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의 패배로 끝난 미국 대선

[글로벌 리포트 | 미국]국기연 세계일보 워싱턴 특파원

▲국기연 세계일보 워싱턴 특파원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이겼고, 미디어가 패배했다. 폭스 뉴스와 워싱턴 타임스 등 극소수의 미디어를 제외하고, 미국 주류 언론은 트럼프 낙선 캠페인에 적극 가담했다. 그러나 미국 주류 언론은 트럼프를 떨어뜨리지 못했을 뿐 아니라 미국 유권자를 오도하는 중대한 실책을 범했다. 미국 미디어 보도를 추종해온 한국 언론도 이런 비난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다. 한국 언론사도 대체로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가 이길 것처럼 보도를 함으로써 한국의 시청자와 독자를 오도했다.


미국 주류 언론은 “미국의 240년 대통령 선거 역사에서 최대 이변이 일어났다”고 선거 결과를 전했다. 트럼프가 거의 대부분의 언론사와 여론조사기관, 정당, 정치 컨설팅업체의 예상을 깨고 대 역전승을 거뒀다고 미국 언론이 보도했다. 언론이 ‘최대 이변’이라든가 ‘예상을 깨고’ 등의 표현을 쓰는 것을 보면 아직도 미국 언론이 제대로 반성을 하고 있지 않은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언론이 거꾸로 예상을 하고 있었기에 ‘이변’이고, 잘못 예상하고 있었기에 예상이 깨진 게 진실이기 때문이다.


국제 사회에서 전통적인 주류 언론이 날개 없이 추락하고 있다. 지난 4·13총선에서는 한국 언론이 망신을 톡톡히 당했다. 한국의 어느 언론사도 분열된 야당이 총선에서 승리할 것으로 예상하지 못했다. 그 이후 6·23 브렉시트 투표에서는 영국의 언론이 무너졌다. 영국의 언론사가 국민 투표에서 브렉시트가 통과하지 못할 것으로 시종 보도를 했었다. 이번 11·9 미국 대선에서는 미국 언론이 폭삭 망했다.


한국, 영국, 미국의 주류 언론은 결정적인 순간에 민심을 거꾸로 읽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미국 대선이 끝난 뒤 게재된 워싱턴 포스트, 뉴욕 타임스 등 미국 주요 신문의 반성문을 샅샅이 찾아보았다.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부정확한 여론조사 때문이라고 한다. 언론사와 제휴한 여론조사기관이 ‘침묵하는 다수’를 찾아내지 못했다. 여론조사 전문가들은 주 단위로 실시되는 미국 선거가 오차 범위 내에서 승부가 갈려 오류를 범했다고 변명했다. 그러나 수십 번, 수백 번 실시한 여론조사로 민심을 짚어내지 못한 여론조사는 존재 이유를 상실했다.


취재기자와 언론사가 오만과 편견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도 오판하는 이유 중의 하나로 꼽혔다. 워싱턴 포스트는 “기자도 사람이어서 믿고자 하는 것만 믿고, 보고 싶은 것만 보는 인간 심리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다”고 자백했다. 워싱턴 포스트를 비롯한 많은 언론사의 정치부 기자와 해외에서 파견된 특파원은 처음부터 트럼프가 도저히 대통령이 될 인물이 아니라는 편견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 같다. 결혼을 세 번 하면서 혼외 정사를 일삼고, 성추행을 자랑하면서 여성, 장애인, 전사자 군인 가족을 조롱하고, 노골적인 인종차별을 옹호하며 연방 소득세 신고를 하지 않은 사람이 대통령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기자와 언론사는 상상하지 못했다. 폭스 뉴스의 미디어 담당 기자인 하워드 커츠는 이를 ‘저널리스트 특유의 편견’이라고 꼬집었다.


언론이 정치자금 모금 액수, 정치 외곽단체인 슈퍼팩의 활동, TV 광고, 특정 후보를 투표장으로 끌어내는 소위 ‘그라운드 게임’, 소수 인종 유권자가 증가하고 있는 표밭 변화, 현직 대통령의 인기도 등 기존의 선거 예측 모델에 의존한 것도 재앙을 초래했다. 이 모든 분석 틀을 대입하면 클린턴이 단연 앞섰기 때문이다. 워싱턴 포스트는 “언론이 ‘오늘’을 알기 위해 ‘어제’에 의존했다”면서 “‘과거’가 ‘현재’에 적용되지 않으면 그 분석 모델은 오류로 이어진다”고 지적했다.


이 모든 분석보다 트럼프의 당선을 전혀 예상하지 못한 내 자신의 폐부를 찌르는 지적은 ‘더 위크’라는 잡지에 게재된 이 대목이었다. “언론은 선거전을 보도하면서 유권자가 아니라 후보자에 초점을 맞춘다. 후보자가 누구이고, 그가 무슨 소리를 하느냐가 관건이 아니다. 선거는 그 후보자와 그의 말을 유권자가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따라 판가름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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