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력 감축에 초상집 핀란드 공영방송 YLE

[글로벌 리포트 | 핀란드] 최원석 YTN 기자· 핀란드 라플란드 대학교 미디어 교육 석사전공

  • 페이스북
  • 트위치

▲최원석 YTN 기자

핀란드 공영방송 윌레(YLE)에 한파가 들이닥쳤다. 지난달 21일, 회사가 전체 제작 인력의 30%가량을 줄인다는 계획을 발표했기 때문이다. 일차적으로 카메라 감독, 영상 편집자, 무대 디자이너를 포함해 160여명이 직장을 잃게 생겼다. 윌레는 얼마 전 개국 90주년 축하 행사를 크게 했는데, 한 달 만에 초상집이 됐다. 얼음이 얼기 시작한 계절에 전해진 얄궂은 소식이다.


핀란드기자협회는 이 같은 ‘구조조정’이 확대되면 핀란드 언론 역사상 가장 큰 인력 감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예상했다. 윌레의 예산과 경영을 관리 감독하는 핀란드 국회 산하 논의기구(working group)가 예산 동결과 함께 외주화 비율을 2022년까지 35%로 높이라는 권고를 해뒀기 때문이다. 지난 1990년 4800명이었던 직원 수는 현재 3000명으로 줄었는데, 외주화 비율이 늘수록 더 많은 인원이 해고될 예정이다.


윌레의 해고 계획이 특히 충격적인 건, 말 그대로 ‘핀란드 국민의 방송’이기 때문이다. 윌레는 국가가 99.9% 지분을 갖고, 국회에서 선정한 감독 기구가 관리한다. 운영 예산은 개인과 법인들로부터 걷은 세금(YLE tax)으로 충당한다. 영국의 BBC와 비슷한 독립적인 구조를 바탕으로 기업뿐만 아니라 정부와 국회까지 비판할 수 있는 힘을 유지해왔다. 공영방송이 또 다시 인력 감축이라는 ‘쉬운’ 해결책을 선택한 점이 아쉽다.


이렇게 확보한 예산을 주요 분야에 집중하겠다는 점이 그나마 긍정적인 부분이다. 윌레는 어린이와 청소년 프로그램, 뉴스처럼 공영방송이 강점을 가질 수 있는 분야에 집중하고, 나머지 분야는 독립 제작자들에게 맡기는 방식으로 미디어 산업 전반의 역량을 활용하겠다는 전략을 세웠다. 핀란드 내 유일한 통신사(STT)와 계약을 맺고 뉴스를 공급받는 내용도 국회 권고에 따라 포함됐다. 우선 앞으로 5년 동안 새로운 콘텐츠 전달방식을 발굴하기로 했는데, 온라인 중심의 미디어 환경에 적응할 수 있도록 체질을 바꾸려는 모양새다.


위기감은 다른 언론사에서도 느껴진다. 핀란드 최대 신문사인 ‘헬싱키 사노맛(Helsingin Sanomat)’은 기존 구독자들을 어떻게든 온라인 구독자로 다시 붙잡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두 달 구독하면 한 달 무료’ 방식으로 구독료를 낮추고, 신규 가입자는 한 달에 5000원가량을 깎아준다. 2달 기준 65유로인 신문 구독료를 인터넷으로만 볼 경우 45유로에 볼 수 있다고 홍보한다. 최근에는 헬싱키 공항 목 좋은 곳에 전시장을 설치하고, 이용객들에게 구독을 권유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북부 지역의 ‘라삔 칸사(Lapin Kansa)’를 포함해 지역 언론사들은 중소기업 박람회까지 돈을 내고 참가해 독자들을 찾아다닌다. ‘자전거 끼워주는’ 출혈 판촉까지는 아니지만, 핀란드인들의 평소 모습에 비추면 꽤나 적극적인 행보다. 해마다 수만 명씩 줄어드는 구독자를 붙잡으려니 뾰족한 방도가 없기는 핀란드 언론사들도 마찬가지로 보인다.


이런 경제난이 언제쯤 풀릴지는 알 수 없지만, 개인적으론 학교에서 만난 ‘퇴직자 복학생’의 말이 비교적 와 닿았다. 핀란드 사람들이 여행사진을 페이스북에 올리는 빈도가 많아지면, 경제가 그래도 좀 나아졌다고 볼 수 있다는 나름의 분석이었다. 노키아 협력사에서 20년 가까이 일하던 그는 해고 이후로는 신문도 TV도 보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언제쯤이면 핀란드의 뉴스를 편안한 마음으로 볼 수 있을까?


최원석 YTN 기자의 전체기사 보기

배너

많이 읽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