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당시 보도통제 저지투쟁 KBS 기자·PD 벌금형

"유가족에게 지키지 못한 약속...공정방송 위해 싸울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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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4년 세월호 참사 발생 직후 길환영 전 KBS사장의 보도 통제 등에 맞서 ‘사장 출근 저지 투쟁’에 나섰던 당시 언론노조 KBS본부 집행부와 조합원 등 8명에게 법원이 벌금형을 선고했다.

서울남부지방법원 형사1단독(판사 김병철)은 23일 1심 선고공판에서 업무방해와 재물손괴 등 혐의로 기소된 권오훈 전 언론노조 KBS본부장에게 벌금 1000만원, 함철 전 부위원장·김성일 전 KBS본부 사무처장 등에게 각 벌금 700만원, 나머지 조합원 등 5명에게 각 벌금 500만원을 선고했다. 앞서 검찰은 지난달 21일 결심공판에서 이들에게 1년6월~6월까지의 징역형을 구형한 바 있다.   


▲23일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선고공판 후 권오훈 김성일, 정홍규, 함철, 이진성, 최선욱, 강나루, 이경호 등 언론노조 KBS본부 전임 집행부 및 조합원과 성재호 현 언론노조 KBS본부장의 모습.


재판부는 “언론의 자유라는 것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새삼 언급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이런 차원에서 피고인들의 논리와 주장에 공감할 부분이 없는 것 아니다”라면서 “그렇지만 폭력적 수단에 의지해서 이를 관철하고자 하는 것은 우리 법질서가 용납할 수 없는 행태”라고 양형 사유를 밝혔다.

재판부는 그러면서 인적피해가 수반되지 않았고, 이후 KBS이사회의 길 전 사장 해임사유가 이들의 주장과 일치한다는 점을 언급하며 “공사인사규정에 따라 일정형 이상이 선고됐을 때 당연퇴직 사유에 해당되고 이런 조치는 피고인들에게 다소 가혹해 보인다”며 벌금형 선고의 이유를 밝혔다. 선고에서 금고형 이상을 받을 경우 이들은 KBS 공사규정에 따라 면직 처분되는 상황을 앞두고 있었다.

이번 재판은 지난 2014년 5월19일 KBS구성원들이 길 전 사장의 사퇴를 요구하며 출근을 막는 과정에서 승용차를 손괴하는 등의 일이 발생, 사측으로부터 고발당하며 비롯됐다. 당시 김시곤 전 KBS보도국장은 청와대가 KBS에 압력을 행사했고, 길 전 사장이 보도에 사사건건 개입했다고 폭로했다. 출근 저지 투쟁에 앞서 세월호 유가족들이 서울 여의도 KBS사옥에 항의 방문했고, 길 전 사장은 김시곤 전 KBS보도국장의 사퇴로 이를 무마하려 한 과정에서 벌어진 일이었다. 출근 저지 투쟁은 KBS 보도본부 부장단의 일괄 사퇴, KBS기자협회의 제작거부 등 당시 사장 퇴진 움직임이 잇따르는 상황에서 발생한 일이었다.

이후 KBS이사회는 부실재난보도와 공공서비스 축소, 사장으로서의 직무수행 능력 상실 등을 이유로 길 전 사장에 대한 해임을 제청했고, 박 대통령은 이를 받아들여 2014년 6월 그를 해임했다. 이와 관련 대법원은 지난해 11월 길 전 사장이 박근혜 대통령을 상대로 제기한 해임처분 취소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린 원심을 확정한 바 있다.

이날 선고공판 후 권오훈 전 KBS본부장은 “공교롭게도 오늘 세월호가 모습을 드러냈다. 2014년 5월19일 출근 저지 투쟁도 세월호 침몰과 함께 시작됐다. 세월호 침몰에 있어 우리도 죄인이란 심정으로 청와대의 보도개입에 대해, 길환영 사장에 대한 투쟁으로 의지가 모아졌던 것”이라며 “비록 저희들이 벌금형이라는 실형을 선고 받았지만 2014년 공영방송을 제자리로 돌려놓고 국민의 방송으로 돌려놓겠다는 정신이 이 판단으로 훼손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오늘의 판결이 당시 KBS 구성원들의 방송독립, 공정방송 투쟁의 증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강조했다.


권 전 본부장은 또 “출근 저지 투쟁 다음날(20일) 조합원들이 다 같이 안산 분향소에 가서 약속을 했다. 반드시 KBS를 되살리고 세월호의 진실이 잊혀지지 않도록 끝까지 열심히 싸우겠다는 약속이었다"며 "세월호 희생자와 유가족들에게 지키지 못했던 약속을 지킬 수 있도록 더 열심히 KBS의 독립과 공정방송을 위해 싸워나갈 것"이라고 했다. 이어 “항소여부는 변호사와 상의 후 결정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성재호 언론노조 KBS본부장은 이날 판결에 대해 “현재 언론인으로서의 지위를 유지할 수 있는 선고가 난 것에 대해서는 감사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면서도 아쉬움을 드러냈다. 


성 본부장은 “당시 길환영 사장의 범죄는 국민들에게 세월호의 진실을 알리는 행위를 지속적으로 막아온 부역과 같았던 행위였다. 공영방송 안에서 그런 범죄가 지속되는, 심각하고 위중한 상태였다는 걸 재판부가 많이 헤아리지 못한 것 아니었나 싶다”면서 “실정법 위반으로 비춰질 수 있는 부분도 있지만 그만큼 절박하고 급박했고, 이 방법이 아니고선 도저히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게 고려되지 않아 아쉽다”고 부연했다. 이어 “검찰은 국민들의 눈과 귀를 가리려고 했던 이정현, 길환영, 김기춘, 박근혜 등에 대해 제대로 수사해 엄단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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