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을 즐겨야 일도 즐긴다…기자사회 '욜로(YOLO)' 열풍

새벽 당직후 클럽에서 춤도 추고 주말엔 동호회 모임으로 기분전환
꾸준한 운동으로 체력 기르고 외국어 공부 등 자기계발 노력도
비용과 시간 들지만 내 삶에 도움되면 아깝지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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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한 방송사의 정치부 A 기자는 일부 주말 시간을 꽃꽂이에 할애한다. 별칭은 ‘지는 것도 꽃이어라’다. 이름 아침부터 늦은 저녁까지 국회 안에서 일과를 소화해야 하는 A 기자의 유일한 취미다. “남자가 웬 꽃이냐”는 따가운(?) 시선이 있을 거라 예상했지만, 페이스북에 공개하니 “나도 해보고 싶다”는 반응 일색이다. 그는 “일주일에 한 번씩 꽃을 바꿔주면서 새로운 꽃을 알아가는 재미가 쏠쏠하다”며 “한 송이에 2000~3000원 정도로 가격도 매우 저렴해 누구든지 당장 할 수 있는 취미”라고 설명했다.


#2. 한 경제방송사의 B 기자는 헬스와 농구, 축구, 달리기 등 운동광이다. 5년 전부터는 체육관에서 게임을 뛰는 ‘농구 동호회’에 가입했다. 올해 3월부터는 주말에 달리는 ‘러닝 동호회’에도 동참했다. 한번 뛰면 기자생활로 쌓였던 스트레스가 순식간에 날아간다. B 기자는 “요즘도 간혹 2차, 3차까지 금요일 회식을 하며 취재하는 간부들이 있지 않나. ‘기사 빼달라’는 청탁만 듣기 일쑤”라며 “승패가 갈리는 팀플레이 운동으로 스트레스를 풀고 인맥도 넓히는 동호회 활동이 오히려 취재에 훨씬 도움된다”고 소개했다.


#3. 한 일간지의 C 기자는 디지털 업무 특성상 실시간으로 쏟아지는 카카오톡 업무 지시에 노이로제가 걸릴 정도라고 호소한다. 퇴근 없는 카톡 감옥에 갇힌 기분을 누가 알아주랴. 상사스트레스에서 유일한 해방구는 ‘아무 것도 안하기’다. 주말에 휴대폰을 꺼놓고 약속도 잡지 않고 집에서 음악을 듣거나 책 보면서 쉬는 것이다. 그는 “휴가 중에도 따로 여행가지 않고 서울의 특급 호텔 패키지를 끊고 ‘나홀로 힐링’을 즐기기도 한다”며 “해외 여행보다 돈 덜 들고 피로도 털어낼 수 있는 ‘진짜 휴식’”이라고 했다.



인생을 즐겨라…‘욜로’ 열풍
바쁜 와중에 자투리 시간을 활용해 재미를 찾는 ‘욜로(YOLO·You Only Live Once) 라이프’ 열풍이 언론계에도 불고 있다. 욜로는 ‘인생은 한번 뿐’이라는 의미로, 현재의 시간을 즐기고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는 새로운 문화 트렌드다. 오바마 전 미국대통령이 건강보험 개혁안을 홍보하는 비디오의 마지막 장면에서 “YOLO, Man”이라고 외치면서 유명해진 말이다.


개인주의 성향이 강한 젊은 기자들은 업무 외에도 취미생활과 자기 계발을 병행하며 삶을 즐기는 경우가 많다 “우리가 가족”이라며 선후배 동료들과 늦은 새벽까지 술을 마시고 전우애를 불사르는 모습은 사라진지 오래다. ‘서예나 그림 배우기’, ‘아기자기한 용품 모으기’, ‘사표 내고 해외여행 가기’ ‘예쁘고 건강한 요리 만들기’ ‘독서클럽으로 지식 나누기’ 따위의 것들이다. 한 일간지 온라인 부서의 기자는 “새벽 당직 후에 같이 당직을 선 팀원들과 클럽에 가서 음악과 춤을 즐기는 게 고된 기자 생활을 버티는 비결”이라며 “우리 회사뿐만 아니라 다른 회사도 점점 단체가 아닌 친한 사람들끼리만 뭉쳐서 자유롭게 놀러가는 회식 문화로 변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동호회 모임·운동으로 스트레스 해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활용한 모임도 ‘사람 만나기를 즐기는’ 기자들에게 어울리는 자리다. 특히 관심사가 같은 또래 모임은 더욱 인기가 높다. 사진 동호회에 가입해 6년째 주말 모임에 나가는 한 일간지 11년차 기자는 “대개 근교에 나가서 풍경이 아름다운 곳을 택해 사진을 찍는 모임인데, 일에 치여 있다가 주말에 바람도 쐬니 스트레스도 풀리고 부담도 없어 좋다”고 했다. 그는 “내 연차쯤 되면 미혼인 경우가 거의 없어서 주말에 함께 할 친구도 마땅치 않은 경우가 많을 것”이라며 “삶을 즐기는 자신만의 비법을 만들어야 오랫동안 일도 할 수 있지 않겠나”고 조언했다.


불규칙한 업무 시간에 외근과 술자리가 많은 기자에게 운동은 필수다. 꾸준히 체력을 길러야 지치지 않는다는 선배들의 조언 속에서 젊은 기자들은 저마다의 운동 비법을 갖추고 있다. 한 온라인 매체의 기자는 “수영을 시작한 뒤로 허리도 아프지 않고 오랫동안 타자를 쳐도 어깨가 뭉치지 않는다”며 “주변 선배들도 ‘얼굴이 많이 좋아졌다’는 말을 종종 할 정도로 확연히 몸이 달라졌다”고 했다. 한 방송사의 기자도 매 주말마다 등산을 하며 스트레스를 해소한다. 그는 “유일하게 저녁약속에서 자유로운 시간은 주말이다. 등산을 하고 내려와서 함께 등산한 친구들과 시원한 맥주 한 잔 하는 게 낙”이라고 전했다.

새벽부터 학구열 불태우기도 
무조건 놀기만 하면 불안한 젊은 기자들도 있다. 이들은 업무 외에도 틈틈이 자기 계발을 하는 데 게을리 하지 않는다. 하루 한 시간씩이라도 영어나 일어, 중국어 등 외국어를 배우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학구열을 불태운다. 한 통신사의 기자는 “해외 취재에 나갈 때마다 통역을 대동해야 하는 불편함이 있다. 영어를 모국어 수준으로 잘하는 동료는 인터뷰할 때도 질문 수준부터 다르더라”며 “취재를 심도 있게 하기 위해서라도 외국어를 꼭 배워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박사학위 취득을 앞둔 한 방송사의 기자는 전문기자로의 길을 걷고 있다. 그는 사내에서도 ‘디지털 전문가’로 불릴 만큼 최근 온라인뉴스 트렌드를 발 빠르게 분석하고 콘텐츠 기획자로서의 역할을 해내고 있다. 그는 “연차가 쌓일수록 실력이 늘기보다 젊은 기자들의 디지털 감각에 밀리는 불안감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디지털 언론 분야를 공부하고 해외 언론 사례도 꾸준히 분석해나갈 예정”이라며 “남들보다 비용과 시간이 더 든다는 부담이 있지만, 미래의 내 삶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기에 아깝지 않다”고 했다.

‘기자’ 그 이름으로…초심 다지는 기자들
급변하는 언론 환경 속에서 디지털 감각을 키우며 자신을 홍보하는 기자들도 많다. 네이버 기자페이지를 통해 기사를 활발하게 노출하는가 하면, 페이스북이나 인스타그램 등 지면이나 방송리포트 외의 다양한 유통망을 통해 기사를 공유하고자 한다. 특히 미처 하지 못한 뒷이야기를 모아 유튜브로 제작해 내보내거나, 블로그에 취재후기를 올리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한 방송사 기자는 “SNS 활동을 하면서 독자들의 반응을 실시간으로 받게 되면, 기자로서의 책임감과 사명감을 문득 떠올리게 된다. 자연스럽게 업무에 대한 불만도 줄어들게 된다”고 했다.


재능기부를 하며 삶의 의미를 되새기는 기자도 있다. 온라인 멘토 서비스를 활용해 언론인을 꿈꾸는 취업준비생을 대상으로 교육을 하는 방식이다. 한 일간지의 팀장급 기자는 “기자가 된 이상 일 자체를 즐겨야 하지 않겠나. 다들 그렇기 때문에 힘든 취재도 견디고 있는 것으로 안다”며 “각 분야의 전문가들을 만나 심도 있는 대화를 나누는 기회가 있다는 것 자체가 재미있다. 자유롭게 근무시간을 활용해 자기가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날 수 있는 직업은 기자가 유일하다”고 자부했다. 그는 “어떤 취미생활을 하든 간에 자신이 만족하고 일상의 활력소가 된다면 취재에도 도움이 되는 것 같다”며 “일은 즐기되 매몰되지 않는 한에서 다른 생활을 병행해야 오래도록 기자 업에 몸담을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이진우 기자 jw85@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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