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 들려주는 기자들 이야기…세상을 향한 외침 'Truth'

영화가 들려주는 기자들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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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택시운전사’가 지난 15일, 개봉 14일 만에 관객 수 850만을 기록하며 흥행하고 있다. 독일인 기자와 그를 태우고 광주로 내려간 택시 운전사가 주인공이다. 독일 제1공영방송 기자 故 위르겐 힌츠페터는 신군부의 언론 통제로 가로막혀 있던 광주의 진실을 전 세계에 가장 먼저 보도했다. 장훈 감독이 “광주의 이야기이자 언론의 이야기”라고 밝힐 만큼 이 영화가 언론계에 던지는 질문은 묵직하다. 그 외 언론이 등장하는 영화 10편을 소개한다. 내용 중 일부는 책 <언론의 재발견>을 인용했다.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1976)
언론계 고전과 같은 워터게이트 사건, 전설적인 두 기자의 고군분투를 그렸다. 워터게이트빌딩 도청사건에서 시작해 닉슨 대통령을 사임하게 만든 워싱턴 포스트 기자 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타인이 펴낸 동명의 논픽션 취재기를 스크린으로 옮겼다.


영화는 마치 다큐멘터리처럼 시간의 흐름대로 두 기자의 취재를 따라다닌다. 이미 결론을 아는데도 러닝타임 내내 긴장감이 느껴지는 건 역사적 사실 자체가 극적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워터게이트라는 수식어를 뛰어넘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그대로 영화화된다면 이런 제목은 어떤가. ‘모두가 최순실의 사람들.’

누가 용의 발톱을 보았는가(1991)
비 내리는 어느 밤 여당의 차기 대선 후보로 거론되던 유력 정치인이 살해된다. 유일한 목격자는 야당 후보와 비밀연인 관계인 여성 앵커. 사인을 두고 논란이 일지만 경찰은 자살로 결론 낸다. 여기에 의혹을 품은 베테랑 정치부 기자가 사건의 전말을 추적하며 이야기가 시작된다. 대선 후보 스캔들이 얽힌 민감한 사건, 기자는 진실에 다가갈 수 있을까.


‘한국 최초의 정치 스릴러’로 불리는 이 영화를 김석 KBS 기자는 저서 <언론의 재발견>에서 이렇게 평가한다. “기자가, 그것도 신문이 아닌 방송기자가 당당하게 주인공으로 등장한다는 점에서도 이 영화는 최초에 걸맞다. (…) 한국인의 시선으로 부패한 정치권력에 맞서 진실을 추구하는 존재로서 언론인의 모습을 이만큼 적극적으로 평가한 영화가 없다는 사실을 눈여겨봐야 한다.”

인사이더(The Insider, 1999)
미국 CBS 탐사보도프로그램 <60분>의 PD 로웰 버그만은 담배 중독에 대한 문건을 해석해줄 전문가를 찾아다니다 제프리 와이갠드 박사를 만난다. 미국 대형 담배회사 간부였던 그는 버그만의 계속된 설득에 기밀 누설 금지 원칙을 깨고 담배회사의 거대 비리를 폭로한다. 버그만은 와이갠드 박사의 용기 있는 증언을 방송에 내보내려 하지만 자신이 속한 CBS의 반발에 부딪힌다. 언론사가 막강한 자본력을 앞세운 대기업과 맞서야 하는 상황. 결국 CBS는 와이갠드 인터뷰 삭제 결정을 내린다.


이 영화는 1990년대 중반 미국에서 실제 일어난 사건을 그렸다. 영화의 주인공이자 실존 인물인 버그만은 어떤 선택을 했을까. 그는 현재 미국 공영방송 PBS의 PD이자 대학교수로 활약하고 있다. 2004년 퓰리처상을 수상하는 등 탐사보도의 최고 전문가로 꼽힌다.

굿나잇 앤 굿럭(Good night and good luck, 2005)
“우리는 불쾌한 정보를 외면하려 하고 매체는 그런 현실을 반영합니다. 텔레비전이 주로 본질을 흐트러뜨리고 우리를 속이는 데 이용된다는 걸 깨닫지 못하는 한 텔레비전과 광고주 시청자, 방송제작자들은 자기기만을 멈추지 못할 것입니다.”


영화는 1958년 미국 CBS 뉴스다큐멘터리 프로그램 <See It Now>의 진행자 에드워드 머로의 연설로 시작한다. 머로가 방송 끝머리에 늘 했던 말 ‘좋은 밤 되시고 행복하십시오(Good night and good luck).’가 영화의 제목이다. 실제 머로는 1950년대 초반 미국 사회를 휩쓴 매카시즘(반공산주의)의 광풍에 맞선 거의 유일한 저널리스트였다. 영화는 머로와 제작진의 고뇌, 보도 과정을 진지하게 그려내면서 방송저널리즘의 지향점을 가리킨다. 그의 문제의식과 고민은 70여년이 흐른 오늘날까지도 유효하다.

더 트루스 : 무언의 제보자(Nothing But The Truth, 2008)
취재원 보호는 기자가 지켜야 할 원칙이다. 하지만 취재원 함구로 기자가 치러야 할 대가가 더 크다면? 영화 속 기자 레이첼은 미국 대통령 저격 사건과 관련해 CIA의 발표를 뒤엎는 정보를 입수하고 특종을 터뜨린다. CIA는 정보를 넘긴 내부 제보자를 색출하기 위해 레이첼을 압박하지만 그는 끝내 입을 열지 않는다. 결국 재판장의 답변을 거부한 법정 모욕죄로 실형을 선고받는 레이첼. 그 사이 이혼하고 아이와의 이별도 겪는다.


영화의 소재는 제2의 워터게이트로 불리는 미국 ‘리크게이트’. 2003년 부시 행정부가 이라크 침공을 정당화하기 위해 현지에 파견한 인사와 그의 아내인 CIA 요원의 신분이 기사화되면서 제보자를 둘러싼 정치스캔들로 번진 사건이다. 영화 속 기자를 향한 관객들의 해석이 분분하다. 레이첼의 취재원 보호는 신념일까, 자기방어일까.

모비딕(2011)
의문의 교각 폭발 사건을 취재하던 기자 앞에 내부고발자가 나타나 사건이 조작됐다는 증거를 내민다. 기자들은 특별팀을 꾸려 취재에 나서지만 감시와 추적에 시달린다. 실체에 다가갈수록 기자들이 느끼는 위협은 거세지고 진실은 더 멀어져 가는 것만 같다.


1990년 보안사 민간인 사찰 문건을 들고 탈영한 윤석양 이병의 폭로 사건을 모티브로 했다. 당시 사찰 대상 1300여명의 개인정보가 담긴 문건이 공개되자 노태우 정권 퇴진 운동이 벌어질 만큼 그 파장이 컸다. 영화는 실제 보안사가 민간인 정보 수집 거점으로 활용해온 서울대 인근 카페 ‘모비딕’에서 제목을 따왔다. <누가 용의 발톱을 보았는가> 이후 20여년 만에 기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한국 영화다.

제보자(2014)
2005~2006년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한 줄기세포 조작 스캔들에는 언론의 책임이 크다. 황우석 전 서울대 교수가 거짓말을 거듭하는 동안 언론은 검증 없이 받아쓰기 바빴고 그를 국가적 영웅으로 만들었다. 우희종 서울대 수의학과 교수는 10일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당시 언론의 보도행태를 비판하며 “그때 복제소는 실제가 아니라 언론에서만 존재했다”고 꼬집었다.


영화는 한국 언론의 부끄러운 자화상과 자랑스러운 언론인들을 동시에 그린다. 배우들이 연기한 용기 있는 제보자, 끈질기게 진실을 파헤치는 MBC PD수첩 제작진을 다시 마주하다 보면 스크린 속 허구가 아니라 11년 전 현실이었던 그때가 그리워지기도 한다.

소수의견(2015)
강제철거 현장에서 의경을 살해한 남성이 재판에 선다. 남성은 철거깡패가 아니라 경찰이 자신의 아들을 죽였다며 정당방위라고 주장한다. 재판정을 중심으로 남성의 변호를 맡은 국선변호사, 진실을 숨기려는 검사, 검은 고리를 들추려는 기자가 등장한다.


동명소설이 원작인 영화의 배경은 용산참사를 떠올리게 한다. 배우들의 호연도 현실감을 불어넣는다. 열혈 기자 공수경 역을 맡은 배우 김옥빈은 당시 언론시사회에서 “변호사가 남성의 무죄를 밝혀내는 역할이라면 기자는 법정 밖 사람들에게 진실을 알려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의 명대사로 ‘법률 용어 더럽게 어려워요, 지들끼리만 알아들어’를 꼽으면서 “법조계의 잘난 척을 눈꼴 시려하는 역할이라서 기자 마인드로 이해했다”고 밝혀 웃음을 안기기도 했다.

스포트라이트(Spotlight, 2016)
우리사회에 왜 저널리스트가 필요한가. 실제 보스턴 글로브 스포트라이트팀의 취재기를 담은 영화는 이 물음에 가장 완벽한 답변일지도 모른다. 가톨릭교회에서 벌어진 아동 성추행 사건을 집요하게 파헤친 기자들은 이상적인 저널리즘을 몸소 실천한다.


이들은 수 십 년 동안 은폐됐던 사건의 당사자들을 집요하게 추적하며 관련 기사 600여개를 쏟아낸다. 결국 투철한 기자정신으로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는 명제를 증명한다. 지난해 평단의 극찬을 받은 스포트라이트는 영화적 요소를 뺀 스토리만으로도 탐사보도의 교과서로 충분하다.

공범자들(2017)
언제부턴가 ‘공영방송 정상화’란 외침이 계속되고 있다. 그러나 밖에 선 사람들은 조금씩 무감각해진다. 최승호 PD가 두 번째 다큐멘터리 영화 <공범자들>을 제작한 이유다. 지난 2008년 이명박 정부 이후 10년 간 공영방송을 몰락시킨 주범들을 카메라에 담았다. 최 PD는 “지난 정권들이 어떻게 공영방송을 장악했는지 그걸 기록한 영화”라고 했다.


지난 9일 언론시사회에서 최 PD는 공범자 ‘끝판왕’으로 이명박 전 대통령을 꼽았다. “이 전 대통령이 공영방송 장악 계획을 실행에 옮겼고 결국 전체적인 구도를 완성했다. 그걸 그대로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물려줘 최순실 국정농단, 탄핵 사태가 발생했다. 최고의 책임자가 이 전 대통령이다.”

김달아 기자 bliss@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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