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라질 남부 분리독립 움직임 유감

[글로벌 리포트 | 남미]김재순 연합뉴스 상파울루 특파원

▲김재순 연합뉴스 상파울루 특파원

헌정사상 두 번째 대통령 탄핵이라는 대형 이슈 속에 지난 2일 치러진 브라질 지방선거는 예상대로 우파의 승리로 끝났다. 전국 5568개 도시의 시장과 시의원을 선출한 이번 지방선거에서 우파 정당들은 탄핵정국으로 조성된 유리한 여건을 틈타 대부분 약진했다. 반면 대통령 탄핵으로 수세에 몰린 좌파 노동자당은 몰락에 가까운 참패를 감수해야 했다. 하이라이트로 꼽힌 상파울루 시장 선거에서는 우파 후보가 노동자당 후보보다 3배 이상 높은 득표율로 압승해 대통령 탄핵 이후 나타난 급격한 우클릭을 실감하게 했다.


브라질 국민의 관심이 지방선거에 쏠린 사이 남부지역 3개 주(州)에서는 ‘분리독립’이라는 흥미로운 이슈를 놓고 비공식 주민투표가 이뤄졌다. 남부 3개 주는 히우 그란지 두 술 주와 산타 카타리나 주, 파라나 주를 말한다.


지방선거 하루 전에 “3개 주가 분리독립해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는 데 찬성하느냐”는 질문에 답하는 형식으로 이뤄진 주민투표에는 61만6917명이 참여했다. 주민투표 조직위원회에 따르면 찬성률은 무려 95.74%였다. 특히 히우 그란지 두 술 주에서는 32만여 명이 투표에 참가해 97.21%의 찬성률이 나왔다.


남부 3개 주의 분리독립 움직임이 태동한 것은 히우 그란지 두 술 주로 알려졌다. 이곳은 17세기 후반 포르투갈인들이 들어오면서 개척되기 시작했다. 아르헨티나·우루과이와 인접해 오랜 기간 스페인과 분쟁 대상이 됐으나 1822년 브라질이 독립하면서 브라질 영토에 편입됐다. 독립 후 유럽 이민자들이 대거 몰려들면서 히우 그란지 두 술 주는 급속하게 발전했다. 경제적 번영은 독립 기운을 부추겼고, 한때 ‘팜파스 공화국’ 이름으로 독립 시도가 이뤄지기도 했다.


남부 3개 주의 분리독립 움직임은 20세기 들어서도 계속됐다. 25년 전부터는 산타 카타리나 주에서 보다 정교한 형태의 분리주의운동으로 발전했다. 작년에는 분리독립을 촉구하는 모임과 행사가 100여 차례나 열렸다. 이번 주민투표 비용도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낸 기부금으로 충당했다.


분리독립을 주장하는 사람들은 남부의 경제력이 분산돼 피해를 보고, 세금을 낸 만큼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다른 지역과 비교해 세금을 더 많이 내면서도 교육·보건·인프라 등에 대한 투자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다는 불만도 제기한다.


그러나 브라질 사회에서 분리독립 요구가 먹혀들 여지는 별로 없다. 남부 3개 주가 떨어져 나가 새로운 국가를 세우는 것은 브라질 연방헌법으로 불가능한 일이다. 연방헌법은 제1조에서 브라질 연방공화국이 주, 시, 연방특구(행정수도 브라질리아)의 ‘분리할 수 없는 결합’으로 이루어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정서적·정치적 명분도 약하다. 산타 카타리나 주지사는 “나는 브라질 국민이며 브라질이 단합하고 강해지기를 바란다”며 ‘다양성을 기반으로 한 단결’을 강조했다.


브라질에서 나타나는 분리독립 움직임은 지역간 빈부격차의 단면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남부지역은 백인이 80%를 차지하고 자신들만의 독특한 유럽문화 속에 산다. ‘브라질 속의 유럽인’ 인식이다.


제2차 세계대전 기간 남부지역에 모여 살던 독일인들 사이에서 분리독립 움직임이 나타났다. 브라질의 근대화·산업화를 주도한 당시 대통령 제툴리우 바르가스(1930~1945년, 1951~1954년 집권)는 독일식 건물을 파괴하고 독일어 사용을 금지하는 강경책을 썼다. 브라질의 가치를 지키는 길이 통합에 있다는 사실을 확인한 조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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