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에 자전거 타기

[스페셜리스트 | 문학·출판] 어수웅 조선일보 문화부 차장

▲어수웅 조선일보 문화부 차장

그러니까 이건 어떤 자학에 대한 고백이다. 겨울에 자전거 타기. 왜 쩡 소리나는 겨울 맞바람을 사서 맞는지 이해 못하는 사람이라면 그 엄살에 동의할 것이다. 하지만 속내를 털어놓자면, 이건 어떤 쾌락에 대한 고백이다. 맨 몸으로 도심의 속도와 푸른 공기를 누리는 기쁨에 대한. 뭐 남들 다 타는 자전거, 뭐 그리 과장이냐 비난한다면 굳이 대꾸할 생각은 없지만서도.


스마트폰 앱 따릉이를 다시 연다. 서울시 공공 자전거. 지난 가을 무렵이라 어렴풋이 기억하고 있었는데, 사용한 내역을 제대로 확인해보니 9월18일이 시작이었다. 그동안의 운동량 및 탄소절감량이 숫자로 정리되어 있다. 총 이동거리 361.03㎞, 이용시간 2353분, 탄소절감효과 83.76㎏. 구체적 수치는 처음 보는 순간이다. 조금 놀란다. 출퇴근은 물론 아이들과 독립문 공원에서 함께 했던 주말까지 포함된 수치이긴 하지만, 정말 꽤나 즐겼나 보다. 하루 30분가량은 어김없이 두 바퀴 위에 올랐다는 이야기니까.


기자협회보 지면에서 독립문 근처에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쓴 적이 있다. 광화문 신문사로 출근하는 기자의 집이 독립문이라는 건 축복이어서, 이 동네 살기 시작한 2004년부터 걸어서 출퇴근을 했다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오만하게도 경희궁 이름을 집어넣은 거대한 아파트 단지 신축현장이 도보 출근길을 가로막으면서, 그 10년 넘은 축복도 빼앗겼다. 이후 눈에 들어온 게 ‘따릉이’였다.


영천시장 한쪽 끝에 자리잡은 따릉이 대여소 이름은 ‘158번 독립문 어린이 공원’. 새 주인을 기다리는 자전거들이 도열해 있다. 날렵한 녀석 하나를 골라 단말기 홈버튼을 누르고 비밀번호를 입력한다. 경쾌한 사운드와 함께 잠금 장치가 풀리면 이제 출발. 위험하지 않을까? 물론 어느 정도는 당신의 우려가 옳다. 독립문에서 서대문 사거리까지는 도로 폭도 넓지 않고 통행량도 많은 구간이니까. 하지만 도로를 나눠 쓴다는 인식이 자동차 운전자들에게도 어느 정도 확산된 데다, 아스팔트에 새로 인쇄한 ‘자전거 우선도로’ 표지 덕을 톡톡히 보고 있다. 운이 좋았을지도 모르지만, 지난 4개월 동안 아직 클랙슨 소리 한 번 들은 적 없다.


영천시장 홍씨 떡집의 아침 절편 향을 맡고나면, 곧 스마트폰 대리점 사내의 셔터 올리는 풍경이 등장한다. 서대문 사거리 횡단보도를 통과한 뒤 다시 달리면, 파리바게뜨의 커피번과 김가네의 치즈 김밥이 순서대로 유혹 중. 단호한 결의로 밀어낸 뒤, 시티은행을 끼고 흥국생명 뒷길로 우회전해 달린다. 승용차와 버스가 질주하는 메인 도로와 달리, 따릉이도 자신의 속도를 만끽할 수 있는 자전거 천국이다. 어느 새 동화면세점, 따릉이의 용어로는 ‘309번 광화문역 6번 출구 거치대’에 도착한다. 대략 10분 남짓에 불과하지만, 그날 하루의 기분을 상승시키는 나만의 통과의례다.


다시 겨울 자전거 이야기로 돌아온다. 맞바람일수록 만끽했던 가을과 달리, 겨울의 자전거는 비무장으론 버겁다. 하지만 장갑과 모자 하나면 대략 준비 완료. 허벅지 근육은 곧장 들뜨고, 3분 지나면 등도 후끈 부푼다. 자전거 광화문 출근이라는 유년시절의 판타지 하나가 실현되는 순간이다. 한 때 광화문으로 출근했던 소설가 김훈은 자신의 바이라인을 ‘자전거 레이서’로 표기한 적이 있다. 청바지에 따릉이 타면서 ‘자전거 레이서’로 불러달라할 만큼의 방자한 객기는 없다. 단지 투명한 콧김 뿜어내며 스스로를 동력삼아 달리는 이 겨울이 즐거울 따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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