다. 그날 저녁 KBS9시뉴스 기자를 보내서 저를 범죄인이 나오는 것처럼 찍어갔고, ‘이렇게 침묵하는 게 김미화씨 입장이냐고 질문하는 등 억압적으로 취재했다. 뉴스에 사과성 멘트를 하라는 압박이었다. 결국 소송은 127일 동안 길게 이어졌고, 그동안 KBS측은 사장이 진노하셨다. 사과하라고만 압박했다. 저는 제가 사과 받아야 한다고 생각해서 굽히지 않았다. 당시 검찰 또한 블랙리스트 유무가 아니라 처음에 누구에게 이야기를 들었는지에 초점을 맞춰 질문하더라.”


▲MBC 라디오PD들이 지난 2009년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 진행자 김미화씨 교체에 반발해 기자회견을 열고 경영진의 일방적인 결정을 비판했다.(연합뉴스)


-MBC라디오 <세계는 우리는> 프로그램의 제작진이었던 한재희 라디오PD가 최근 ‘2010년 이우용 라디오본부장이 오면서 본격적으로 김미화씨에 대한 퇴출 움직임이 일어났다고 폭로했다. MBC에서의 퇴출 과정도 설명해 달라.

 

이 본부장은 앞에서는 잘해보자했고, 뒷구멍으로 압력을 행사했다. 편성부장이 내려오더니 본부장이 내려가라고 한다고 대신 전하는 식이었다. ‘시사가 아닌 다른 예능 프로로 가라는 지시였는데, 당시 제의받은 프로가 싱글벙글쇼였다. 제가 가면 그걸 진행하던 선배님들은 자리를 뺏기는 게 아닌가. 더구나 갑자기 시사에서 예능으로 수평 이동하는 사례는 없었다. 이유도 알려주지 않고 무조건 가라고 하는 건 하차 압력으로밖에 볼 수 없었다. 이후 엘리베이터에서 우연히 만난 김재철 사장이 다른 프로로 가라고 하니, ‘아무리 버텨도 사장이 관두라는데 별 수 없겠구나란 생각이 들더라. 그래서 그만 두겠다고 했다.”


▲방송인 김미화씨가 지난 2009년 MBC라디오 '세계는 우리는' 진행할 당시 모습.(뉴시스)


-이후에도 출연이 계속 배제됐나.

 

“KBS는 출연도 아니고, 내레이션조차 문제 삼았다. 목소리조차 듣기 싫다는 거였다. 국정원 서류를 보면 출연뿐만 아니라 기업이나 경제인 단체 연락해서 일체 광고나 지방 행사까지 못하도록 막은 걸 알 수 있다. 서류에 수용불가라고 돼있다. 기가 막힐 노릇 아닌가. 그걸 공유한 방송사 공범자들이 버젓이 내부에 있는데 저를 쓰겠나. 출연하기 위해서 PD들을 접촉할 때마다 윗분들 분위기 알지 않나는 얘기만 들었다. 당시 근사한 시사코미디를 만들어보고 싶다는 나름의 인생플랜이 있었는데, 물거품이 돼버렸다. 한 사람을 매도하고 문제가 불거지니까 적반하장식 사과를 요구하는 갑질을 당했는데, 어떻게 돌아갈 수 있었겠나.”


-블랙리스트에 이명박 전 대통령의 직접적인 지시가 있을 것으로 보나.

 

국정원의 서류를 보면 'VIP께 일일보고'라고 돼있다. 본인들이 그렇게 쓴 거 아닌가. 명령되지 않았다고 해서 면피되는 게 아니다. 대통령이라는 자리가 그런 걸 다 주관하는 책임이 있는 자리지 않나. 블랙리스트 명단에 적시된 문화예술인들을 중심으로 의견을 모으고 있다. 함께 돕겠다는 국민 여러분과 변호인들의 성원에 힘입어 추석 전후로 고소장을 제출할 계획이다. 국민을 향해서 사찰을 한 거면 처벌과 함께 사과를 받아야 마땅하지 않겠나.”


▲방송인 김미화와 황석영 작가가 25일 오전 서울 종로구 KT광화문 빌딩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진상조사 및 제도개선위원회에서 이명박 정부 시절 국정원 블랙리스트 관련 조사 신청서를 기자들에게 보여주고 있다.(뉴시스)


-박근혜 정권에서 블랙리스트 가능성은.

 

드러난 문건이 이명박 정부 때여서 그렇지, (박 정부 체제에도) 문건이 있을 거라 생각한다. 정권이 바뀌지 않고 똑같은 사람들이 운영해오지 않았나. 실제로 제가 MBC를 나와서 CBS라디오로 옮겼을 때도 방송통신위원회가 CBS를 상대로 공공성에 위배된다는 논리 붙여서 표적조사하는 등 압박이 그대로 이어졌다. 방통위가 방송사에 주의를 준 건 진행자를 내리라는 거지 않나. CBS로서는 큰 압박이었는데, PD들이 끝까지 맞서서 행정소송까지 갔고 결국 대법에서 승소한 기록으로 남게 됐다.”


-일부 보수 정당과 매체는 문화예술인의 퇴출 문제는 해당 연예인의 자질 문제지, 국정원 블랙리스트와 무관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런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동시간대 청취율 1, 광고 120% 배당, 진행자 신뢰도 높은 프로그램에 대해서 하차하라고 압박했다. 거기다 대고 정치적인 잣대를 들이밀고 오히려 공격을 하고 있다. 국정원에서 그런 서류가 나왔으면 죄송하다는 전제하에서 후속 조치가 나와야지, 국회의원들이 벼슬은 아니지 않나. 적으로 돌리고 공격하는 행태를 보니 기가 차다.”


-현재 문화예술인 뿐만 아니라 방송장악 문건도 드러나 논란인데.

 

언론인들의 성향을 분석해 자의적인 잣대로 내쫓고, 프로그램을 잘 만드는 PD들에게 샌드위치 만들게 하고, 스케이트장에서 눈 치우게 하는 게 말이 되나. 제 자리서 다 배제해버리니까 말할 수 있는 기회나 눈과 귀를 다 막은 것 아닌가. 당시 정부가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주는 게 정말 올바른 뉴스인지 묻고 싶다.”


-방송장악에 맞서 파업에 돌입한 언론인들에 한 마디.

 

국민의 사랑을 되찾고 진심을 알리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할 것이다. 언론이 망가지기까지 무엇을 했는지 깊은 책임감도 느껴야 할 것이다. 국민들이 함께 분노하고 웃고 함께 바꿔나갈 수 있도록 정상화를 위해 최선을 다해달라. 방송 종사자로서 저 또한 언론이 바로 서도록 힘을 보태겠다.”

 

이진우 기자 jw85@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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