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적 균형 보도의 함정

[언론 다시보기] 김진혁 한국예술종합학교 방송영상과 교수

▲김진혁 한국예술종합학교 방송영상과 교수

지난 10년간 언론지형은 크게 바뀌었다. 우선 이명박 박근혜 정권에 걸쳐 이루어진 방송 장악과 탄압으로 인해 미디어 최강자였던 공영언론의 경쟁력이 크게 약화됐다. 반면 종편을 위시한 여타 케이블 채널들은 엄청난 성장을 했다. 특히 JTBC가 기존 종편 대열에서 이탈하여 다른 논조를 갖게 됨으로써 그나마 지상파가 쥐고 있던 저널리즘으로서의 명분도 희석되어져 버렸다.


그뿐만이 아니다. 진보와 보수라고 하는 언론 구도도 예전 같지 않다. 얼마 전 SNS 상에서 불거져 급기야 오프라인과 지면에까지 확대된 소위 ‘한경오’ 논란은 민주주의와 진보언론이 동일시되던 시대가 더 이상 아님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사실 그 ‘동일시’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건 이미 팟캐스트가 된 지 꽤 오래 됐다. 과거엔 ‘언론’ 혹은 ‘언론인’이란 이름이 어울리지 않았던 이들이 만들어 내는 콘텐츠들을 사람들은 가장 신뢰하고 즐겨 듣는다. 매우 전문적인 훈련을 받은 ‘엘리트로서의 언론인’을 당연시했던 기성 언론과 언론인들에게 대단히 곤혹스러운 지점이다. 애초 시작은 특정 권력의 ‘언론 장악’이었으나 이젠 그 말이 무색할 만큼, 그러니까 어느 일방의 장악으로 비롯된 결과라고 하기엔 너무 많은 것들이 변해버렸다. 그래서일까? 이러한 변화가 무엇을 함의하는지, 그리고 이 변화에 대해 어떠한 반응을 보여야 하는지, 무엇보다 앞으로 기성 언론이 자신의 존재 이유를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지에 대해 다들 매우 혼란스러워 보인다.


그나마 공영언론 정상화의 경우엔 해직 언론인 복직과 권력 친화적 방송을 했던 이들의 퇴진으로 비교적 명쾌한 해법이 제시되어 있다. 그리고 머지않아 이 부분에 대해 공영언론 종사자 스스로가 바로잡아 낼 것이다. 비록 많은 상처가 있긴 하지만 스스로 바로잡아 낼만한 능력과 자존심을 지닌 이들이다.


상황이 복잡해지는 건 정상화 이후다. 이제 공영언론들까지도 진보언론들과 유사한 상황에 함께 처하게 될 게 뻔하기 때문이다. 과거처럼 여당 야당을 ‘균형’ 있게 비판을 하면 왜 민주적인 여당과 비민주적인 특정 야당을 똑같은 무게로 비판하느냐는 비난이 되돌아 올 것이기 때문이다. 예전에야 그런 말을 하는 이들을 그냥 특정 정치세력의 극렬 지지자라고 치부하면 그만이겠지만, 얼마 전 그런 태도를 보였다가 이미 사과를 한 언론인들이 한 둘이 아닌 살벌한 상황이다.


성역 없는 비판을 목숨으로 알던 언론인들 입장에선 벙어리 냉가슴 앓듯이 속이 타들어갈 것이다. 아무리 ‘우리 편이라도’ 언론은 거기에 대해서도 날카롭게 비판을 할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닌가? 맞다. 언론은 그래야 한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을 해 보면 이러한 생각에 뭔가 미심쩍은 구석이 있다. ‘균형’이 함의하는 건 그 자체로 ‘나쁜 놈’에게 유리한 프레임이기 때문이다.


사실 나쁜 놈은 나쁘다고 말하면 그뿐이다. 좋은 놈은 좋다고 말하면 역시 그만이다. 그 대상이 여당이든 야당이든 둘 다이든 둘 다 아니든 상관은 없다. 당연히 여야 균형을 맞춰야 할 이유는 더더욱 없다. 그런데도 굳이 균형을 맞추고자 하면 의도했든 아니든 언론의 판단 기준은 여와 야 사이가 되어버리고 만다. 소위 ‘기계적 균형’인 셈이다. 그리고 기계적 균형은 좋은 놈과 나쁜 놈이 그저 취향이나 생각이 다른 정도로 대치하고 있는 것처럼 왜곡하게 된다.


그렇게 보면 시민들의 반발은 이러한 문제를 야기하는 기성 언론의 오랜 보도 관행에 대한 수정 요구라고 읽을 수 있다. 근본적으로 문제가 있으나 너무 오랫동안 관행화되어 기성 언론인들에게 무감각했던 부분, 바로 그 지점을 팟캐스트가 파고들었던 건 아닐지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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