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 경찰 한인납치 사건

제317회 이달의 기자상 취재보도2부문 / JTBC 강신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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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신후 JTBC 기자

외교부 당국자에게 물었다. “필리핀에서 한국인이 경찰에 납치됐다는데 어떡하나요?” 그가 말했다. “수사라는 게 현지 당국에서 하고 있는 거 아닙니까.” 난해한 언어이자 답변이다. 외국정부 공권력에 의한 납치를 이야기하는데 바로 그 공권력이 스스로 해결할 거라고 한다. 다시 필리핀 현지에 많은 직원을 파견했다는 경찰 간부에게 물었다. 그도 대답했다. “우리가 나서면 내정간섭이 됩니다.” 이번에도 알아듣기 힘들다.


정부 당국자들의 이해되지도, 이해할 수도 없는 말은 이 사건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대만에서 우리나라 여대생들이 택시기사에게 성폭행을 당했는데 제대로 된 정부 조력을 받지 못한 일이 벌어졌다. 현지에 파견된 우리 공무원은 기자에게 “저희도 여기서 고생 많이 합니다. 잘 좀 봐주세요”라고 한다. 피해자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했다는 말을 하는데 되레 자신을 잘 봐달라니 당황스럽기까지 하다. 두 사건 모두 가해자는 외국정부와 외국인들이었지만 이를 방조하고 사건을 키운 것은 우리 당국자들의 안일한 대응과 정부의 외교력 부재였다.


필리핀 경찰의 한인 납치사건을 최초 보도하자 우리 정부는 필리핀에서 일어났던 수많은 한인대상 강력사건 뒤로 숨어 면죄부를 받는 듯했다. 하지만 현지 외신이 후속보도를 하자 필리핀이 들썩였고, BBC·CNN 등 세계 유력 언론들도 이 사건을 비중 있게 보도했다. 필리핀 마약단속 경찰들의 조직적 범행임이 확인되자 두테르테 필리핀 대통령은 우리 국민에게 사과했고, 반인권적이라는 비난을 받으면서도 자신의 핵심정책이라며 강행하던 대대적인 마약단속에도 제동이 걸렸다.


그러나 정작 우리 정부의 태도는 변할 기색이 없다. 외교부 산하에 재외국민의 안전을 위한 ‘위기상황실’을 만들겠다고 공언했지만 실효성은 의문이다. 정부 당국자들이 안일하고 오만한 언어 쓰기를 포기하지 않는 한 여전히 국민 안전은 보장될 수 없다. 그들이 상식의 언어와 국민을 섬기는 태도를 견지할 때까지 언론의 감시와 기자들의 취재는 계속되어야 한다. 주로 외신을 받아쓰는 국제부 기자가 외신이 받아쓰는 기사를 썼다는 데 일단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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