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트루스' 시대의 진실 찾기

[스페셜리스트 | IT·뉴미디어] 김익현 지디넷코리아 미디어연구소장

▲김익현 지디넷코리아 미디어연구소장

생각해보면 참 얄궂다. 어쩌면 나라 안팎 상황이 이리도 비슷할까. 영국 옥스퍼드사전이 ‘포스트-트루스(post-truth)를 ‘올해의 단어’로 선정했다는 뉴스를 접하면서 처음 든 생각이었다. 포스트-트루스는 ‘탈진실’ 정도 의미를 담은 단어다.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 등 연이은 충격적인 사건 여파로 큰 관심을 모았다.


시선을 국내로 돌리면 ‘포스트-트루스’는 한 발 더 들어간다. 물론 ‘최순실 국정농단’으로 촉발된 일련의 사건 때문이다. JTBC의 손석희 앵커는 이런 우리 상황을 ‘상실의 시대, 아니 순실의 시대’란 말로 표현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영문도 모를 상처를 입어야 했고, 그 상처가 다시금 긁혀나가 또 다른 생채기가 생겨버린…순실의 시대”라고 규정했다. 지금 상황을 탈진실의 시대로 규정하건, ‘순실의 시대’로 규정하건, 당황스럽긴 매한가지다.


그런데 불과 몇 달 사이에 상황이 참 많이 달라졌다. 매 주말마다 질서정연한 시민혁명이 계속되고 있다. ‘포스트-트루스’에서 ‘포스트’를 떼어내려는 시민들의 열기는 광화문 광장을 메운 촛불 개수만큼이나 강렬하다. 언론들 역시 모처럼 ‘포스트-트루스’ 뒤에 숨어 있는 실체적 진실을 파헤치기 위한 취재 경쟁을 뜨겁게 펼치고 있다.


오래 전 읽었던 <워터게이트-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을 다시 펼친 건 이런 주변 상황 때문이었다. 잘 아는 것처럼, 이 책은 1972년 워터게이트 특종 보도를 한 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타인이 함께 쓴 책이다. 말하자면 일종의 취재록인 셈이다.

 
워터게이트 특종은 언론인이라면 누구나 동경하는 빛나는 성과다. 최고 권력자의 부정 행위를 파헤쳐서, 결국 하야하게 만든 사건이기 때문이다. 기자를 꿈꾸는 많은 이들의 로망이나 다름없는 사건이었다.


▲워터게이트 사건을 추적한 워싱턴 포스트 기자 밥 우드워드(로버트 레드포드)와 칼 번스타인(더스틴 호프먼)의 분투를 그린 영화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 한 장면.

하지만 우드워드와 번스타인 두 기자가 쓴 <워터게이트>엔 영광의 기록만 담겨 있는 게 아니다. “그래서 확인된 게 뭐냐?”는 데스크의 불호령에 쩔쩔매는 장면부터, 사소한 오보 때문에 고민하는 인간적인 모습까지 가감 없이 담겨 있다. 그 뿐 아니다. 두 기자를 진두지휘했던 벤 브래들리는 워터게이트 보도 때문에 한 해 동안 성명서를 두 번이나 발표해야 했다.


그 중 한 번은 닉슨 핵심 참모에 관한 보도가 오보일 지도 모른다는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나온 것이었다. 자기 기자들의 보도가 잘못된 것 없다는 선언을 담은 성명서였다. 그 책에 따르면 브래들리는 나중에 이렇게 털어놨다. “그 때 나는 두 기자와 함께 감옥에 갈 뻔했다. 그 때 난 타자기를 앞에 두고 이렇게 말했다. 제기랄, 우리 새끼들을 믿어보자.”


‘워터게이트’를 읽으면서 저런 인간적인 고백에 더 눈길이 갔다. 대단한 일을 해낸 그들 역시도 걱정하고, 초조해하고, 또 때론 본의 아니게 짊어진 거대한 짐을 벗어버리고 싶은 유혹을 느끼는 소시민이란 점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런 과정을 통해 ‘포스트-트루스’ 시대를 이겨냈다.


역사 속에서 ‘포스트’가 붙은 시대는 본질이 아니었다. 포스트모더니즘이 그랬듯, 그 시대는 늘 짧았다. 다음 시대로 넘어가기 위한 과도기였을 따름이다. 지금 우리가 맞닥뜨리고 있는 ‘포스트-트루스 시대’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언론사마다 온도차가 크긴 하지만, 그래도 실체적 진실에 다가가려는 일부 기자들의 땀과 눈물은 ‘포스트 트루스’에서 ‘포스트’를 떼어내는 밑거름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 오랜만에 ‘워터게이트’를 다시 읽으면서 되뇌어 본 생각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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