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 트라팔가 광장에 떠오른 세월호, 소통과 단절

[특별기고] 신은서 TV조선 기자(LSE 사회정책 석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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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서 기자

“전쟁을 겪지 않은 여러분은 남을 위해서 진정으로 울어줄 수 있는 세대입니다.” “정보화라는 초고속 열차에서 뛰어내리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대학시절 은사님들의 울림을 최근 곱씹게 됐다. 아이러니하게도 영국에서 학생신분이 되어 커뮤니케이션을 바라본 덕이다.


매월 셋째 주 토요일, 런던의 상징, 트라팔가 광장에선 세월호 집회가 열리고 있다.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이 집회는 3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집회의 중심엔 영국인 남성 앤드류 젠슨과 한인 여성 대비 김 커플이 있다. 이들은 결혼 17년차 ‘맞벌이 부부’인 평범한 런던시민이다.


“세월호 사고 한 달 뒤 광장에 나갔어요. 처음엔 정부가 뭔가 발표하겠지 했는데 아니었어요.(대비 김)” 영국은 집회에 사전신고가 필요 없다. 그래서 바로 거리로 나갈 수 있었다. “시위는 그해 12월까지로 생각했어요. 그때까진 정리가 되겠지 했죠.(대비 김)” 하지만 시위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학생, 직장인, 교수, 영국 시민 등 참여층도 다양해졌다. 피켓을 들고 오가는 사람들에게 전단지를 나눠주고 세월호에 대해 설명해주는 식이다. 퍼포먼스를 할 때도 있다. “(영국인들이) 저에게 와서 우리나라(영국)에 원하는 게 무엇인지 묻더군요. 저는 ‘없다, 그저 알고 있으면 됐다’고 했어요. 여기서도 대부분 세월호 사고를 기억하지만 선장이 체포됐다는 게 최종 버전입니다.(앤드류)”


집회는 BBC 등 글로벌 매체를 통해 한국에도 소개됐다. 주최측은 이달 초엔 세월호 사고로 희생된 단원고 김도언 학생과 진윤희 학생의 어머니를 초청해 세미나를 가졌다. 어머니들은 희생자 한 명 한 명을 이름으로 기억해주길 바랬다. 안전공원 후보지 논란에 대한 안타까움도 내비쳤다. 그래서 세월호 행사는 어떤 형태로든 계속될 예정이다. 희생자 가족들에 힘을 주고 진상규명을 주시하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다. “한국 정부와 언론은 어느순간 세월호 문제에서 ‘넘어가자’고 했어요. 언론은 ‘new’를 찾아야 하니까 계속 같은 내용을 보도할 수는 없겠죠.(앤드류)” “움직이고 싶지만 아무것도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선 움직일 수가 없는 게 희생자 가족들입니다. 기억하면서 동시에 다음 단계로 나가는 게 정부가 할 일이죠. (대비 김)”


▲매월 셋째 주 토요일, 영국 런던 트라팔가 광장에선 세월호 참사의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집회가 3년 넘게 이어지고 있다.

세월호 집회는 작년 말 탄핵 정국 때 세가 커졌다. 탄핵 관련 집회에도 영향을 끼쳤다. 흥미롭게도 집회 참가자들은 모두 ‘다행이다’는 단어를 입에 올렸다. 대화가 단절된 세대를 의식한 말이다. “집회에 어른들도 나와 있어서 ‘다행이다’고 생각했어요. 우리(젊은 세대)만 외롭게 하는 게 아니구나.(이희주, 대학생)” “젊은 사람들이 나와서 ‘다행이다, 아직 건강하구나’ 생각했어요.(이진용, 변호사)”


보수든 진보든 서른 명 남짓 만나본 런던의 한인들은 모두 올해 초 주변과 대화가 늘었다고 말했다. 단 ‘생각이 같은 사람’이 전제였다. 집안이 보수적이라는 한 유학생은 정치 때문에 아버지와 대화가 단절됐다고 한다. 하지만 그녀의 가치관에는 아버지의 영향이 묻어났다. 그녀 자신도 대화도중 이를 깨달은 듯 “아빠랑 사이는 좋았어요. 생각이 달라지면서 멀어진거죠”라고 했다.



소통은 갈수록 쉬워진다. 하지만 단절도 쉬워졌다. 적어도 2017년 커뮤니케이션은 가까운 사람들과 다른 의견을 교환하기보다 같은 의견을 가진 이들 내에서 가능한 것으로 보였다. 낯선 사람 앞에서 솔직해지던, 영화 ‘클로저’의 장면이 겹쳐졌다.


달리는 정보열차에서 뛰어내리고 싶다면, 가장 많이 알고 가장 먼저 답을 찾아야 한다는 강박관념 때문일지도 모른다. 때론 단절된 사람들을 이어주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가슴으론 늘 남을 위해 울지만, 펜을 잡을 땐 냉정해야 하기에, 누군가를 위해 지속적으로 소리내어 울어주는 이들의 목소리를 놓치지 않는 것도 언론의 역할일 수 있겠단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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