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대학의 이유 있는 실험 '입학 쿼터제'

[글로벌 리포트 | 남미] 김재순 연합뉴스 상파울루 특파원

▲김재순 연합뉴스 상파울루 특파원

요즘 브라질 사회에서 최대 이슈는 누가 뭐래도 정치다. 연방검찰이 현직 대통령을 부패 혐의로 기소하면서 그의 거취에 관심이 쏠리는가 하면, 전직 대통령이 부패 혐의로 실형을 선고 받은 것을 두고 정치권이 좌-우파 진영으로 나뉘어 충돌하고 있다. 2018년 대통령 선거에 대한 관심은 급속도로 커지고 있으나 누구도 자신 있게 판세를 점치지는 못하고 있다. 이처럼 한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안개정국 관련 뉴스가 홍수를 이루는 상황에서 언론은 한 대학의 실험에 주목하고 있다.


브라질은 물론 라틴아메리카 지역에서 최고의 명문 대학으로 꼽히는 상파울루 주립대(USP)는 최근 입학 쿼터제 확대 계획을 발표했다. 전체 학생 가운데 공립학교 출신의 비율을 2018년 37%, 2019년 40%, 2020년 43%, 2021년 50%로 단계적으로 높이겠다는 것이다. 입학 쿼터제로 늘어나는 학생 가운데 흑인과 흑인 혼혈, 인디언 등 유색인종의 비율을 2018년 14%, 2019년 15%, 2020년 17%, 2021년 19%로 늘리겠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상파울루 주립대의 학부와 대학원 과정 학생 수는 9만6000여 명이다. 교수는 5980여 명, 교직원은 1만5460여 명에 달한다. 올해 대학 운영 예산은 한화로 1조8000억 원이며, 이 가운데 1조7000억 원은 상파울루 주 정부가 부담한다. 상파울루 주립대는 브라질에서 유일하게 대학입시재단(Fuvest)이 주관하는 시험을 통해 전국에서 학생을 선발한다. 브라질 대학입시 제도의 상징적 존재인 셈이다.


이 대학의 입학 쿼터제 확대 방침을 두고 찬반 의견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찬성론자들은 교육 기회의 균등을 명분으로 내세운다. 교육비가 비싼 유명 사립고교 출신에게 유리한 현행 입시 제도를 개선해 공립학교 출신 학생 선발을 늘리는 방식으로 공교육을 활성화해야 한다는 취지다. 실제로 올해 전체 고교생의 85%가 공립학교를 졸업했으나 상파울루 주립대 입학생 가운데 공립학교 출신은 36.7%에 그쳤다.


입학 쿼터제 확대에 반대하는 측은 대학의 질적 수준 저하를 우려한다. 그렇지 않아도 국제적인 평가를 통해 낮은 점수를 받는 상황에서 쿼터를 늘리면 대학의 위상이 추락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쿼터 확대로 역차별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을 지적하는가 하면, 저소득층의 우수 학생에 대한 교육 기회 확대는 인정하지만, 인종 쿼터는 타당성이 떨어진다는 주장을 제기하는 사람도 있다.


이 대학의 마르쿠 안토니우 자구 총장은 입학 쿼터제를 확대하더라도 이행 과정을 수시로 평가해 내용을 조정할 것이라며 “상파울루 주립대는 사회의 요구에 부응해야 하며 이를 통해 사회적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는 말로 논란을 정리했다. 중간 소득층 이하 가정의 우수한 학생들이 경제적인 이유로 사립학교 교육을 받지 못하고, 이 때문에 최고 수준의 대학에 입학할 수 있는 기회를 얻지 못하는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입학 쿼터제 확대 움직임은 다민족·다인종·다문화 국가이자 극심한 빈부격차와 기회차별 문제를 안은 브라질의 현실을 반영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대학 교육의 품질을 유지하면서 대학의 사회적 기능과 역할에도 소홀하지 않겠다는 브라질의 고민을 읽을 수 있다.


김재순 연합뉴스 상파울루 특파원의 전체기사 보기

배너

많이 읽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