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농단 수사 이영렬 중앙지검장 '조사 대상' 안태근과 부적절 만찬

제321회 이달의 기자상 취재보도1 부문 / 한겨레신문 사회부 강희철 기자

▲한겨레신문 사회부 강희철 기자

기자가 잔인한 직업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이번처럼 공직자로 오랜 기간 긍지와 보람을 갖고 일해 왔을 사람들이 기사로 인해 하루아침에 나락으로 떨어지는 것을 볼 때면 마음이 몹시 불편해진다. 특히 밥 먹으러 가자는 윗사람의 지시 아닌 지시에 어쩔 수 없이 따라나섰다가 봉변과도 같은 징계를 당했을 몇몇 부장들에겐 미안한 마음이 절로 든다. 참석자의 이름을 알면서도 굳이 명기하지 않는 것으로 마음 한 조각이라도 전하고 싶었다.


이십 수년 기자로 일하는 동안 비슷한 일이 몇 번 있었다. 어릴 땐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 잘못한 사람들은 응당 그만한 책임을 져야 한다고 여겼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는 생각이 많아졌다. 펜은 언제든 눈먼 칼이 될 수 있다.


기자만 잔인한 것은 아니다. 기원전에 만들어진 ‘삼인성호’의 고사는 여전히 유효하다. 단적으로 이 기사의 출처를 둘러싼 얘기들이 그러하다. 기자와 가까운 검찰 내 특정 인사를 이 기사의 취재원으로 지목하는 여러 유언을 들어왔고, 요즘도 듣고 있다. 때 아닌 장문의 취재기까지 써가며 그게 아니라고 열심히 설명해 보았지만 별무소용인 듯하다.


새 정부가 들어서고 대규모 인사를 앞둔 상황에서 이런 비어들이 생산되는 풍경은 전혀 낯설지 않다. 경쟁자를 밟아야 자기가 산다는 검찰의 조직 문화가 두렵고, 평소의 친분 때문에 ‘배신자’의 누명을 뒤집어쓴 그 검사가 안쓰럽다. 함부로 지어내는 말은 칼 이상으로 무섭다.


검찰에만 ‘만들어진 호랑이’가 있는 것은 아니다. 가창오리 떼를 닮아가는 여론의 세태는 칼춤을 넘어 테러에 가깝다. 단정과 맹신으로 팩트와 성찰을 뭉개려 드는 집단적 확증편향의 광기에 맞서 기자 노릇 제대로 하기는 점점 더 힘들어지고 있다.


이래저래, 안에도 밖에도 무서운 것 천지다. 그러니 오늘도 그저 중심을 잃지 않기 위해 버둥거릴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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