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리즘의 길은 팩트(fact)에 있다

[언론 다시보기] 예병일 플루토미디어 대표

▲예병일 플루토미디어 대표

“역시 팩트(fact)다.”


인터넷 등 테크놀로지의 영향으로 앞길이 잘 안 보이는 언론의 미래에 대해 생각하고 있던 요즘, JTBC의 ‘최순실 태블릿PC’ 보도와 조선일보의 ‘우병우 검찰청사 사진’을 보며 든 생각이다. TV조선의 첫 보도로 시작된 최순실 사태. 국민들을 허탈감과 분노 속에 빠뜨린 이 사태는 조선일보와 청와대의 갈등 국면 속에 잠시 잠복해 있다가, JTBC의 최순실 태블릿PC 보도로 ‘태풍‘으로 급변했고, 조선일보 1면에 실린 검찰에 조사 받으러 간 우병우 전 민정수석의 사진 한 장으로 사실상 ’종결‘됐다.


팩트의 힘은 강력했다. 우선 JTBC의 ‘최순실 태블릿PC’ 보도. 언론의 숱한 의혹 제기 속에서도 부인으로 일관하며 버티던 최순실 사태의 주인공들은 방송 화면을 통해 드러난 팩트들로 인해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국민들은 그 PC 속에 어떤 팩트들이 담겨 있는지 보기 위해 JTBC의 뉴스 시간이 되면 TV앞에 앉았다. 최근 모임에서 만난 많은 사람들이 “최순실 PC 보도 이후 뉴스는 jtbc를 보게 된다”고 말했다. ‘언론정보학 원론’ 그대로였다. 그 어떤 정교한 기획보다도, 과감한 의혹 제기보다도, 역시 팩트의 힘은 강력했다.


국민들이 당혹해하던 어느 날 아침. 집으로 배달된 조선일보를 집어든 나는 1면 사진을 보며 처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 사진 한 장으로 박근혜 정권은 더 이상 버티기 힘들어질 것 같아.” 사진 속 우병우 전 민정수석은 팔짱을 낀 채 앉아있었다. 그 앞에는 검사가 두 손을 모으고 서 있었다.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었다. 미국이었다면, 퓰리처상 수상감이었다.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팔짱을 낀 채 여유 있는 표정을 짓고 있는 반면 검사와 검찰 직원이 손을 모은 채 우 전 수석의 얘기를 듣고 있다. 이 사진은 조선영상비전 고운호 기자가 지난 11월6일 저녁 9시25분쯤 서울중앙지검에서 350m가량 떨어진 서초역 인근 한 빌딩에서 찍은 것이다. (조선일보 제공)

사진은 ‘시각적인 팩트’다. 사진 한 장이 그 어떤 긴 글이나 말보다 강력할 때가 있다. 그 사진도 강력했다. 정권의 ‘실상’을 컷 하나로 말없이 보여주었다. 국민들은 “아, 이 정권의 실세는 검찰에 조사 받으러 가도 저렇게 있다가 나오나보다…”라고 생각하며 사진 속에 드러난 ‘팩트’에 허탈해했다. 사진 한 장으로 국민의 권력에 대한 신뢰는 땅에 떨어졌고, 언론에 대한 기대는 치솟았다.


이 두 팩트는 ‘기본’을 통해 발굴됐다. PC를 어떻게 확보했는지 JTBC 관계자 몇 명에게 물어보았다. 확실한 설명을 듣지는 못했지만 그들의 말을 종합해보면, “OO로 가보면 OO가 있을 거다” 등의 취재원들의 제보와 그런 작은 실마리들을 발로 뛰며 충실히 확인해간 사건기자들의 공이었던 것으로 추측된다.


조선일보의 사진은 그 장면을 찍은 사진기자의 취재후기로 공개되었다. 예상했던 대로, 그는 망원렌즈를 장착한 무거운 카메라를 들고 한 건물 옥상에 올라가 찬 밤바람 속에서 오랜 시간 검찰청 건물을 주시하고 있었다. 국민들은 “고맙습니다”, “비정규직이신 것 같은데, 조선일보는 꼭 정규직으로 뽑아주세요”라고 댓글로 응원했다.


길은 역시 팩트에 있었다. 그리고 이 시대에는 거기에 테크놀로지의 힘이 추가되어야 한다. 인터넷, 모바일, 소셜이라는 테크놀로지가 언론의 미래를 불투명하게 만들었지만, 언론은 그 테크놀로지에서 미래의 길을 찾아야 한다. 최순실 PC나 망원렌즈가 달린 디지털 카메라에서도 테크놀로지의 체취를 느낄 수 있지만, 앞으로 팩트의 발굴에 기술이 기여하는 모습을 더 자주 볼 수 있어야 한다. 의미 있는 팩트들이 국민 대다수가 갖고 다니는 디바이스들을 통해 언제든 디지털 파일로 수집될 수 있는 세상, 그 디지털 팩트들이 손쉽게 네트워크를 통해 전파되고 공유되는 세상…. 언론 미디어와 기자는 그 한 가운데 서 있어야 한다.


"로마군대는 곡괭이로 싸운다.” ‘기본’을 강조하는, 고대 로마제국의 명장 코르불로가 한 말이다. 언론은 팩트와 테크놀로지로 싸워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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