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 않고 기억해준 동료들 있어 외롭지 않아"

원직복귀된 정연욱 KBS 기자
회사와의 소송 마음 무거워
'틀리지 않았다' 인정받아 기뻐
인사로 재갈 물리기 비인간적
좋은 기사 쓰는 게 우선순위
가처분 판결에 사측 묵묵부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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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동료기자들이) 피케팅을 안 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제일 먼저 떠올랐다. 바쁜데 아침 점심에 조를 짜서 피켓을 들고 서 있는 게 저 때문이라는 사실이 견디기 힘들었다. 제가 틀리지 않았다는 걸 인정받아 기쁘다.”


정연욱 KBS 기자가 돌아왔다. 멀리 제주에서 원래 자리였던 경인방송센터로. ‘청와대 보도개입’에 침묵하는 자사 보도와 간부들을 비판한 기고, 갑작스런 발령, 회사와 소송까지 거친 지난 세 달간의 결론이다. 법원은 그를 ‘귀양’보낸 지난 7월 발령이 “정당한 인사권의 범위를 일탈한 권리남용”이라며 “인사명령 효력을 임시로 정지한다”고 밝혔다. 판결문을 받아든 그는 이처럼 ‘동료’들에 대한 얘길 지난 14일 기자협회보와의 인터뷰에서 가장 먼저 입에 올렸다.


▲정연욱 기자 (사진=언론노조)

여느 재판이나 그렇겠지만 승소를 확신할 수 없는, 어려운 싸움이었다. 더구나 상대는 자신이 몸담은 회사가 아닌가. 여러 구제절차를 거치며 사측 편에 선 선배와 마주했을 땐 ‘비애감’도 들었다고 했다. “마음이 무거웠다. 부담도 컸다. 회사가 법원에 제출한 서면자료를 받아봤을 때 특히 그랬다. 내가 속한, 자부심을 갖고 있던 조직이 일개 개인을 향해 전사적인 공격을 하니까 견디기가 힘들었다.”


어려운 길이 될 거라 예상치 못했을까. 아니다. 다만 어떤 일들은 그저 나서는 것 외의 선택지가 없는 경우가 있다. 시작은 인사 전 단 한 마디의 언질이나 빈말조차 없었던 회사의 처사 때문이었지만 여러 정황은 이 일이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고 가리켰다. 인사 후 사흘 만에 나온 KBS보도본부 국·부장단의 연명 성명이 그랬다.


정 기자는 “이건 내 개인의 문제가 아니구나 했다. 반복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기자들은 기자이면서 생활인이기도 한데 이런 인사로 재갈을 물리려는 시도는 비열하고 비인간적이고 몰지성적인 행태라고 봤다”고 했다. 해당 성명에는 “회사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기고를 하고서 아무런 일이 없기를 바라는 것이 잘못된 것”, “KBS를 팔아 이름값을 올렸으면 당당하게 뒷감당도 하는 게 당연한 자세”라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제주 생활은 법적인 절차를 밟는 것 외에는 오로지 일에만 충실한 시간이었다. 구설수나 오해에 조심했다. 대부분 기자들이 “인간적으로 대하고” “업무 적응을 적극 도왔지만” 일부 간부는 소송포기를 종용하기도 했다. 그는 “제주총국도 많은 상처를 받았다. 자부심을 갖고 일하는 기자들에게 유배지라는 굴레를 덧씌운 거 아닌가”라며 “누가 되지 않게 열심히 했다. 두 달 반 동안 근무하며 리포트 안 한 날이 5일도 안 될 거다. 걱정해주시는 분들에 대한 맞는 처신이라 생각했다”고 전했다.


시종일관 당당하게 답하던 정 기자의 목이 메였다. 가장 힘이 된 이들을 물었을 때였다. “제가 머문 두 달 반 동안 매주 (본사)선배나 후배들이 주말마다 찾아왔다. 휴가나 여행을 오신 분들은 잠깐이라도 꼭 보고 갔다. 본사에서 온 분들과는 유쾌한 얘기만 하지 않았겠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숙소에 오면 굉장히 마음이 무거웠다. 한 달 정도 지나면, 기자들이 워낙 바쁘니까, 일상에서 잊혀질 거라 생각했다. 회사 안에서도 싸워야 할 일들이 발생하니까 잊혀질 준비를 했다. 고맙다는 말로는 다 담질 못 하겠다.”


‘KBS기자협회 정상화를 바라는 모임’에 대한 정 기자의 문제의식은 여전히 유효하다. 그는 “(간부들이) 많이 하시는 말씀이 ‘일이나 똑바로 해라. 일이 제일 중요하다’ 이런 거다. 그런데 그 선배들이 ‘정상화모임’ 명단을 작성하고 있을 때도 묵묵히 취재하고, 기사 쓰고, 리포트 한 건 일선 후배들”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발언할 기회가 있을 때는 가감 없이 하겠지만 저와 동료들 우선순위는 항상 일이다. 좋은 기사를 쓰고, 리포트를 하고 그게 제일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KBS는 법원 판결문이 송달된 후 지난 12일자로 정 기자의 소속 부서를 원래대로 바꿨지만 새로 인사발령을 내진 않았다. 최초 인사가 잘못됐다는 걸 공식적으로 인정하는 모양새가 돼 버려 이를 거부한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발령 전후는 물론 판결이 나고도 정 기자에겐 일언반구가 없었다. 그는 “오죽했으면 (판결 후) 내가 인사운영부에 전화를 했겠나”라며 “정말 서운하다”고 했다. 부당한 인사명령으로 피해자가 나왔다. 정작 사태를 초래한 이들은 아무런 책임도 지지 않고 있다. 결국 피해는 몸담은 조직에 대한 자부심으로 똘똘 뭉친, 그래서 슬픔과 분노를 느낀, 가장 평범한 기자의 몫으로만 남았다.

최승영 기자 sychoi@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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