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사보도란…무수한 실패의 연속, 그래도 의심하고 취재하는 것

[연중기획] 저널리즘 기본으로 돌아가자 (1부)기본에 답이 있다 ②탐사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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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일 벗은 비선실세 국정농단
성역없는 보도 중요성 일깨워
경영위기, 권력의 언론장악에
보도팀 해체되거나 유명무실

특종 압박이 탐사보도 걸림돌
실패도 용인 ‘오픈 마인드’ 필요
데이터 중요성 갈수록 커질 것
빅데이터 등 전문인력 배치해야


SBS 보도국 한쪽에 마련된 특별취재팀 방에는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비망록이 두 벽면을 채우고 있다. 김민표 SBS 특별취재팀장은 이 자료를 비망록이라 부르지 않고 업무수첩이라고 불렀다. 김 전 수석이 나중을 대비해 기록을 남겨놓았다기보다 김기춘 전 청와대 비서실장이 주재한 회의에서 업무상 얘기를 정리한 성격이 강하기 때문이다. 김민표 팀장은 이 기록이 청와대 공작정치의 사초이자 역사를 박정희 시대로 되돌려놓은 거대한 작업의 일각이라고 했다. 그 일부분을 들춰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진실을 드러내는 것이 특별취재팀이 할 일이었다.


SBS 특별취재팀은 지난해 10월24일 JTBC가 최순실 태블릿PC를 입수해 비선실세의 국정농단 실상을 보도한 다음날 꾸려졌다. 처음엔 3명으로 시작했고 최순실 일가를 추적하는 독일 현지팀이 합세하면서 11명까지 늘어났다가 최근엔 5명으로 고정됐다. 특별취재팀이 꾸려질 땐 언론사간 기사 전쟁이 막 시작되는 참이었다. 이미 앞서나간 TV조선, 한겨레, JTBC 등의 뒤를 좆아 SBS 특별취재팀은 제보 한 통 없이 탐사보도를 시작했다. 그 작업은 점으로 시작해 조금씩 선을 이어나가는 지난한 과정이었다.


▲지난해부터 이어진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추적하기 위해 언론사들은 특별취재팀, 탐사보도팀을 꾸려 취재하고 있다. 이들은 탐사보도가 점으로 시작해 조금씩 선을 이어나가 마침내 그림을 완성하는 지난한 과정이라고 말했다. 사진은 경향신문 탐사보도팀(왼쪽 상단부터 시계방향), 한겨레 특별취재팀, SBS 특별취재팀.

정유라의 외국환거래법 위반 의혹, 삼성의 정유라 부당 지원 의혹, 문화체육관광부 블랙리스트 입수 등은 실패한 취재들 사이에서 힘겹게 이뤄낸 눈물겨운 성과였다. 김민표 팀장은 “쓴 기사에 할애한 시간보다 못 쓴 기사에 할애한 시간이 더 많았다. 탐사보도는 마치 그림 같아 선도 있지만 여백도 많았다”면서 “모든 취재가 외국환거래법 위반 의혹처럼 기사로 연결되는 게 아니었다. 의심하고 취재하고 돌아서고, 의심하고 취재하고 돌아서며 여백을 확인하는 작업이 우리의 일이었다”고 했다.


비단 SBS뿐만 아니라 지난해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취재했던 대부분의 특별취재팀과 탐사보도팀은 대한민국의 어두운 그림자를 추적하기 위해 광활한 여백 위에 힘들게 선을 그어갔다. 그 선들은 의혹의 실체를 벗겨내는 데 큰 공을 세웠지만 그 중에서도 TV조선, 한겨레, JTBC 등이 그렸던 밑그림은 저널리즘의 기본을 위해 탐사보도가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일깨우는 계기가 됐다.


이진동 TV조선 사회부장은 “사안 자체가 설익거나 어설프게 취재해서는 안 되는 것들이었다. 엄밀하고 정밀한 취재가 필요했기에 취재 시작부터 탐사보도 형식을 갖출 수밖에 없었다”면서 “단 한 건이 아니라 추적보도 하듯이 장기간에 걸쳐 탐사보도 결과물들을 내놓았다”고 말했다.


독자와 시청자들은 화답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보도 이후 뉴스에 대한 관심은 폭발적으로 늘어났고 미디어 소비가 급격히 증가했다. JTBC ‘뉴스룸’은 지난해 9월1일 기준 전국단위 시청률이 3.39%였으나 지난 2일에는 11.35%로 3.5배 가까이 시청률이 뛰었고, 신문사들의 웹 방문자수와 페이지뷰도 게이트가 큰 주목을 받을 당시 약 1.4배에서 2.5배까지 뛰었다.


후원자가 늘어난 언론사도 있었다. 오마이뉴스는 약 두 달간 3000여명의 시민들이 후원 클럽에 가입했고, 한겨레는 지난해 말 800여명의 시민들이 새 주주가 됐다. 강창석 한겨레 경영지원실장은 “주변에서 매체 구독 이외에 한겨레를 응원할 방법이 없겠냐는 문의가 늘었다”고 말했다.


기자들도 이번 일을 계기로 탐사보도의 중요성을 실감했다고 했다. 박수진 SBS 특별취재팀 기자는 “7년 정도 기자생활을 했지만 한 사안의 사실관계를 제대로 파악해 내 것으로 만들어 취재한 적은 이번이 처음이었다”면서 “탐사보도가 저널리즘의 기본이자 원칙이라는 걸 느꼈다”고 말했다. 최우철 SBS 특별취재팀 기자도 “언론사 간 특별취재팀, 탐사보도팀 간 선의의 경쟁을 통해 질 좋은 기사가 나오고 있다”면서 “심지어 사내에서도 경쟁적으로 좋은 기사가 나오고 있다. 탐사보도팀이 주는 긴장감이 조직에 주는 효용성이 큰 것 같다”고 했다.


그러나 탐사보도팀의 중요성과는 별개로 언론사에서 탐사보도팀을 지속적으로 운영한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탐사보도 전성시대’라는 말이 회자되던 2000년대 중반 중앙일보를 필두로 수많은 언론사들이 탐사보도 전문 팀을 만들었으나 하나 둘 자취를 감췄다. 두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는 미디어 환경이 급변하고 경영이 어려워지면서 탐사보도팀에 잦은 외풍이 분 것이었다. 편집인이나 국장이 바뀔 때마다, 편집국 인원이 적을 때마다 탐사보도팀은 끊임없이 위축돼왔다.


이규연 JTBC 탐사기획국장은 “2004년 12월 중앙일보가 탐사보도를 내걸고 본격적인 팀을 운영한 이후 2년 동안 탐사보도의 전성시기가 있었다. 당시 소모임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전국에 탐사라는 이름을 붙인 조직이 40개 넘게 있었다”면서 “그러나 2008년 금융위기가 오면서 언론사 경영상태가 나빠졌고, 효율성이나 비용 측면에서 탐사보도팀을 해체하거나 없애는 일들이 도미노처럼 벌어졌다”고 말했다.


탐사보도팀이 사라진 또 하나의 배경엔 권력의 입김도 존재했다. 이명박 정부 들어 언론 장악 정책이 실행되면서 유능한 탐사 기자들이 제작진에서 배제되고 취재·제작 인력과 지원이 줄어드는 일이 비일비재 일어났던 것이다. 특히 KBS, MBC 등 공영방송에선 그 부침이 더욱 컸다.


이호찬 전국언론노조 MBC본부 민주방송실천위원회 간사는 “탐사보도엔 성역이 없어야 하는데 MBC에는 성역이 많았다. ‘시사매거진 2580’이나 ‘PD수첩’ 같은 탐사보도 프로그램에선 정권에 비판적인 아이템을 발제하지 못했고 그에 항의하면 유배를 가기 일쑤였다”면서 “그러다보니 정부나 권력은 넓은 잣대로 바라보고, 다루기 쉬운 것만 엄격하게 비판하는 흐름이 반복됐다. 당연히 국민이 바라는 탐사보도가 아니었고 보도의 질은 점점 떨어졌다”고 말했다.


▲SBS 특별취재팀 방에는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비망록이 두 벽면을 채우고 있다. 김민표 SBS 특별취재팀장은 “망자와의 대화는 매일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인 ICIJ가 홈페이지에서 밝힌 설립 이유도 이런 흐름과 일맥상통한다. ICIJ는 “짧아진 언론환경의 호흡과 부족한 자원으로 절름발이가 된 언론은 공익을 침해하는 존재의 상대가 되기에는 역부족”이라면서 “방송국과 신문사들은 외국 지사를 폐쇄하고 해외 출장비는 삭감했으며 탐사보도팀은 해체했다. 우리는 그것이 가장 필요한 시기에 세상을 감시하는 눈과 귀를 잃고 있다”고 했다.


그러나 희망의 증거는 있다. 지난해 게이트 국면을 거치며 언론사들이 다시금 탐사보도에 주목하기 시작한 것이다. 경향신문이 대표적이다. 경향신문은 지난해 11월 초 팀장 포함 3명 규모의 탐사보도팀을 신설했다. 김민아 경향신문 편집국장은 “저널리즘 본령에 다가가기 위한 일종의 시도였다”면서 “한 달에 1~2개가 아니라 1년에 1~2개를 쓰더라도 의미 있는 조직이 되게끔 부담을 안 주려 하고 있다. 세상을 꼭 놀라게 해야 한다기보다 작게라도 변화시킬 수 있는 기사를 주문하고 있다”고 말했다.


결국 탐사보도가 지속되기 위해선 방송국이나 신문사의 인식 전환이 필수적이다. 끈질기게 취재할 수 있는 시간과 인력의 투자, 권력의 입김으로부터 독립할 수 있는 환경 마련 등이 탐사보도팀을 지속가능하게 만드는 필요조건들이다. 강진구 경향신문 탐사기획팀장은 “탐사보도는 시추하다 보면 열 개 중 한두 개만 성공한다. 때문에 아이템을 반드시 성공시켜야 한다는 압박감을 주기보다 실패를 용인할 수 있는 분위기가 있어야 한다”며 “그런 실패들을 통해서도 배우는 것이 분명 있다. 편집국 인력 운용이 팍팍해 쉽진 않겠지만 오픈 마인드 분위기를 형성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면 제작 시스템을 전반적으로 손질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김의겸 한겨레 선임기자는 “기존 탐사보도팀의 위치는 구획이 강한 신문제작 시스템 위에 별도로 존재하는 팀 성격이었다”면서 “그것이 아니라 지면 구획 자체를 유연하게 운영해야 탐사보도를 활성화할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신문사가 한 시간 넘게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뉴스를 보도하는 방송사를 완전히 따라할 순 없겠지만 적어도 운영 방식을 바꿔볼 고민은 해야 한다”고 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탐사보도를 위한 데이터 전문가 등 전문 인력을 배치해야 탐사보도팀이 장기간 존속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탐사보도팀과 국내뉴스팀 등에 데이터 전문가를 배치한 워싱턴포스트나 뉴스타파처럼 가야 한다는 것이다.


최문호 뉴스타파 데이터팀 에디터는 “감춰져 있는 진실을 숫자 같은 데이터를 통해 보여주면 눈에 확 와 닿는 게 있다. 또 최근 데이터가 많아지면서 수많은 데이터를 유의미한 숫자로 바꾸는 능력이 중요해졌다”며 “갈수록 탐사보도에 있어 데이터의 비중은 커질 것”이라고 했다. 그는 데이터 전문가에 대해서도 “단순히 데이터를 가공하는 것만이 아니라 공개돼 있지 않은 데이터를 발굴하기 위해 직접 취재하고, 데이터를 바탕으로 인과관계를 추론해내는 능력을 가진 이가 탐사보도 영역의 데이터 전문가”라면서 “세계적인 빅데이터 전문가 빅토르 마이어 같은 사람이 많아져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언론이 탐사보도를 포기할 수 없다고 했다. 탐사보도는 저널리즘의 기본이자 차별점을 보여줄 수 있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영화 ‘스포트라이트’의 모델 마틴 배런 편집장은 지난해 9월 미국에서 열린 ‘엑설런스 인 저널리즘(Excellence in Journalism)’ 콘퍼런스에서 탐사보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저널리즘을 한다는 것은 보도를 통해 세상을 바꾸는 것, 잘못된 것을 밝혀내는 것이며 탐사보도야말로 저널리스트들의 핵심 소명이다. 언론사는 다시금 탐사보도에 역량을 쏟아야 한다. 필요한 자원이 없다면 만들어서라도 해야 한다. 훌륭한 탐사보도는 언론에게 세상 어떤 기관도 얻을 수 없는 엄청난 신뢰를 부여한다.”

강아영 기자 sbsm@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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