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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고 또 쓰지만 보상도 보람도 없다는 생각, 그래서 지친다

[연중기획] 저널리즘 기본으로 돌아가자 (3부)다시 저널리즘으로 가는 길 ②탈진

최승영 기자2017.06.07 14:33:09

과도한 노동·보도 자율성 침해가 주원인
주니어급 기자들 탈진 증후군 증상 호소

평일엔 신문기자 휴일엔 통신사 기자
연차 못 쓰고 수당 ‘0’, 부서 순환도 안돼


너도나도 디지털 퍼스트…24시간 ‘데드라인’
직장인 되어가는 자신 보며 깊은 자괴감과 대면


이것은 재난이다. 탈진, 소진, 번아웃(burnout). 뭐라 불리는지는 중요치 않다. 떨어져 나가는 기자와 간신히 버티는 기자가 있을 뿐이라는 사실, 그게 중요하다. 완전히 마모되고 갈리다 못해 튕겨져 나가는 이들. 이 가운데 주니어 기자들이 자리한다. 학자들은 심리적 탈진이란 개념을 동원해 이를 연구해왔다. 무엇이 이들을 지치게 하는가. 거칠게 말하면 기자의 일상이 그리 만든다. 과도한 노동과 보도 자율성 침해가 기자들을 탈진시킨다는 설명. 지극히 평범한 일상이 조용하게 지속되는 재난이 되는 현실. 본디 재난의 위험은 고르게 분배되지 않는다. 아래로 쏠린다. 전방위적 재난피해 속에서 7~8년차 미만 기자들에게 주목한 이유다. 이들은 저널리즘의 미래를 짊어진 이들이기도 하다. ‘일하는 환경’과 ‘일하지 않을 조건’에 대한 개선 없이 우리가 마주할 미래는 명백하다. 그런 미래는 없다.

탈진의 조건…“정서적 소진”
“후배들 모두가 힘들어 한다. 그런데 뭐 어쩔 수가 없다. 나만 해도 기계적으로 이 일을 하고 있다. 일단 채워야 되고 계속 만들어야 된다는 생각이 드니까 단순하고 뻔한 것만 하게 된다. 깊이 취재할 여유가 전혀 없다.”



지역 일간지 주니어급 A기자가 기자협회보와의 통화에서 털어놓은 얘기다. 이 신문사에선 최근 한두 달 새 주니어 기자 3명이 퇴사했다. 데스크와의 갈등, 저임금과 비전 없는 미래, 스카웃 제의 등이 이들 각각이 밝힌 사유였다. 그는 통화 내내 한숨을 많이 쉬었다. 피로감이 느껴졌다. 다들 많이 지쳤던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A기자는 “평일엔 신문기자고 휴일엔 통신사 기자다. 지면은 내야 하고 클릭수도 올려야 하니까. 그런데 연차도 못 쓰고, 수당도 없다. 부서 순환도 안 된다. 사회부 사건팀을 맡은 기자가 5년째 그 일을 할 정도”라고 토로했다. 이어 “데스크는 옛날 생각만으로 말도 안 되는 일을 시킨다. 뭐라 얘길하면 ‘어쩔 수 없다’고 하는데 그럼 할 말이 없다”면서 “내가 기자가 맞는지도 잘 모르겠다”고 덧붙였다.


탈진이란 무엇일까. 두산백과사전은 ‘탈진 증후군’을 “한 가지 일에 지나치게 몰두하던 사람이 극도의 신체적·정신적 피로로 무기력증·자기혐오 등에 빠지는 증후군”으로 정의하고 있다. 또 이 분야의 선구자인 메슬렉 미국 UCLA 교수는 이를 ‘직무상 번아웃’으로 명명하고 “직업, 직장이라는 특정 상황에서 발생하는 장애”라고 밝혔다. 이에 따르면 탈진 증후군은 ‘정서적 소진’, ‘비인격화(현재 일에 대한 거리감)’, ‘자아 성취감 저하(업무 효율성 상실)’ 등 세 요소로 이뤄진다.


특히 신문·방송기자들을 대상으로 한 국내 연구에서 ‘정서적 소진’은 기자들을 심리적으로 탈진시키는 주된 요인으로 꼽혔다. 또 일과 긴장감 때문에 정서적으로 녹초가 되는 ‘정서적 소진’이란 개념이 ‘업무량’과 ‘자율성’, ‘보수에 대한 만족도’로부터 영향을 받는다고 했다.


이 같은 개념에 따르면 A기자의 사례는 ‘탈진 증후군’의 전형에 가까운 것으로 보인다. 그가 기자로서 겪고 있는 일들이 탈진 증후군의 요소로 언급된 증상으로 드러나고 있어서다. 문제는 주니어급 기자들 상당수가 이 같은 증상을 호소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과도한 노동
통신사 주니어급 B기자는 오전 7시 출근, 밤 8~9시 쯤 퇴근이 일상이었다. 늦어지면 밤 10시 가량 퇴근하고, 그래도 마무리를 못하면 집근처 카페에서 마감을 했다고 그는 말했다. 술자리에서 노트북을 펴고 기사를 쓴 적도 있었다고 했다. 사람이 부족했던 대선 시기엔 200자 원고자 15매 분량의 기획기사를 일주일 내내 꼬박 내기도 했다. 원래 자신의 업무에 가욋일로 생긴 일이었다. 그는 “그러고 집에 가면 잠자기가 아쉬워진다. 왠지 억울한 거다. 그래서 늦게 자면 다음 날 피곤해지는 악순환”이라고 했다. B기자는 “체계 없이 오더가 내려오는데 무작정 달려들다보면 ‘이렇게까지 일을 해야 하나’ 싶어진다. 바이라인이 달려 나가니 대충 쓸 순 없지만 내가 쓰면서도 의미 없는 기사를 찍어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긴 노동시간은 정서적인 소진을 야기하는 직접적인 요인이다. 실제 기자는 노동시간 자체가 긴 직군이다. 한국언론진흥재단이 펴낸 ‘한국의 언론인 2013’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 기자들의 하루 평균 근무시간은 10시간38분으로 법정근로시간 8시간을 훌쩍 넘었다. 매체별로는 라디오/종편/보도전문채널 기자가 11시간36분, 부서별로는 사회부 기자가 11시간27분으로 근무시간이 가장 길었다. 하루 평균 근무시간은 경력이 낮아질수록 뚜렷하게 증가하는 추세를 보여, 1년 미만과 20년 이상 기자는 하루 100여분의 차이가 났다. 조사 당시와 비교해 지난 5년 간 근무환경은 크게 나아졌을까?


아닌 것 같다. 2009년 14.8건이던 일주일 평균 기사 작성 건수는 2013년 온라인 기사 증가에 따라 31.3건으로 뛴 바 있다. 이후 디지털이 언론사 전략 중심에 온 시기는 주니어 기자들을 갈아 넣은 시기이기도 하다. 모두가 포털을 통한 트래픽 장사에 뛰어들었다. 기자들에겐 24시간이 ‘데드라인’이 됐다.


하지만 고질적인 인력부족 문제는 별로 달라진 기색이 없었다. 간신히 톱니바퀴를 돌릴 정도의 인력만을 사용하는 경영 기조는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진보성향의 방송사 C기자는 “뉴스 시간이 지상파의 두 배인데 취재기자는 물론 인력은 매우 적은 게 현실”이라며 “한 기자가 며칠 연속으로 리포트를 하는 경우가 있는데 사실 좀 황당한 경우다. 쏠림현상이 심해 단기간에 근로를 지나치게 해야 될 때가 많다”고 지적했다. 그는 보상이 미비하다는 점도 꼬집었다. “가끔 ‘열정페이’ 같은 느낌이 든다. 매번 ‘이 시기만 넘기자’, ‘다들 우리를 주목하고 있고 우리가 잘 해야한다’는 분위기 속에서 이의제기를 하기 어려워지는 게 있다. 좋은 보도를 하고 성과를 이루고서도 성과급이 없었다. ‘진보페이’랄까. 이름에서 오는 ‘가상임금’ 같은 게 있다고 하면 인정 못할 것은 아니지만 수중에 들어오는 게 없는데 무슨 소용인가 여겨지기도 한다.”

“보도 자율성 침해 좀 안 했으면”
기자 직군의 특이한 점은 편집권 독립 같은 저널리스트로서의 권한이 침해받을 때 탈진에 이르기 쉬워진다는 것이다. 이는 정재민 카이스트 교수 등의 2011년 연구 ‘신문사 종사자의 탈진에 대한 연구’ 등에서 수차례 확인된 바 있다. ‘한국의 언론인 2013년’ 조사에서도 “창조적이고 능동적인 직업(33.7%)”, “사회의 문제점을 파악해 사회정의를 구현하고자(28.7%)” 등이 기자직업 선택의 상위이유로 꼽혔다. 이 같은 자율성은 기자 생활이 상대적으로 짧은 주니어 기자들의 탈진에 더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요인이기도 하다. 실제 주니어 기자들은 인터뷰에서 “직장인이 돼 간다”, “억울한 사람을 돕고 싶었건 건데…”, “(보도에선 결코) 양보하고 싶지 않은 부분이 있다”며 자율성 침해에 아쉬움을 드러냈다.


공영방송사 D기자는 “위에서 편집당하는 일이 계속되면 자기검열이 생기지 않나. 일 자체가 헛수고가 됐다는 데서 오는 박탈감보다 정신적으로 안 좋은 거 같다”며 “반복되다 보면 결국 뉴스 자체를 안 보게 된다. 보면 데미지가 오고 그게 크니까 차라리 안 보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일을 통해 자아실현을 한다는 걸 아예 생각할 수 없게 된다는 게 슬픈 일”이라고 부연했다.


통신사 E기자 역시 자괴감을 느낀다고 했다. 그는 “내 의도하고 다르게 내용이 바뀌어서 나가고, 설명을 해도 먹히지 않을 때가 있다. 출입처에서 항의전화를 받기도 했다. 수긍할 수 없는 이유로 쓴 기사가 ‘킬’(Kill)된 적도 있다. 어떤 때는 ‘다 알고 지내는 사인데 안 쓰면 안 되냐’ 선배가 그런 얘길 한다”며 “‘야 차라리 그거 엿 바꿔먹어라’ 이런 말을 들을 때면 일하기가 싫어진다. 출근하기가 싫고, 기사 써서 뭐하나 싶어 태업 아닌 태업을 하게 된다. 사람을 만나기도 싫어진다”고 했다. 그러면서 “집에 가면 ‘아 또 하루 지났네. 곧 월급 들어오겠다’ 그런 생각을 한다. 그럴 때면 직장인이 되는 거 같아 자괴감이 든다”고 덧붙였다.


지역 일간지 F기자는 편집권 개입과 권력의 눈치를 보는 소속 언론사의 모습에 지친다고 했다. F기자는 “정치인 눈치를 너무 많이 본다. 잘한 건 잘했다고 못한 건 못했다고 사실대로 전하면 되는데 비판기사를 가져가면 ‘깔짝거리지 말고 큰 건을 가져오라’고 한다”면서 “큰 건을 가져가도 연락이 온다. 그 정치인이 회사에 전화를 해 사장에게 아쉬운 소릴 했으니 보도 안했으면 좋겠다고 막는 전화”라고 했다. “다 놓아버리고 싶어질 때”라고 그는 말했다.

눈치보지 않는 휴가 분위기 만들어야
기자를 둘러싼 환경은 날로 안 좋아지고 있다. 무엇보다 ‘기자’라는 직업의 평판추락은 극심하다. 선배들이 고임금과 사회의 엘리트로서 대우받는 ‘기자’ 노릇을 했다면 주니어 기자들은 ‘기레기’ 이외의 평판을 들어본 적이 없다. 이상에 대한 현실의 부족분이 고스란히 자신에 대한 혐오가 되는 연쇄. 주니어 기자들이 탈진을 겪는 또 다른 이유다. 인터넷매체 주니어연차 G기자는 “주어진 일정을 소화하다 보면 새로운 기획을 떠올릴 수가 없다. 심적인 여유가 없어서”라며 “난 분명 소진된 게 맞다. 그런데 난 정량을 했을 뿐이지 대단한 기사를 쓰려다가 이렇게 된 게 아니라 떳떳하게 말하지 못하겠다”고 했다. 그는 “대부분의 기사 반응에는 순간 감정에 의해 작성된, 호불호만 있다. 여러 의견을 들어야 더 나아질 기회가 생길 텐데 선배들은 너무 바쁘다. 필요한 시기 필요한 교정이 충분히 이뤄지지 않은 채 고연차가 된다는 게 두렵다. 결국 다 내 탓이란 생각이 든다”고 털어놨다.



주니어 기자들의 이 같은 탈진을 막기 위해서는 ‘일을 하지 않을 조건’에 대한 개선도 필수적이다. 일에 대한 걱정 없는, 눈치 보지 않는 휴가 말이다. ‘열심히 일한 자 떠나라’는 광고 카피가 언론사 안에서 만큼 물정 모르는 말이 되는 경우는 드물다. 주어진 권리와 혜택을 잘 챙기면 날로 먹는 사람이 되고, 날로 먹지 않으려 악착같이 일하면 비슷한 처지의 동료들을 힘들게 만드는 딜레마. 규모가 작은 회사에 근무할수록, 연령이 어리고 근무연한이 짧을수록, 이런 어려움은 더 커진다.


여기 선배들의 몫이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휴가를 쓰는 거다. 최근 몇 년 새 긴 휴가를 다녀온 한 고연차 H기자는 “신입 기자들은 몇 년 동안 장기간 휴가라는 건 생각할 수 없는 게 현실이다. 이들을 휴가 보내는 건 좋은 일이지만 항상 타이트한 인력구조가 발목을 잡는다”며 “특히 성향에 따라 자기가 가야될 휴가를 못 가는 선배들이 아직도 있다. 나는 일부러 자꾸 휴가를 가려고 한다. 나도 좋지만 이렇게 자꾸 다녀야 후배들도 ‘당신도 갔잖아’ 그러고 가는 게 당연한 분위기를 만드는 거 아니겠나”라고 말했다.


실제 언론사들은 연차휴가나 대체휴무 등과 별도로 안식휴가, 근속휴가 제도도 마련하고 있지만 실질적인 소진여부는 천차만별이다. 일부 메이저 언론은 소진율이 70~80%에 달하지만 다른 곳은 근속휴가를 쓰지 못하는 게 일반적일 정도로 편차가 크다. 방송사가 신문사보다, 메이저라고 불리는 신문사가 다른 곳보다 제도가 더 잘 마련된, 추세 정도만 있다. 한 언론사 노조 관계자는 “근속휴가가 있는지 모르는 경우도 많다”고 했다. 근속휴가 등을 갈 수 있는 연차는 최소 10년인 경우가 대부분인데 기준 연차를, 가장 휴가가 필요한 주니어 연차까지 내리는 것도 고려할 만한 지점이다.


장영석 언론노조 노무사는 “장기간에 걸쳐 자기 계발이나 연수, 휴식의 기회를 주는 차원의 안식년은 임금피크제 시행과 맞물려 퇴임 전 일정기간을 쉬게 하는 것 말고는 사라진 상황”이라며 “휴가만 잘 써서 재충전의 기회만 줄 수 있어도 긴 안식년 등은 필요 없을 수도 있다. 업무 관련성 차원에서 보면 그런 경험은 언론사에 충분히 의미가 있다고 본다”고 했다.

최승영 기자 sychoi@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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