님아, 이 영화를 놓치지 마오

[스페셜리스트 | 문화] 김빛이라 KBS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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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빛이라 KBS 기자

‘A열 3번.’ 극장 A열에 앉아본 게 언제가 마지막이었나 싶었다. 노트북 앞에서 집중해 타자치는 시간이 많은 탓에 목이며 어깨가 뻐근해지는 자세를 의식적으로 피해오곤 했다. 영화 취재를 맡고나선 이것도 일의 연장선이라 생각하다 보니 스크린과 눈높이가 맞는 좌석을 찾아 예매하는 건 최우선 과제였다. 그러던 내가 2시간 내내 고개를 젖혀 스크린을 올려다 봐야하는 ‘A열 3번’을 선택했다. 아니, 이렇게 선택된 것도 감사할 일이었다. 개봉 직후부터 이른 아침과 자정 시간대만 상영을 하는 동네 극장은 애초에 포기했다. 평일 퇴근 시간대, 영화 ‘내 사랑’을 볼 수 있는 극장을 찾아 헤맨 지 닷새 만에, 명절 기차 예매보다 더한 클릭 전쟁(!) 끝에 얻어낸 성과였다.


고개가 좀 아프면 어떠랴. 이 영화를 놓치지 않았다는 성취감, 왠지 옆자리 이름 모를 관객과 그 기분을 공유하고 있는 듯한 느낌마저 좋았다. 수고로움을 감수하고 도심에서 꽤 떨어진 극장까지 찾아온 이들이 객석을 빈틈없이 메운 상황이 참 묘했다. 5분에 한 대씩 지나가는 마을버스 정류장에서 한 시간에 한 번 올까말까한 광역버스에 올라탔을 때의 기분이라는 관람평이 농담이 아니었다. 이렇게 ‘내 사랑’을 ‘찾아 본’ 관객이 어느덧 30만명을 넘어섰다. 스크린에서 대작과 번갈아가며, 또는 소위 ‘작은 영화’들끼리 시간대를 나눠 상영하는 이른바 ‘퐁당퐁당’ 상영을 고려하면 놀라운 수치다.


관객들은 진작부터 원해왔다. 가뭄에 콩 나듯 찾아오는 ‘작은 작품들’을 기꺼이 찾아볼 준비가 돼 있다. 조금은 독특하고, 비일상적이고, 그것이 신예 감독의 실험작이라 할지라도 기꺼이 비용을 지불하고 관람의 추억을 공유하려는 이들이 늘고 있다. 여러 악조건 속에서도 십시일반 모금으로 어렵사리 개봉한 ‘귀향’은 358만명 관람이라는 대흥행을 이뤄냈다. 관객들은 이제 백억 넘게 들였다는 홍보문구만으로 ‘돈 내고 볼 만한’ 작품이라 쉬이 판단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변화에 비해 영화 시장은 관객들을 따라갈 준비가 돼 있지 않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아니, 알면서도 외면하는 것 아닌가 따져 물어도 될 상황이다. ‘군함도’가 국내 2500여 개 스크린 중 2000개 넘게 차지하며 개봉한 게 ‘극장의 경쟁력’을 위한 판단이라는 업계의 논리에 모두가 쉽게 수긍할 수 없는 이유다.


상영 중인 다큐멘터리 ‘공범자들’을 만든 최승호 감독이 물었다. 경쟁력에 걸맞은 스크린수는 대체 무엇이냐고 말이다. 이명박-박근혜 정권의 언론 장악 사태를 다룬 이 다큐는 극장 상영 15일 만에 20만 관객을 넘어섰다. 다큐 영화로는 의미있는 관객 수, 개봉 3주차에 접어들어서며 좌석점유율이 20%를 넘긴 것은 물량공세가 아닌 입소문의 힘을 보여주는 수치가 틀림없다. MBC측의 상영금지 가처분신청으로, 혹여나 스크린이 배정되지 않을까 걱정했다는 이 다큐는 작품 경쟁력을 통계로 증명하고 있다. 그러나 좌석점유율이 더 낮은 다른 작품에도, 스크린이 더 많이 배정되고 있는 상황, 이제 막 입소문을 탄 이 다큐를 놓치지 않으려면 서둘러야 할 일이다.


지난해 두 번째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한 팔순 노장, 칸 로치 감독은 수상대에 올라 ‘우리는 다른 세상이 가능하고, 또 필요하다고 외쳐야 한다’는 말을 남겼다. 현 제도의 문제점들을 파고드는 작품을 만들며 일생을 걸어온 그 다운 멘트였다. 시대의 변화를 맞아, 권력에 쉬이 순응하지 않고 다양성을 누릴 자유를 외치는 작품들이 쏟아져 나온다. 그 시대를, 그 이야기를 놓치지 않겠다는 관객들이 함께 변화를 만들어나가고 있다. 이제 무엇이 바뀌어야 할 때인지 생각해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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