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C 유배자들 "정신 황폐해져…죄인이라는 생각마저 들더라"

[인터뷰] 서정문 PD/ 이남호 기자/ 전여민 라디오P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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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일 서울 상암동 MBC 사옥 앞에서는 2000여명의 기자와 PD, 아나운서가 모여 총파업 출정식을 가졌다. 이날 출정식을 마치고 인터뷰에 응한 전여민 라디오PD, 서정문 PD, 이남호 기자(왼쪽부터).


체포영장 발부 소식 이후 행적이 묘연하던 김장겸 MBC 사장이 돌연 회사로 출근해 직원들을 독려하더니 5일 오전 서울서부고용노동지청에 출석했다. 전날 직원들이 총파업에 돌입하는 등 퇴진 목소리가 안팎으로 커지는 상황에서 “취임 6개월밖에 안된 사장이 무슨 부당노동행위를 했겠나”며 끝까지 버티겠다는 입장이다.

그는 지난 2012년 170일간의 파업 이후 보도국장과 보도본부장을 거치며 현 사장이 되기까지 200여명의 기자와 PD, 아나운서 등을 비제작부서로 내쫓은 실질적인 책임자로 꼽혀왔다. 최근에는 직원들을 정치 성향과 출신 지역, 노조와의 친분관계, 회사에 대한 충성도 등으로 나눠 인사에 활용한 것으로 보이는 ‘MBC 블랙리스트’가 공개돼 보복인사의 물증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지난 4일 김 사장 체제 하에서 경인지사와 구로, 광화문 등 이른바 ‘유배지’로 전전한 MBC 구성원들이 5년 만에 상암동을 찾았다. 총파업 출정식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기자협회보는 영문도 모르고 쫓겨나 분노를 넘어 자책감을 감내해야 했던 이들을 만나 그간의 심경을 물었다. “이런 이야기를 하게 되는 자리가 올지 상상도 못했다”는 서정문 PD와 이남호 기자, 전여민 라디오PD의 이야기다.


▲서정문 시사교양PD.


-2012년 파업 전후 상황은.
“지난 2006년 입사해 2011년에 ‘PD수첩’을 맡게 됐을 때 팀장이 ‘그런 식으로 개기면 자꾸 예능으로 보내버리겠다’고 겁박한 적이 있다. 이후 ‘불만제로’라는 프로그램을 맡았고 파업이 시작됐다. 파업 도중에 대기발령 되고 MBC아카데미(신천교육대)를 거쳐 경인지사, 글로벌사업본부에 발령이 됐다. 이후 DMB 주조정실에서 2년 8개월간 근무하다, 올 3월에 PD수첩으로 복귀했다.”(서정문)
“지난 2008년에 입사해서 파업 끝나고 경인지사, 신천교육대로 보내졌다. 이후 다시 경인지사에 갔다가 부당전보에 승소해 잠깐 보도국으로 복귀, 또 경인지사로 재징계를 받았다. 그리고 나서는 지금은 홍대에 있는 ‘스마트미디어콘텐츠’라는 자회사에 파견 와있다.”(이남호)
“지난 2007년 입사해 ‘손석희의 시선집중’ 등 시사라디오프로그램을 거쳐 파업 이후 2015년부터는 신사업개발센터라는 부서에 와있다. 이 곳의 핵심과업은 스케이트장 관리다.”(전여민)


-전보 사유를 통보받았나.
“방이 붙은 걸 보고 아는 정도였다. 미리 아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당시 보도 아이템 때문에 주변 동료들도 내쳐지는 것을 보고 ‘나도 당연히 나가게 되겠구나’는 예상은 했다. 동기였던 배현진 앵커하고도 사이가 틀어진 게 이유 중에 하나가 됐을지는 확실치 않다. 파업 당시 집회에 나오지 않길래 (배 앵커에) 전화를 했더니, 당시 박성호 기자가 징계를 받은 상황이라 배 앵커도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래서 믿고 있었는데 갑자기 반박글을 올리더라. 당시 동기에게 배신당한 충격이 상당했다.”(이남호)


“방이 붙은 것을 보고 국장을 찾아가 전보 사유를 물었는데 ‘모른다’고 하더라. 국장에 ‘백종문 본부장이 징계한 거냐’고 되물었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같았다. 당시 PD수첩 제작진들 대다수가 대기발령, 교육발령, 부당전보 대상자가 됐다. 특정 PD들이 전보 대상으로 이름을 올리면서 블랙리스트의 존재를 예감했다.”(서정문)


“파업 때문만이 아니라 간부들의 말을 듣지 않은 개인적인 이유도 (징계 사유에) 혼재된 것 같다. 방이 붙고 곧바로 다른 곳으로 출근하면서 그 이후로는 줄곧 상암동에 접근할 수 없었다. 부장과 국장, 본부장에 사유를 메일로 물었지만 답이 없었다. 아마도 당시 김도인 본부장과 사이가 좋지 않아 전보됐다고 추측해볼 뿐이었다. 당시 내가 맡은 일은 뉴미디어와 라디오를 접목시킨 일이었다. 이를 김 본부장에 보고할 때마다 뉴미디어에 대해서 전혀 모르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예를 들어 유튜브 링크를 보내주면 ‘업로드는 했냐’고 묻는 식이었다. 업로드가 됐기 때문에 링크를 보낸 건데 사소한 것조차 모르고 있었다. 무능이었다. 그렇게 업무적으로 부딪히게 됐고 이후 발령이 나더라.”(전여민)

“개인적인 이유로 보복인사를 해도 회사 안에서 문제가 안 되는 시절이었다. 부당전보 가처분 소송에서 승소하고 복귀를 해도 어느 누구도 사과는커녕 개선 의지도 전혀 없었다. 불법으로 직원들을 부당전보한 걸 법원이 확인해줬는데도 말이다. ‘인사고충상담실’이라는 시스템도 유명무실이었다. 상담실에 ‘좋은 평가를 받고 잘하고 있는데 방송 2주를 앞두고 왜 발령을 냈냐’고 물었지만, 답이 없었다. 인사부에 전화했더니 ‘아마 답변듣기 힘들 것’이라는 말만 들었다. 공조직의 껍데기만 남은 회사였던 것이다. 황당했다.”(서정문)

▲이남호 기자.


-이렇게 오랫동안 업무에서 배제될지 몰랐을 것 같은데.
“처음엔 몰랐는데 시간이 가면서 감이 오더라. 더 많은 사람들이 쫓겨나고 새로운 사람들이 뉴스에 얼굴이 나오면서부터다. 뉴스데스크에 내가 아는 기자가 거의 없는 상황이 됐을 때는 ‘아 이러다 아예 못돌아가겠구나’라는 생각도 들었다.”(이남호)


“파업 이전에 MBC는 정말 좋은 회사였다. 인프라도 잘 돼있고 시청자 반응, 채널이미지도 좋았다. 비록 파업에서 졌어도 방송 콘텐츠로 승부하면 정상으로 돌아올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그런데 부당전보 가처분 승소해서 돌아오고 다시 비제작부서로 재징계되니까 그 생각도 산산이 무너졌다. 예능과 드라마PD 등 동료들은 줄줄이 퇴사했다. 나한테도 오퍼가 들어와서 많이 고민할 정도였다. 회사가 정말 좋아지지 않을 것처럼 보여서 더 그랬다.”(서정문)


-유배지에서 어떤 게 가장 힘들었나.
“올 2월에 결혼을 하기 전에 청첩장을 돌리러 상암동을 찾았는데, 들어가기도 무섭고 여러 가지 감정이 들더라. 출입 카드도 없어서 누구에게 전화를 해야 들어갈 수 있을지도 고민스러웠다. 사람들을 대면할 만한 자신감도 없었다. 그래서 모두 편집회의에 들어가고 자리를 비울 때 맞춰 들어가서, 책상 위에 청첩장을 올려두고 빠져나왔다. 내가 잘못해서 쫓겨난 게 아닌 걸 알면서도 기간이 길어지다 보니까 ‘내가 죄인인가’ ‘내가 잘못했나’라는 생각이 들더라. 그때 참 마음이 안 좋았다.”(이남호)

“고립된다는 느낌도 들고 못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초반에는 집단적으로 발령을 내다가 이후에는 한 사람씩 찍어서 발령내다보니, 홀로 감당해야 하니까 더 힘들었다. 외로워지기도 하고 내 잘못이 아닌데도 스스로 부끄럽기도 했다. 어느 날 높은 곳에 올라가서 좋지 않은 생각마저 들더라. 당시 동료 한분이 정신과에 다닌다는 얘기를 듣고 진지하게 고민도 시작했다.”(서정문)

“부서 자체가 부서원들을 모욕하기 위해서 기획된 곳이라고 느껴졌다. 아나운서, PD, 기자를 갑자기 발령 내서 다른 곳에 출근하게 하고, 스케이트 현장 근무를 시키는 것도 자존심 상할 일이지 않나. 그나마 11월~3월에는 스케이트장 관리라도 하지, 나머지 기간에는 한두 달에 한 번씩 신규 사업 기획안을 내야 했다.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를 내도 부서 자체에 지원되는 예산도 없고 우리 부서가 독자적으로 추진할 권한도 없지 않나. 인사고과를 위한 거란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전여민)

▲전여민 라디오PD.


-MBC 뉴스나 시사프로그램 보나.
“뉴스를 보는 것 자체가 굉장히 괴로운 일이었다. 사실 봐야하지 않나. 잘못된 점을 기억하고 기록하고 개선하기 위해서는 봐야하는데, 그 작업을 못하겠더라. 보는 것 자체가 괴롭고 속이 울렁거린다.”(이남호)

“이거 우리 사회에 해독이 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이 조직에 계속 몸담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딜레마에 빠졌다. 그때부터 회사와 라디오프로그램에 대한 마음이 애정에서 애증으로 바뀌더라. 많이 불편하고 미워했던 것 같다. 작가들을 겁박하고, 진행자와 PD를 물갈이한 상태라, 무력감이 컸다.”(전여민)


-돌아와서 내부 분위기는 어땠나.
“저 자체도 굉장히 움츠러든 상태였고, 부당전보를 몇 년간 당한 상태라 마음 속 자기 검열이 지속됐다. 내부에 있던 PD들도 인격적인 모독도 당하고 상당기간 검열의 시간을 거친 상태라, 굉장히 힘들어했다. 한 사람이 울면 또 다른 사람도 따라서 우는 모습을 보고 ‘다 병들어 있구나’란 생각이 들었다.”(서정문)


-김장겸 사장 사퇴 후 MBC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뉴스에 대해서 아주 기초적이고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는 작업부터 해야 할 것 같다. 왜 전달하는지, 어떤 식으로 전달할 것인지를 새롭게 정립해나가야 신뢰를 다시 찾을 수 있다. 뉴스데스크를 몇 달 쉬는 한이 있더라도 시청자들의 의견을 듣고 중지를 모아 새로운 뉴스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이남호)

“그동안 오더를 하는 사람도 반성하지 않았고 오더를 받는 사람도 문제의식이 전혀 없었다. 공조직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통렬한 자기반성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본다.”(서정문)

“최상층부에 있는 경영진뿐만 아니라, 5년 넘게 공영방송을 망가뜨린 중간 관리자들에 대한 인적 교체가 가장 시급하다. 과거의 행적을 얼렁뚱땅 넘어가지 말고 짚고 넘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전여민)

▲전여민 라디오PD, 서정문 시사교양PD, 이남호 기자(왼쪽부터).


-복귀한다면 가장 먼저 하고 싶은 일은.
“입사해서 기자로 일한 시절보다 안한 기간이 더 길다. 그래서 사실 어떤 걸 잘할 수 있을지, 공정한 기사를 쓸 깜냥은 되는 지 걱정이 든다. 만약 기회가 된다면 호흡이 긴 기사를 써보고 싶다. 발생기사가 아니라, 왜 발생했는지 등의 분석기사 말이다.”(이남호)

“PD수첩에 돌아와서 흔히 세다고 표현하는 아이템을 해야 하는 게 맞는데, 저는 그보다 예능과 교양을 접목한 프로그램을 만들어보고 싶은 욕심이 있다. MBC를 되살리려면 JTBC가 처음 나올 때 ‘썰전’으로 입소문을 타듯, 새로운 포맷의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PD수첩의 재건과 함께 ‘MBC가 정말 달라졌네’라는 인식을 줄 수 있는 그런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다.”(서정문)


이진우 기자 jw85@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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