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기자·PD들 "저널리즘에 가까이 가자"

SBS노조 결의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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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은 못 참는다 보도개입 중단하라! 보도개입 막아내고 공정방송 사수하자! 공정방송 외면해 온 책임자는 사과하라! 조합원이 앞장서서 공정방송 쟁취하자! 우리가 주인이다 SBS 지켜내자!“

28일 낮 12시30분. 서울 양천구 목동 SBS사옥 1층 로비에 자리 잡은 150여명의 기자, PD 등 언론노조 SBS본부(본부장 윤창현) 조합원들은 이 같은 구호를 힘껏 외쳤다. JTBC와 TV조선이 ‘최순실 게이트’ 보도를 주도하며 호평을 받은 반면 지상파 방송사들은 그 존재 이유까지 되묻는 국민들의 비판에 직면한 상황. 이들은 언론노조 지본부들 중 가장 먼저 결의대회(‘정치권력과 경영진의 보도개입 중단 및 공정방송 촉구 조합원 결의대회’)를 열고 마음을 다잡는 계기를 마련했다.


▲언론노조 SBS본부는 28일 '정치권력과 경영진의 보도개입 중단 및 공정방송 촉구 조합원 결의대회'를 열었다. 사진은 발언하는 윤창현 본부장.


박원경 기자는 이날 자유발언에서 “입사한지 만으로 6~7년째가 되는데 요즘처럼 참담한 기분을 느꼈던 적은 없었던 거 같다”며 말문을 열었다. 그는 “지하철에서 두 어르신이 요즘에는 ‘JTBC가 최고다. 이런 건 지상파에선 못 쓸 거다’라고 그렇게 얘길 나누시더라. ‘아니다, 가지고 있었으면 썼을거다’ 강하게 반박하게 싶었는데 못 그랬다”며 “왜 우리가 이 자리에 모여있는지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우리가) 정말 열심히 했는데 다른 쪽이 더 잘해서 좋은 보도를 하면 박수를 쳐줄 수 있다. 그런데 우리가 피해서 그 결과 ‘눈뜨고 물먹고’ 있는 상황을 보니까 마음이 아픈 것”이라며 “세월호 참사 겪고 나서 좀 있다가는 (JTBC에) 역전될지 모른다는 얘기가 많았다. 순치돼 왔던 것 아닌가 반성한다”고 말했다. 이어 “위기는 기회라는 말, 제가 제일 싫어하는 말이지만 이번에는 꼭 그렇게 됐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권영인 SBS기자협회장은 MBC를 의식했던 과거 기자생활을 설명하면서 “(당시 내게) MBC보다 잘 하는 건 시청률이 좋아지고 단독기사를 쓰는 게 아니라 ‘저널리즘에 더 가까이 가는 것’이었다. 정의로운 길이었다”고 전했다.

그는 “입사 10년쯤 됐을 때 (SBS가) MBC보다 앞서게 됐지만 그 다음이 문제였다. 1등으로서 어떻게 해야하는지 몰랐던 거 같다. 그새 조롱하고 우습게 봤던 종편들이 성장해 왔다”며 “더 이상 그들은 우리가 무시하고 외면할 상대가 아니다. 그래서 오히려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JTBC가 하는 것과 우리가 하는 걸 매일매일 비교하면서 경쟁하고, 뒤처지지 않게 열심히 싸워나가는 게 바른 언론사, 바른 저널리즘을 실현하는 거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언론노조 SBS본부는 28일 '정치권력과 경영진의 보도개입 중단 및 공정방송 촉구 조합원 결의대회'를 열었다. 사진은 발언하는 권영인 기자협회장.


SBS ‘그것이 알고 싶다’의 이큰별 PD는 ‘자기검열’을 조직문화에서 비롯되는 일종의 질병이라고 생각한다면서 “‘어차피 이런 얘기 꺼내봤자 (보도) 안돼’라고 생각할 때 말하는 능력, 현장에서 발로 취재하는 능력을 잃게 된다”고 우려했다. 그는 “언론인으로서 부끄럽지 않은 치열한 논의를 통해 합리적인 결론을 내고, 일에만 집중하는 조직문화가 꽃피었으면 좋겠다“고 당부했다.

이날 결의대회는 그동안 안주해 온 자신을 되돌아보는 동시에 그런 환경을 만들어 온 정치권력과 회사 경영진에게 '선을 긋는' 자리이기도 했다. SBS본부는 경과보고에서 이 자리는 ‘최순실 게이트’로 촉발된 것이지만 SBS내에서 하루이틀 새 벌어진 일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세월호·총선보도에서의 불공정성·기계적 균형 △이정현-김시곤 녹취록 축소보도 △철저하게 대통령의 스피커 노릇을 하는 보도행태 등에 지속적으로 질타했지만 크게 달라진 게 없었다는 것이다. ‘최순실 게이트’ 보도를 위한 특별취재팀 구성 역시 기자들이 제안한 지 한 달여 만에 만들어졌다. 그새 보도의 격차는 “벌어져도 너무나 벌어진 상태”였다.


▲언론노조 SBS본부는 28일 '정치권력과 경영진의 보도개입 중단 및 공정방송 촉구 조합원 결의대회'를 열었다. 구호 외치는 SBS조합원들.


윤창현 본부장은 현장에서 뛰는 기자 등 실무자들의 일상적인 싸움이 공정방송을 이뤄내기 위해 필수적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윤 본부장은 “SBS 생존을 걱정해야 한 상황까지 몰고 온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분명히 해야 한다. 영화 ‘내부자들’ 보지 않았나. 거기 신문사 논설주간이 나쁜 짓을 할 때마다 ‘회사를 위해서’라는 수식어를 붙였다. 너무 가슴 아픈 이야기지만 이 자리에 앉아계신 보도본부 선배들, 일선 취재 현장에 계신 보도본부 동료들 조금 불편하니까 펜을 꺾고 카메라를 돌리라는 지시를 따랐다. 선배랑 싸우기 싫어서 눈감고 넘어갔다. 그게 쌓이고 쌓여서 여기까지 왔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제작현장에서의 민원성 제작지시·로비활동 거부, 부당 지시 발생 시 노조에 신고, 공정방송 리본 패용 등을 당부했다.

김환균 언론노조 위원장은 “언론은 여의 편도 아니고 야의 편도 아니고 진보의 편도 아니고 오로지 진실의 편이고 시민의 편이다. 오늘 이 자리가 우리가 진실의 편에 서고 그 다음에 시민의 편에 선다는 다짐을 하는 자리이길 바란다”며 “이 결의가 언론노조 전체 조직으로 번져 좀 더 신명나고 자부심 갖는 언론노동자들이 될 수 있길 바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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