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심위원 임명에 바란다

[컴퓨터를 켜며] 최승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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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영 기자

함귀용 위원 : 불쾌감이 안 느껴졌다고 하면 ‘문제없음’인데 저는 불쾌감을 못 느꼈습니다. 그래서 저는 ‘문제없음’ 의견 내겠습니다.
하남신 위원 : 예
장낙인 위원 : 저도 ‘문제없음’입니다.
윤훈열 위원 : 저도 동의합니다.
김성묵 소위원장 : 전원 ‘문제없음’으로 결정하겠습니다.


지난해 6월 제3기 방송통신심의위원 일부가 참석한 정기회의에서 나온 발언들이다. 국방TV 프로그램 ‘위문열차’에 대한 심의였다. 출연한 걸 그룹 멤버는 무대에 올라온 병사와 짝을 짓게 됐고, ‘친한 척’하는 포즈를 요청받았다. 이 과정에서 한 병사가 동의 없이 멤버의 허리·어깨 등을 감아 안았고, 다수 민원이 접수됐다. ‘남성 출연자가 여성 가수 신체의 일부를 과도하게 접촉해 불쾌감을 유발했다’는 취지. 하지만 이날 회의에 참석한 5명의 심의위원들은 누구도 불쾌감을 느끼지 못했다.


‘나’의 불쾌감 없음이 ‘문제없음’ 판단의 기준이 됐다. 내 정체성이 내 판단을 결정한다. 심의위원 나는 누구인가. 평균나이 64세, 주류 중장년층 남성. 심의위원 9명의 면면을 살펴보면 그렇다. 그런 ‘나’의 감정이 행정기구 결정의 주요 근거가 됐다. 여야 어디서 추천했는지도 이 정체성보다는 뒤로 밀린다. 대한민국 주류 기득권 남성들이 이처럼 사회 전반과 트렌드, 대중문화의 정수라 할 수 있는 방송 프로그램을 어떤 ‘보편적 주체’의 자리에서 바라보고 판단하고, 잘잘못에 대한 판정까지 내려온 게 방송심의의 역사다.


이런 분위기는 ‘여성주의’ 이슈로 가면 절망스러워진다. 반여성 심의라 할 수 있는 사례는 부지기수다. 최근 몇 년 간 우리 공동체에서 가장 ‘핫’했고, 앞으로도 그럴 가능성이 높은 이슈를 두고도 위 같은 발언이 오갔다. ‘동의 없는 신체 접촉’은 언제나 바람직하지 않고, 그게 방송됐는데도 문제제기가 없었다. 프로그램 포맷 상 재발 가능성이 농후한데도 사후조치에 대한 당부도 없었다. 걸 그룹의 군 위문공연 자체를 두고 ‘사기 증진을 목적으로 여성의 성적인 이미지를 이용하고 국가가 이를 승인하는 게 문제’라는 지적이 나오는 세상이다.


방송심의기구는 왜 중요한가. 방송의 내용을 평가하는 기구여서다. 상당수 방송 프로그램은 국민들이 가장 편하게 생각하는 정서와 상식에 기반한다. 이를 구축하고 공고히 한다. 그런데 편한 정서가 항상 옳진 않다. 이를 테면 일부 인기 예능 콘텐츠에서 지속 반복되는 ‘집밥’, ‘어머니 밥상’ 등을 통한 성역할 고정 편견강화가 사례다. 누군가의 불편함에 기댄 편함이 자연스럽고 당연한 일이 된다. 가벼운 외피가 감성적으로 비무장된 시청자의 일상에 깊이 스며들게 만든다. 그렇게 만들어진 관성은 힘이 세다. 방심위가 그런 인식들을, 변해가는 세상에 걸맞은 윤리나 규범으로 탈바꿈시키는 데 공헌할 수 있다면 이는 결코 작은 역할이 아니다.


더불어민주당이 19일 심영섭 언론인권센터 정책위원과 윤정주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소장을 방송통신심의위원으로 각각 추천했다. 연령과 성별 등의 측면에서 일단은 환영할 만하다. 대통령이 추천하는 3명을 포함한 나머지 심의위원은 누가될지, ‘여성내각 30% 공약’이 실현될지, 연령은 어떨지 궁금해진다. 4기 출범을 앞두고 있는 방심위가 반인권, 반여성, 꼰대심의라는 그간의 오명을 벗어던질 수 있기를 기대한다. 그 시작이 다양한 정체성의 심의위원 구성에 달렸다. 세상 절반의 문제가 ‘문제 없음’이 되지 않기 위해서 말이다.

최승영 기자 sychoi@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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