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도 새로운 질서를 고민해야

[언론 다시보기] 김서중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김서중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국회는 예상을 뛰어넘는 찬성으로 박근혜 대통령 탄핵안을 가결시켰다. 촛불의 힘이었다. 그래서 지난 10일 촛불집회는 축제였다. 사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라 불리는 국정농단을 벌인 대통령을 탄핵하라는 촛불들의 비폭력 주장은 세계가 주목할 만한 역사적 사건이다. 그 많은 시민들이 모여 그 정도로 질서 정연하게 저항권을 행사하는 것이 가능했다는 사실은 지금 생각해도 놀라울 뿐이다. 그런데 시민들이 저항권을 행사하는 동안 또 다른 놀라운 경험을 한 사람들은 기자들이 아니었을까?


이명박, 박근혜 대통령 시절을 통 털어 이런 언론자유를 누린 적은 없었을 것이다. 탄핵 반대라는 또 다른 저항(?)을 벌였던 일부 극우 매체들을 제외하고는, 진보·보수를 가릴 것 없이 대부분의 언론이 연일 경쟁하듯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관련 기사를 다루었다. 대통령 탄핵이 가능했던 또 다른 이유는 양파 껍질 벗기듯 게이트의 진실을 드러낸 언론보도 덕분이었다. 그리고 어쩌면 기자들은 이 과정에서 해방감을 맛보았을지도 모른다. 저널리즘의 본령을 경험했다고 느끼는 기자들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탄핵안이 가결된 지금 기자들은 냉철한 자기반성을 해야만 한다. 권력의 공백기에 폭발적으로 내보냈던 ‘박근혜-최순실 게이트’ 관련 기사들이 본질을 제대로 다루었는지, 진정한 언론자유를 행사한 것인지를 되돌아 봐야 한다. 그리고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박근혜, 최순실 등이 이번 국정농단의 당사자인 건 맞지만 이 둘만이 몸통일까? 이번 사건이 비선 실세 최순실이 대통령을 허수아비로 만들고 국정을 농단한 것이라고 하지만 이 둘 또한 기득권 집단의 허수아비였을 수도 있다. 분명 또 다른 몸통은 새누리당이다. 2007년 박근혜 후보가 대통령이 됐을 때 국정농단의 위험이 있다는 것을 지적했을 정도로 가장 잘 아는 새누리당은 2012년 오로지 권력 창출에 유리하다는 이유만으로 박근혜 후보를 지지했고 대통령으로 세웠을 것이다.


또 시민들은 미르와 K스포츠 재단에 기금을 낸 대기업들이 강탈당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들은 대가없이 움직이지 않는 ‘자본’이기 때문이다. 기업 위주의 노동 탄압 정책, 국민의 손해를 감수하고 진행된 자본의 승계, 기업 비리 수사 축소 등은 그들이 받은 대가였다. 국정교과서, 세월호 진상 은폐, 사드 배치, 위안부 협상,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등의 관련자들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의 조연이었을까? 박근혜, 최순실이라는 허수아비를 앞세워 자신들의 이해를 관철시킨 몸통이었을까?


언론이 이런 사안들을 전혀 다루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본질에 접근하지도, 본격적으로 다루지도 않았다. 그리고 앞으로 다룰 것이라 기대하기도 어렵다. 일부 보수언론은 이미 탄핵이 가시화되자 탄핵 가결 이전부터 ‘탄핵 이후 안정’이라는 구도를 제시했다. 정권 재창출에 걸림돌이 되는 대통령을 탄핵하는 것 이상의 근본적인 구조 변화를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치권도 별반 다르지 않다. 탄핵 가결 직후 소감에서 ‘탄핵이 개혁의 시작’임을 언급한 정치인은 없었다. 탄핵 이후 우리 사회의 과제는 기득권 집단이 구축한 구악의 질서를 개혁하고 진정한 민주공화국으로 나아가는 것임에도 말이다.


해방감을 맛본, 진정한 저널리즘을 경험한 기자들은 다를까? 쉽지 않을 것이다. 그들이 맛본 해방감은 그들이 노력하여 쟁취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촛불이 가져다 준 일시적 권력 공백기에 그들에게 주어진 언론자유는 진정한 민주공화국을 외치는 촛불을 끄려는 세력이 원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질서를 쟁취하려는 시민들처럼 기자들도 그들 스스로 새로운 언론 질서를 쟁취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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