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쓰고 빨리 노출해 클릭수 올리기…독자 떠나는 혁신

[연중기획] 저널리즘 기본으로 돌아가자 (2부)저널리즘 기본과 멀어진 이유 ④디지털 혁신이 구호에 그쳤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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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년 디지털 전략 내놓고 있지만 성과는 ‘제자리걸음’
지나친 속보 경쟁이 기사 질·업무 효율성 떨어뜨려
무분별하게 쏟아지는 디지털 기사, 오보 양산 주범
디지털 혁신 성과 얻으려면 조직적 통합부터 추진해야
인력·인프라 투자 우선, 세대·조직간 갈등 해소 이뤄져야


“말만 혁신이지 내부 사정은 별반 달라진 게 없어요. 매 분기마다 변화하자고는 하는데 뚜껑을 까놓고 보면 빈 깡통인 게 현실이죠.” 한 일간지의 온라인 A기자는 언론사 디지털 환경의 한계를 토로했다. 2년 전 지금의 부서로 옮겨와 국내외 디지털퍼스트 전략을 분석해 새로운 제안을 내놨으나, 비용이 많이 든 다는 이유로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A기자는 “IT 업계에서는 의견이 나오면 즉각적으로 해보고 안 되면 다른 전략을 구사하는 방식으로 융통성 있게 운영되는데, 언론사는 조직 특성상 변화를 하기에 어려운 부분이 많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방송사의 B기자도 언론사 경영 환경과 조직의 한계를 디지털 전략의 걸림돌로 꼽았다. 그는 “모두가 디지털 쪽으로 가야한다는 데는 공감을 하고 있다. 하지만 언론사가 계속 경영사정이 좋은 것도 아니고 최대한 무리 없이 전환해야 하는데, 예측 가능한 수익이 있어야 그만큼의 변화를 추진할 수 있지 않겠나”고 설명했다. B기자는 “내부에서는 저널리즘이라는 축도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반발에 부딪혀 혁신을 하려고 해도 주춤하는 경우가 많다. 경영과 저널리즘을 함께 안고 갈 수 있는 해법을 찾는 게 쉽지 않다”고 설명했다.


▲기자들은 현장 취재를 할 때 지면이나 방송리포트뿐만 아니라 온라인 기사도 생산하는 이중 부담을 안고 있다. 인력 보강과 처우 개선, 인프라 구축이 절실한 이유다. (뉴시스)

소문만 무성, 무늬만 혁신
언론사들이 매년 디지털 전략을 내놓고 있지만 성과는 ‘제자리걸음’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윗선에서는 혁신에 동참하지 않는 사내 조직적 한계를 토로하고, 기자들은 비효율적 업무 부담과 저널리즘의 퇴보를 우려로 내놓는다. A기자는 “디지털뉴스룸으로 옮겨오며 시간적 여유가 생길 줄 알았는데, 오히려 필드 뛸 때보다도 정신이 없고 벅차다”고 말했다. 그는 “하루에도 수십 번씩 통신사 속보를 챙겨야 하고, 출입처 발생기사를 재가공해 내보내는 일을 하고 있다”며 “쉴 새 없이 울리는 카카오톡의 업무 지시에 노이로제가 걸릴 정도다. 일주일에 한번 발제하는 기획도 심적 부담으로 작용한다”고 하소연했다.


기자들은 지나친 속보 경쟁이 기사의 질과 업무 효율성을 동시에 떨어뜨린다고 호소한다. 대개 온라인 부서의 성과는 페이지뷰(PV)로 판가름되는데, 타사와 비교해 실적을 올리다보니 클릭수를 높이려는 사내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PV의 경우 포털 사이트에서 실시간 검색어로 오르내리는 가벼운 이슈를 어뷰징(받아쓰기)하거나, 걸그룹 사진과 같은 연예인 이슈로 좌우되는 경우가 많아 기사의 질이 현저하게 떨어진다는 것이다.


A기자는 “기사뿐만 아니라 동영상이 성과에 반영되다보니 기자들이 현장에서 스마트폰만 쥐고 있다. 실제로 온라인 부서에 들어오는 동영상을 보면 아예 쓸 수 없을 정도로 질이 좋지 않은 경우가 많다”며 “언론이 디지털퍼스트에 주력하겠다는 의미는 결국 쓰레기 기사들로 돈만 벌겠다는 생각으로밖에 받아들여지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실제로 한 일간지 온라인 부서에서 편집 일을 하다가 작가로 전업한 C씨는 주목될만한 연성 기사를 하루에 의무적으로 할당량을 정해 작성했다고 고백했다. C씨는 “온라인에서 ‘질’은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남는 건 ‘양’뿐이었고, 하루종일 앉아서 의미없는 기사를 처리하는 단순 업무만 하다보니 보람은커녕 자괴감에 빠져들었다”고 호소했다.

계약직·인턴기자의 비애
온라인 부서 발령을 사실상 ‘좌천’으로 여기며 기피하다보니 계약직과 인턴으로 온라인 부서를 돌려막는 구조도 여전하다. 지면 외에도 온라인까지 부담이 가중돼 반발심을 가진 기자들 사이에서 “온라인 부서만은 피하자”는 분위기가 팽배한데다, 단기성과에 급급한 경영진이 값싼 외부 인력으로 메우려는 기조가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 일간지의 D기자는 “온라인 기자들이 편집국과 비교되는 처우에 상대적 박탈감이 상당하다”며 “말 뿐만 디지털퍼스트가 아니라 실질적인 투자가 이뤄져야 혁신이 되지 않겠나. 저가 인력을 고용해서 변화를 하려는 것 자체가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했다.


통신사의 E기자 또한 “디지털퍼스트라고 하면서 정작 페이스북이나 카카오채널에 올리는 기사는 함량 미달 기사가 많다”며 “심지어 바이라인이 없거나 회사 바이라인으로만 나가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이 때문에 쓰는 사람의 책임감도 떨어져 더욱 저질 기사가 양산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디지털 기사가 무분별하게 쏟아지며 오보도 늘고 있다. 타사에 물먹지 않고자 무리하게 데스킹하는 게 오보의 주범으로 꼽힌다. 한 매체가 잘못된 정보로 보도를 하면 다른 매체가 받아쓰기해 ‘줄줄이 오보’가 양산되기도 한다. 언론중재위원회에 따르면 지난해 총 3170건의 조정사건 중 인터넷 기반 사건은 전체의 62.8%다. 지난 2014년 66.2%, 2015년 62.9%에 이어 3년 연속 60%를 상회하고 있는 셈이다. 특히 인터넷신문을 대상으로 한 사건은 지난해 처음으로 절반을 넘어 52.4%를 기록했다. D기자는 “통신사 속보가 뜨자마자 검증 없이 곧바로 보내는 경우가 부지기수”라며 “가끔 오보인 게 드러나 항의가 빗발친 적이 있다. 기자로서 자책감과 좌절감이 상당했다”고 했다.

변화를 꿈꾸는 언론
“모두가 온라인 기자가 되라.” 지난달 28일 중앙일보는 ‘디지털 혁신 설명회’에서 전 사원들에게 깜짝 미션을 제안했다. 종이신문이 아닌 디지털 조직으로 이행하자는 혁신안이다. 이에 따라 취재기자들은 온라인에 초점을 맞춰 기사를 생산하고 지면 제작은 차장급 이상의 별도의 전담인력이 재가공해 노출하게 됐다. 내부의 한 기자는 “그간 혁신안이 제대로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는 평이 많아서 이번에는 큰 줄기를 아예 뜯어고치겠다는 의사가 반영된 것 같다”며 “한 두 달 전에 기자가 직접 텍스트뿐만 아니라 사진과 동영상 등을 첨부할 수 있도록 CMS를 개편한 것도 이런 디지털퍼스트의 일환”이라고 설명했다.


또 다른 중앙일보의 기자는 “인사이트 있는 뉴스는 질이 좋고 양도 많은 것을 이야기하는 건데, 내부에서는 ‘트래픽 장사’라고 우려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PV뿐만 아니라 순환율과 체류시간 등 다각도로 기사 평가를 할 예정인 만큼 의미 있는 시도로 본다”고 말했다.


경쟁사인 조선일보도 디지털 혁신에 드라이브를 거는 모습이다. 조선은 사내 공모를 통해 20여명의 소셜미디어팀을 젊은 연차의 기자가 이끌도록 하고, 이달 1일자에는 미래전략실을 디지털전략실로 변경하는 등 본격적인 디지털퍼스트에 뛰어들었다. 디지털사업과 관련해 실무 업무를 맡아온 인력을 배치해 앞으로 새로운 혁신안을 내놓는데 주력을 하겠다는 계획이다.


경향신문도 디지털에 최적화된 조직개편과 체질개선을 통해 새로운 디지털콘텐츠를 생산할 전망이다. 경향 관계자는 “지난해부터 디지털콘텐츠 부문의 전문인력 수습공채를 시행하고 있다. 웹디자이너 공채에 이어 올해는 디지털영상기자 공채를 진행 중”이라며 “좋은 저널리즘으로 독자들과 더욱 친밀하게 소통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추겠다”고 전했다. 또 대선이후에는 디지털 분야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뉴스룸 개편을 추진할 계획이다.


YTN도 방송과 통신의 CMS 통합과 조직 개편을 디지털 혁신의 선결 과제로 꼽았다. YTN 관계자는 “차기 사장은 ‘디지털을 하느냐 안하느냐’로 판가름될 정도로 디지털 혁신에 무게를 두고 있다. 디지털이 당장 돈이 안 된다고 하는데 생존의 문제”라며 “언론사로서 신뢰 구축을 위한 혁신은 디지털밖에 답이 없다. 내년 3월 새로운 사장이 오면 CMS와 조직 개편을 최우선 과제로 생각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겨레는 최근 디지털 친화형 콘텐츠 생산을 전담하는 디스커버팀(디지털스페셜커버팀)을 편집국장 직속으로 신설했다. 또 편집국장이 디지털부문장을 겸임하며 종이보다 디지털에 무게를 두겠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조직적 통합은 선결 과제
기자들은 언론사들의 디지털 혁신이 ‘보여주기’로 그치는 게 아니라 실질적인 성과를 얻으려면 조직적 통합부터 추진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먼저 내부 반발을 줄이기 위해 디지털 인력과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 아낌없는 투자가 우선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또한 혁신안을 추진하는 데 있어서 위에서부터가 아닌 기자 개개인의 의견을 존중해 반영해야 한다는 점도 과제다.



한국경제의 한 기자는 “한참 전부터 각 계열사를 합치는 방식으로 뉴스룸을 개편하자는 이야기가 나왔는데 아직 지지부진한 상태”라며 “모바일은 여러 가지 콘텐츠 제작을 시도하고 있지만 워낙 신문 문화가 강해서 (혁신이) 어려운 상황”이라고 했다. JTBC의 기자 또한 “경영자 입장에서는 효율성을 고려해 온라인에 드라이브를 걸지만, 기자들 입장에서는 속보 부담이 늘고 질 좋은 기사를 쓰기 어려운 환경이 되기 때문에 환영만 할 수 없는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한 중앙일보의 기자는 “온라인 부서에서는 같은 일을 시키는 만큼 처우도 개선해달라는 요구가 일고 있고, 편집국 기자들은 힘들게 공채로 들어왔는데 온라인 기자가 됐다며 반발하고 있다. 고참 기자들은 디지털만 강조하고 정작 방법을 몰라 우왕좌왕 하고 있다”며 “모두가 실패를 바라는 상태에서는 죽도 밥도 되지 않는다. 세대간·조직간 갈등 해소부터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플랫폼별 기사 고민해야
“대중이 원하는 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때 드러났듯이 단독보도와 합리적 의혹 제기, 정치·경제 권력에 대한 성역 없는 비판이에요. 결국 저널리즘 기본에 충실하면 광고도 자연스럽게 따라오게 돼 있습니다.”(중앙일보 기자)


저널리즘의 가치를 충실히 구현하면서 수익까지 동시에 잡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언론계에서는 플랫폼별로 특성화된 콘텐츠를 고민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또한 탐사보도 등으로 비롯되는 ‘저널리즘’ 그 자체가 엉켜있는 실타래를 풀 수 있는 결정적인 열쇠라고 강조한다.


MBC의 한 기자는 “플랫폼마다 타깃과 형식이 제각각이라서 지면에 올린 게 먹혔다고 온라인에서도 광고가 붙는다는 보장이 없다”며 “조직 개편을 성공적으로 했다면 콘텐츠 면에서는 저널리즘 기본으로 가되, 플랫폼별로 어떤 콘텐츠를 서비스해야 하는지 구체적인 논의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김선호 한국언론진흥재단 연구위원은 “결국 사람과 사람을 연결 짓는 플랫폼의 싸움이 될 것”이라며 “언론사 브랜드 이외에도 신규채용을 해서 유저들의 놀이터가 될 만한 부서나 사업체를 구축하는 방식으로 갈 것 같다”고 전망했다. 김 연구위원은 “언론사는 플랫폼의 일부로서 저널리즘 본연의 역할을 수행하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진우 기자 jw85@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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