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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사에 ‘앵그리 이메일’ 보낸 핀란드 총리

[글로벌 리포트 | 핀란드]최원석 YTN 기자· 핀란드 라플란드 대학교 미디어 교육 석사전공

최원석 YTN 기자2016.12.21 13:06:55

▲최원석 YTN 기자

공영방송이 ‘총리 친인척 특혜 의혹’을 보도하자 총리가 언론사에 무더기 항의 이메일을 보냈다. 총리가 직접, 7시간 동안 17통 넘는 메일을 전송했다. 해당 언론사는 진상조사 결과가 나오기 전에 관련 의혹 보도를 중단한다는 지침을 세웠다. 이에 반발한 중견 기자 두 명이 ‘부당한 압력’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사표를 냈다. 총리가 기자에게 보낸 분노의 이메일은 압력일까 아닐까. 세계언론자유지수 1위를 차지해 온 핀란드의 현 총리, 유하 시필라(Juha Sipila)의 근황이다.


의혹을 처음 제기한 건 지난달 25일 공영방송 윌레(Yle)의 탐사보도였다. 핀란드 정부 소유 공기업인 떼라파메(Terrafame)에 공적기금 100만 유로, 한화 12억원가량을 투입하겠다는 정부 결정으로 총리 일가가 큰 이익을 얻을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테라파메는 핀란드에서 가장 큰 니켈 광산을 개발하는 광업 회사로, 정부가 2014년 파산 위기 속에 사들인 뒤 이미 수백만 유로를 투입한 기업이다. 윌레가 의혹을 제기한 부분은 정부가 추가 자금 투입을 결정한 지 보름 뒤, 테라파메가 총리 일가 소유 철강회사와 50만 유로 규모의 계약을 맺었다는 사실이었다. 총리는 이튿날 블로그에 글을 올려 해명했다. “해당 철강회사가 계약한 사실을 전혀 알지 못했고, 총리 가족이란 이유로 친척들에게 일을 하지 말라고 할 수도 없다.”


하지만 문제는 며칠 뒤 다른 방향으로 심각해졌다. 총리가 해당 보도 당일 윌레 기자들에게 무더기로 ‘앵그리 이메일’을 보냈다는 사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메일을 동시에 받은 두 명은 해당 의혹을 처음 제기한 기자 살라 부오리코스키(Salla Vuorikoski)와 편집국장 아떼 예에스케레이넨(Atte Jaaskelainen). 이후 부오리코스키가 페이스북에 공개한 이메일 원문을 보면, 총리는 보도 두 시간 전 기자가 보낸 질문에 답변하지 않다가 보도 직후 “나는 이미 큰 타격을 입었다”며 답변을 거부하겠다는 메일을 보낸다. 그런 뒤 7시간 동안 시필라 총리는 스무 통 가까운 이메일을 두 사람에게 보내며 항의와 훈계를 이어간다. “정당한 반론 기회를 갖지 못했다” “언론사의 편향성이 우려스럽다” “저널리즘 원칙에 부합하지 않는 취재다” 등을 나열하면서 “윌레를 전혀 신뢰하지 못하겠다”고 덧붙인다. ‘친인척 특혜 의혹’이 ‘언론 자유 침해’로 옮겨가게 된 배경이다.


윌레는 내부적으로 해당 의혹에 대한 진상조사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의혹 보도를 중단하기로 결정했다. 사실상 보도제한 지침이 내려지자, 의혹을 처음 제기한 부오리코스키 기자는 “극도로 우려스러운 분위기가 회사에 감돈다”면서 퇴사를 공표했다. 같은 이유로 20년 경력의 유씨 에로넨(Jussi Eronen) 기자도 회사에 사직서를 냈다. 이들은 공영방송인 윌레가 진실을 캐내는 방향으로 독립성과 다양성을 지키기보다 부정적인 여론으로부터 엘리트 정치인들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행동했다고 지적했다. 두 기자의 항의성 퇴사로 시필라 총리의 ‘언론 자유 침해’ 논란은 더 커졌다. 국경없는 기자회는 핀란드가 ‘언론자유국’ 명성을 잃을 위기라며, 이번 사태를 주의 깊게 보고 있다고 발표했다. 핀란드 행정부 내 통제기관인 사정관(Chancellor of Justice)과 의회 옴부즈만은 총리 일가의 특혜 의혹에 관한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언론 자유지수 1위 핀란드에서 일어난 이번 논란을 보며, 언론 자유 70위 한국의 상황을 떠올리면 새삼 아찔하다. 시필라 총리의 ‘이메일’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치밀한 압력에 대항했던 기자들이 있었다. ‘국정 농단’과 ‘탄핵 정국’ 이전에 부당한 권력에 맞섰던 한국의 해직 기자들, 또 좌천되거나 퇴직한 동료들이다. 이제야 언론이 제 할 일을 한다는 시민들의 평가는 그저 격려 정도로만 받아들이면 어떨까. 그간의 ‘자괴감’과 ‘실망감’을 거두고 다시 당당할 수 있으려면 아직도 많은 숙제를 해야 한다. 대통령 탄핵 심판 결과를 기다리는 이 시간은, 우리의 언론 자유가 어디서부터 어떻게 잘못 됐는지 돌아보는 시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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