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론화와 언론

[언론 다시보기] 김서중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김서중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정부는 노후화된 고리 원전 1호기를 폐쇄하기로 결정했다. 이어 신고리 원전 5·6호기 공사를 잠정 중단하고 공론화 과정을 거쳐 공사의 지속 여부를 결정하겠다고 했다. 한국 원전의 역사에 커다란 분수령이 될지도 모르는 사건이다. 매우 신중하고 합리적인 결정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이런 국가의 중대사가 잘 진행되려면 당연히 공정하고 신중한 언론의 도움이 필수적이다. 그런데 그게 그리 낙관적이지 않다. 정상적인 언론이라면 공론화 과정을 여론조사와 동급으로 치부하며 원전을 여론에 맡기냐는 식의 기사를 내보낼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런데 그런 기사들이 난무한다. 정말 모르는 것일까? 그렇다면 언론으로서 최소한의 자격조차 갖추지 못한 것이다. 알고도 그런다면 국가 중대사를 정치적 승패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한국 언론의 고질적인 병폐가 작용하는 것이라는 점에서 심각한 우려를 금할 수 없다.


물론 공론화가 만능은 아니니 공론화의 위험성이나 공론화가 성공할 수 있는 조건을 따지고 제시하는 것은 매우 필요하다고 본다. 그게 언론의 구실이다. 사실 여론조사와 거의 동일시 하는 수준의 왜곡이 아니라면 공론화가 적절할 방법인지 비판이 가능하다고 본다. 하지만 전문가의 의견과 공론화를 대립시키고 전문가의 의견을 반영하지 않는다는 주장은 가능하지 않다. 일부 언론은 ‘전문가를 배제한 여론 재판’이라는 악의적 표현까지 동원했다. 시민 배심원들이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진짜 전문가를 균형 있게 불러 정확하고 깊이 있는 정보를 제공하는 것이 공론화에 가장 중요한 부분이고 필수임을 모르는 것일까? 아니면 일반 시민들이 ‘공론화 과정’을 비전문가들의 난상토론 정도로 여기게 하고 싶은 것일까?


전문가의 도움을 받더라도 비전문가들이 판단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주장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세상에는 공론화를 통해 국가 중대사를 결정하는 예들이 많다. 독일의 원전 중지 결정도 그렇고 심지어 스위스에서는 국민투표로 원전 중지 결정을 했다. 민주주의를 신뢰하기 때문이다. 물론 왜곡된 언론만이 존재하는 편향된 사회에서 여론조사 방식이나 다를 바 없는 국민투표는 대중 선동의 결과 잘못된 결정에 이를 수도 있다. 그러나 정확하고 다양한 정보가 주어진 사회에서 시민들의 집단적 선택은 옳을 수밖에 없다. 그것이 숙의 민주주의다. 공론화 과정이 그 하나의 방식이다.


또 전문가들은 깊이 있는 지식과 정보를 알 수는 있지만 다양한 방식으로 이해당사자들과 연루될 수 있다. 지금 한국 사회에는 핵 마피아라는 말이 있다. 아주 일부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전문가라는 사람들은 한쪽 이해 당사자와 연루되어 있다는 뜻이다. 일반 시민들도 개인차가 있고 편견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심도 있는 토의를 통한 일반 시민들의 집단적 결정은 그런 개인차를 상쇄시킨다고 보는 것이다.


사실 공론화가 숙의민주주의 한 형식으로 좋은 방법이기에 그런 이유만으로 선택할 수도 있지만, 공론화 제안이 언론 불신에서 비롯될 수도 있다. 어떤 의제를 둘러싼 주장들이 대립될 때 양측의 주장을 정확히 전달하고 이에 관한 깊이 있는 의견을 제시하는 게 언론의 구실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에 이런 소임을 다하고 있다고 평가받을 만한 언론이 과연 몇이나 될까. 지금 정부의 공론화 결정을 대하는 많은 언론 특히 정파적 언론들의 행태에서 그런 우리 언론의 한계를 다시 확인할 수 있다.


공론화 과정과 결과가 좋으려면 그 절차 못지 않게 이를 다루는 언론의 보도 태도가 중요하다. 그런데 쉬워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면 누가 나서야 할까? 그런 언론사가 자신의 삶터인 기자들이 나서서 고칠 수밖에 없다. 사영 언론이라고 예외는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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