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만적 인사관리, 기자를 지우다

임명현 MBC 기자 논문 눈길
공영방송 기자들 주체성 연구
기자로서 실천 없어진 자리
공포·무력감·패배주의 채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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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C 기자들이 동영상을 올리고 피켓팅도 하는데 반응이 굉장히 차갑다. 그걸 변호하고 싶었던 건 아니다. ‘기자들이 이렇게 힘들었습니다’ 하려던 건 아니다. 더 처절하게 저항하고 깨지는 모습을 보여줬더라면 이 정도의 냉담함은 아니었을지 모른다. 그런데 못했다. 왜 못했을까. 그 물음을 들여다보려 했다.”


슬픈 논문이었다. 14년차 임명현 MBC 기자의 성공회대 문화대학원 석사학위 논문 ‘2012년 파업 이후 공영방송 기자들의 주체성 재구성에 관한 연구-지도교수 김창남’에 대한 얘기다. 왜 슬픈가. MBC 기자들의 내밀한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는 텍스트여서다. 진행형인 풍파 속에서 여전히 그 조직에 몸담은 채 버티고 있는 이들 말이다. 파업 후 새로운 ‘인사관리’가 실시됐다는 것. 어떤 식으로든 자신을 새롭게 규정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 임 기자가 연구자로서 바라본 MBC는 그랬다. 그는 “내 생각을 최대한 괄호 쳐서 뒤로 빼두고 얘길 들어보고자 했다”며 기자협회보와 인터뷰 역시 기자가 아닌 연구자의 자격으로 임했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2012년 파업을 기점으로 MBC에선 많은 것이 달라졌다. 특히 “이명박 정부 들어서도 5차례나 총파업을 벌일 수 있었을 정도”의 공영방송이 “구성원들의 저항적 실천은 소멸”되는 분위기로 바뀌었다. “파업 후 저항적인 실천이 멈춰버렸다. 혹은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게 됐다. 지배구조는 달라지지 않았다. 뭔가 변화가 있었고 그게 공영방송사의 현실을 설명할 수 있는 고리이지 않을까 생각했다.” 임 기자가 파업 전후 ‘MBC 경영진의 인사관리 정책 변화’에 주목한 이유다.


심층인터뷰에 응한 MBC 기자 22명은 이런 변화를 겪은 당사자들이다. 대규모 해고와 정직, 대기발령. 파업 참가자·경영진과 갈등하는 구성원에 대한 강제 직종 전환. 경력사원 및 계약직 사원의 선발 및 현업 투입이라는 인사조치의 그물 안에 놓인 기자들이었다. 임 기자는 기존 학계 논의를 바탕으로 한 ‘비인격적 인사관리(abusive HR)’라는 개념을 통해 이들이 회사로부터 “‘잉여적 주체’와 ‘도구적 주체’로 호명되고 있었다”고 분석했다. “경영진으로부터 불필요하고 무용하다고 간주돼 ‘버려진’ 것”이거나 “(경영진이) 자신이 원하는 뉴스의 생산을 위해” ‘도구’로 여겼다는 것이다. ‘보도 전문가’로서 기자들이 갖춰야 했던 생각과 실천이 필요 없어진 자리는 ‘모멸감과 공포’, ‘수치심과 무력감’, ‘만성화된 패배주의’로 채워졌다.


현실적인 압박이 너무나 강력하고 명확한 상황에서 이들은 스스로의 ‘주체’를 재구성했다고 논문은 말한다. ‘근거 없는’ 해고, 법원 판결 후 복직 시 재징계 등 일상적으로 작동되는 ‘비인격적 인사관리’ 시스템 속에서 기자들은 “자신의 취약성을 확인하고 체제가 강제하는 규칙을 수용하면서 저항을 유예하는 주체”가 됐다. “‘(자신들이 지향하는 저널리즘 실천이) 유예된 기자’라는 새로운 의미를 섞어 자신들의 주체성을 재구성하려는 모습”은 현실에서 기자라는 개인이 취할 수 있는 최대치의 저항에 가깝다. 임 기자는 이에 대해 “MBC라는 사업장이 제공하는 경제적 안정과 정규직 신분, ‘언젠가는 바뀔 수 있다’는 바람 때문에 실천을 유예하고 현 상황을 수용하고 있는 것”이라며 “신자유주의, 고용불안 시대를 살아가는 인간으로서 기자의 취약한 부분이 드러났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논문은 MBC와 내부 기자들의 상황에 대해 어떤 전망도 하지 않는다. ‘유예된 주체’가 지닌 저항과 반역의 가능성을 언급하고, 현 MBC 체제가 유동적이고 불안정하다고 해석할 뿐이다. 임 기자는 “연구자로 바라보며 각자가 가진 이유를 재단하는 게 굉장히 조심스러워졌다. 그들의 생각이 궁금해졌다. 기회가 된다면 추가 연구로 다뤄보고 싶다”고 밝혔다. 개인적으로는 이번 경험이 파업 후 입사한 기자들 일부와 교류를 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고 부연했다. “한 사람의 생활인으로서 MBC 기자들의 복잡한 고민의 결을 드러내 보여주고 싶었다. 여기에 대해 논의의 장이 펼쳐질 수 있다면 의미가 있다고 보는 거다.” 임 기자의 소박한 바람이다.

최승영 기자 sychoi@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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