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임 발표로 끝? 인적청산 요구 무응답

SBS노조 "윤세영 회장 답해야"
소유와 경영 완전한 분리 위해
본부장임명동의제·사추위 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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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된 해결책이 필요합니다.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세월호 보도 참사 같이 중요한 국면에서 SBS가 제대로 보도를 하지 못한 데에는 저희의 잘못도 있지만 대주주의 잘못도 있다는 것이 밝혀졌으니까요. 그러니 대주주는 면피성 책임 말고 응당한 책임을 져야 합니다. 거기에 공감하지 않는 기자는 없을 거예요.” (SBS A기자)


박근혜 정부 당시 보도지침을 내렸다는 의혹을 받아온 윤세영 회장 일가가 지난 11일 갑작스럽게 사임했다. 하지만 전국언론노조 SBS본부는 윤 회장의 사임이 진정성이 없는 재탕, 삼탕의 쇼에 불과하다며 형사 고발을 검토하고 있다. 또 지난주부터 사옥 로비에 부스를 차리고 ‘RESET! SBS! 독립경영 쟁취!!’가 써진 대형 플래카드를 내걸었다.


▲지난 11일 윤세영 회장 일가가 사임했지만 SBS 내부에선 인적 청산과 사내외 부당한 압력을 막을 수 있도록 제도적 장치를 요구하는 구성원들의 투쟁이 이어지고 있다. 사진은 지난주부터 서울 목동 SBS 로비에 설치된 부스와 대형 플래카드. (전국언론노조 SBS본부 제공)

구성원들이 윤 회장의 사임에 냉랭한 반응을 보이는 이유는 “위기 때마다 반복해 온 ‘눈속임’에 대한 기시감” 때문이다. 실제 윤 회장은 수차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복귀한 전력이 있다. 윤 회장은 2004년 재허가 위기 국면에서 ‘소유-경영 분리’가 재허가 조건으로 제시되자 “대표이사는 방송전문인이 맡게 될 것”이라며 대표이사 사퇴를 선언하고 1년 뒤 물러났다. 그러나 2008년 3월 SBS를 자회사로 한 SBS 미디어홀딩스라는 지주회사가 출범하면서 불과 1년 뒤 아들인 윤석민 부회장을 미디어홀딩스 대표이사로 취임시켜 실권을 장악했다.


SBS 의장을 맡고 있던 윤 회장은 2011년에도 “2월 주주총회 이후 명예회장으로 그룹 발전의 조력자 역할을 하겠다”며 SBS 회장과 이사회 의장직에서 물러났다. 그러나 2014년 11월 슬그머니 ‘명예’자를 떼고 복귀했다. 지난해 3월엔 아예 책임 경영을 강화하겠다며 SBS 미디어홀딩스 이사회 의장으로 완전 복귀했다.


윤 회장의 사임이 노조가 요구한 ‘인적, 제도적으로 불가역적인 소유-경영의 완전한 분리’를 충족시키지 못한 것도 기자들의 불만을 가중시켰다. 윤 회장은 11일 담화문에서 “상법에 따른 이사 임면권만 행사하겠다”고 했지만 구성원들은 “가신들과 측근들을 통해 SBS 경영을 계속 통제하겠다는 뜻”이라고 해석하고 있다.


SBS B팀장은 “SBS는 상법으로 운영되는 동시에 방송법이라는 특별법에 따라 설립되고 운영된다. 방송의 자유와 독립을 위해선 상법에서 부여한 주주의 권한을 일부 정지시키거나 제한할 수밖에 없다”며 “윤 회장 일가가 그동안 여러 차례 소유-경영 분리, 방송자유, 독립경영을 얘기했지만 그 결과는 보도지침 문건과 보도 개입이었다”고 말했다.


실제 보도본부 구성원들은 윤 회장의 보도본부 개입을 직·간접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SBS C기자는 “보도본부 안에선 윤 회장이 보직부장들 인사에 손을 댄다는 것이 기정사실화돼 있었다”며 “보도본부장은 부서나 출입처 변경만 할 수 있고 보직부장 인사는 보도국 의견을 받아 인사팀이 가져가면 회장이 바꾸는 등 사실상 회장에게 인사권이 있던 걸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SBS D기자는 “MBC, KBS 같이 대놓고 보도 개입을 하진 않았지만 윗선에서 대주주 의견에 알아서 엎드리는 것에 대한 짜증이 있었다”며 “대주주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방향으로 분위기가 흘러갔다”고 말했다.


이런 상황에서 노조가 폭로한 몇몇 사례는 SBS 기자들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SBS E기자는 “박수택 선배 건도 공공연히 알고는 있었지만 그동안 이 정도면 지상파 3사 중에서는 낫지 않느냐며 버텨온 게 사실”이라며 “월급 등에 만족하며 타성에 젖어 살아왔던 거다. 그런 부분을 자성하고 제대로 보도를 해야 한다는 경각심을 이번에 갖게 됐다”고 말했다.


JTBC의 영향도 컸다. E기자는 “지난 ‘박근혜-최순실 국정농단’ 때 JTBC의 보도를 보며 우리가 제대로 보도를 하지 않으면 망하겠다는 위기감이 커졌다”며 “보도하는 데 어떠한 걸림돌도 없어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다”고 했다.


지난 14일 노조가 주최한 조합원 간담회에서 200석이 넘는 SBS홀을 채울 정도로 많은 구성원이 참여한 것이 이를 방증한다. SBS F기자는 “간담회에서 본부장 임명동의제를 포함해 노사 동수의 사장추천위원회 구성안이 논의됐다”며 “대주주가 사장을 임명하면 그 입김에서 자유로울 수 없으니 그걸 제도적으로 막아보자는 차원이다. 본부장 임명동의제 같은 경우 과거에도 노조가 요구해왔던 사안”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사측은 사장추천제에 대해선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이다. 박정훈 사장은 지난 14일 담화문을 내고 “사장추천제를 기 도입한 타 방송사의 사례에서 보듯이 외부의 입김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민영방송 SBS를 정치판의 소용돌이 속으로 몰아넣을 가능성이 있다”며 반대했다. 대신 “노사가 모여 회사의 미래를 위한 제도적 장치 마련 등 모든 걸 열어놓고 대화할 것”을 제안했다.


노조는 이에 대해 “사내외 부당한 압력을 막을 수 있는 제도적 장치와 함께 인적 청산을 요구하고 있는데 그에 답을 할 수 있는 건 대주주뿐”이라며 “사장은 아무 권한이 없다. 현재는 대주주의 답변을 기다리고 있다”고 밝혔다.

강아영 기자 sbsm@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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