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탄핵과 호세프 탄핵, 닮은 점과 다른 점

[글로벌 리포트 | 남미] 김재순 연합뉴스 상파울루 특파원

▲김재순 연합뉴스 상파울루 특파원

헌법재판소가 지난 10일 재판관 전원 일치 의견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을 인용했다. 헌재의 박 전 대통령 파면 결정에 대해 브라질 언론도 상당한 관심을 나타냈다. 6개월여의 시차를 두고 두 나라에서 벌어진 대통령 탄핵 사태가 여러 면에서 닮았기 때문이다.


우선 양국 모두 헌정사상 첫 여성대통령이 거대한 국민 저항에 직면해 탄핵으로 쫓겨났다는 공통점이 있다. 한국에서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는 상식을 새삼 확인해준 촛불 민심이 박근혜를 끌어내린 원동력이 됐다면, 브라질에서는 ‘새로운 브라질’을 요구하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연결된 시민사회가 호세프 탄핵에 힘을 실었다.


거대 기업들이 연루된 부패 스캔들이 탄핵의 배경이 됐다는 점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한국에서는 삼성을 비롯한 재벌기업들이 부패 스캔들에 연루돼 사법 당국의 수사 대상이 됐고, 브라질에선 중남미 최대 기업인 국영에너지회사 페트로브라스와 대형 건설업체 오데브레시 등에 대한 수사가 3년째 계속되고 있다.


경제위기도 탄핵의 주요 동인이 됐다.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가계부채와 취업난, 청년실업 증가, 저성장, 빈부격차 확대 등은 여론을 급속도로 악화시켰다. 한국 사회에서 ‘헬 조선’이 절망감의 표현이었다면, 브라질 국민은 ‘헬 브라질’로 분노를 드러냈다. 브라질 국민 60% 이상이 호세프 퇴진을 요구했고, 한국에서 탄핵 찬성이 80%에 육박한 사실은 이런 민심을 반영했다.


탄핵 이후 모습에서는 다른 점이 포착된다. 브라질 좌파정권을 14년 만에 문을 닫게 만든 호세프 탄핵의 후폭풍은 거셌다. 호세프가 탄핵을 ‘의회 쿠데타’로 규정하면서 정치권은 쿠데타 논란에 휩싸였다. 탄핵 찬-반 시위대는 상대방을 향해 적개심을 드러냈다. 1980년대 민주화 이후 평화적 시위전통에 따라 물리적 충돌은 거의 벌어지지 않았으나 국론 분열 양상은 심각한 수준으로 치달았다.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을 제대로 치를 수 있을지 의문까지 제기됐다.


호세프는 탄핵 가결 하루 만에 대법원에 탄핵무효 소송을 제기했다. 변호인단은 탄핵 사유가 충분치 않다며 탄핵심판을 다시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호세프는 언론 인터뷰를 통해 “과두정치 세력이 벌인 거짓과 위선의 정치 전쟁이 민주주의를 위협한다”고 탄핵을 강도 높게 비난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탄핵무효 소송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호세프는 이를 깨끗하게 수용하면서 대통령궁을 떠났다. 장미꽃을 건네며 눈물을 흘리는 지지자들을 달랬다. 절정에 달했던 혼란이 법치(法治)에 대한 신뢰로 회복되는 모습이었다.


호세프가 탄핵 결정에 승복하고 낙향했음에도 혼란이 완전히 가라앉은 것은 아니다. 탄핵 사태가 마무리되고 나서도 시위가 잇달았다. 그러나 거리에서 터져 나오는 주장은 정치개혁과 부패척결·빈부격차 해소 등 새로운 브라질 건설을 위한 열망이 대부분이다.


리우 올림픽 개회식과 폐회식 무대에서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다양성이었다. 미국에 버금가는 이민자 국가인 브라질이 굳건하게 확보하고 있는 가치이기도 하다.


우리는 대통령 탄핵 사태 이후 국론 분열을 걱정한다. 국가통합 노력이 절실하다는 말도 한다. 다른 생각을 인정하고 포용하면서 대화를 통해 접점을 찾아가는 과정, 다양성으로 혼란을 극복해가는 브라질을 들여다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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