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계부채 악화 소비자 역선택 조장하는 '주류대출'

제320회 이달의 기자상 경제보도부문 / 매일경제신문 주간국 노승욱 기자

▲매일경제신문 주간국 노승욱 기자

자영업 시장을 취재하던 중이었다. 한 자영업자가 “‘주류대출’을 받았다가 쓴맛을 봤다”고 말했다. 주류대출이 무엇이냐고 물으니 ‘프랜차이즈에서 예비 창업자에게 최대 5000만원까지 무이자로 해주는 대출’이란다. 이게 말이 되나 싶었다. 30년 넘게 식당을 하신 어머니는 한 번도 1금융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수입이 불확실한 자영업자는 신용이 낮다는 이유에서다. 그런데 예비 창업자는 아예 수입이 없다.


알고 보니 프랜차이즈는 알선만 하고, 실제 대출을 해주는 건 주류도매상이었다. 단, 조건이 있다. 자영업자는 해당 도매상으로부터 수년간 술을 독점 납품받아야 한다. 납품 기간을 못 채우면 대출금의 25%를 위약금으로 무는 ‘노예 계약’이다. 무이자도 아니다. 도매상은 최대 20% 안팎 고리(高利)를 술값에 전가한다. 프랜차이즈, 주류제조사, 2·3금융권은 이런 사정을 잘 알면서도 한통속이 돼 각자 이권을 추구하고 있었다.


팩트 체크를 위해 봉구비어와 가르텐비어에 예비창업자를 가장해 창업 상담을 신청했다. “창업자금이 부족해 주류대출이 필요한데 가능한가”라고 묻자 “최대 5000만원까지 무이자로 가능하다”며 창업을 종용했다. 소득, 대출 이력 등 상환능력에 대해선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다. 국세청은 단속에 손을 놓고 있었다. 국세청 담당 직원에게 주류대출 단속 현황을 묻자 “업계 관행이고, 문제가 있다면 공정거래위원회에서 다룰 문제”라며 책임을 회피했다.


주류대출이 없었으면 영세 자영업자들의 무리한 창업으로 인한 시장 포화와 연쇄 도산도 없었을 것이다. 이런 ‘나비 효과’를 감안하면 주류대출의 가계부채 조장 효과는 최소 연 1조원이란 게 업계 추산이다. 가계부채가 한국경제 뇌관으로 떠오른 지금, 이제라도 정부의 감시와 단속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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