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지만 강렬했던 유럽에서의 추억

[그 기자의 '좋아요'] 이정은 동아일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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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은 동아일보 기자

캔버스 전체를 감싸는 짙고 어두운 배경. 그 한가운데에 쓰러져 있는 한 사람. 읽다 만 편지와 선명하고도 깨끗한 핏자국….


<마라의 죽음>이라는 그림을 접한 곳은 2014년 가을 벨기에 왕립미술관이었다. 유명한 작품의 원본이라는 아우라 때문이었을까, 사람을 빨아들일 것 같은 검은색의 캔버스가 유독 인상적이어서였을까. 발걸음을 떼지 못한 채 한참동안 그저 그림을 구석구석 바라보고 있었다.


당시 나는 유럽연합(EU) 단기 연수차 벨기에의 수도 브뤼셀에 막 발을 디딘 상태였다. 유럽의 심장이라고 불리던 그 곳, 유럽의 고전적인 매력이 넘쳐나는 도시였지만 외지인에게는 어쩔 수 없이 낯설고 다소 외롭기도 한 공간. 첫 주말에 달리 갈 곳도 할 일도 없었다. 숙소에서 가까운 곳에 있는 명소들부터 찾아다녀보자는 생각으로 무작정 미술관부터 들어갔다. 폼 잡고 앉아서 미술관 커피나 한 잔 마셔보자는 생각으로.


그렇게 마주친 <마라의 죽음>. 프랑스의 혁명가였던 장 폴 마라가 암살되는 장면을 그린 다비드의 이 작품은 죽음이 주는 긴장감과 공포, 그리고 예술적인 아름다움을 절묘하게 묘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인터넷 검색을 통해 공부를 하고 난 이후의 이 작품은 미술관을 다시 찾을 때마다 매번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왔다.


피부병을 앓고 있던 마라가 가려움증을 가라앉히기 위해 목욕을 하면서 업무를 봤다는 것, 손에 들고 있는 편지가 암살을 위한 미끼였다는 것, 잠에 빠진 듯 편안한 표정과 하얀색 천이 마라의 죽음을 순교의 이미지로 승화시켰다는 것. 신고전주의라는, 관심도 없던 예술 사조까지 읊조려가며 나는 마라의 죽음을 공부했다.


이 그림이 특별한 이유는 그 예술적 가치 때문만은 아니다. 3개월간의 특별했던 연수 시절을 다시 떠올리게 해주기 때문이다. 8년차 기자로서 한 숨을 돌리고 싶었던 그 시절, 유럽 한복판에서 자유를 외치다가도 문득 서울에 떼어놓고 온 어린 아들 생각에 홀로 애틋해지던 그 때…. 잠시나마 추억에 잠기게 해주고, 그렇게 다시 눈앞의 일상에 집중하게 만들어주는 소중한 상징이 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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