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법 앞에서 평등한가

[언론 다시보기] 문소영 서울신문 사회2부장

▲문소영 서울신문 사회2부장

한국 나이로 50쯤 되고 나니 어린 시절에 당연히 여겼던 것들을 새롭게 바라보게 됐다.
공자는 나이 40이면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 ‘불혹’이라고 했다. 그러나 막상 나이 40에 도달해보니 ‘돈’과 ‘명예’라는 유혹에 흔들리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됐다. 공자는 나이 50은 지천명이라 해서, 하늘의 뜻을 알게 된다고 했다. 50에 막 도달해보니 하늘의 뜻은커녕, 내 이웃의 뜻은 물론이거니와 내 자신의 뜻조차 헤아리기 어려웠다. “공자는 그 나이가 되면 도달하기 위해 죽도록 힘써야 한다는 어떤 경지를 요구한 것인가”하고 생각하게 됐다.


기독교의 십계명도 그렇다. 도둑질 하지 마라, 네 이웃의 아내를 간음하지 마라 등이 인간사회에서 쉽게 근절될 수 있었더라면 계명으로 만들어질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1789년 프랑스에서 전 세계에 수출된 자유와 평등과 연대(인권)와 같은 이상도 마찬가지다. 이 3대 정신은 근대적 사고와 철학의 근간이지만, 실제로 구현되는 것은 쉽지 않다. 공권력으로 국민을 억압하는 독재국가들이 21세기에도 여전하다. 형식적 민주주의는 확보했으나 실질적 민주주의가 제대로 구현되지 않아 대통령이 초법적이거나 초헌법적인 통치를 하는 나라도 있다. 이런 나라들에서 자유와 평등, 인권과 같은 근대적 정신은 같은 시간대의 지구촌에서 살아간다고 해도 축소되고 억압될 수밖에 없다.


헌법 제11조는 ‘법 앞에서의 평등’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헌법 제11조 1항은 “모든 국민은 법 앞에서 평등하다. 누구든지 성별·종교 또는 사회적 신분에 의하여 정치적·경제적·사회적·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 있어서 차별을 받지 아니한다”고 했다. 법 앞에서의 평등은 근대사회를 지탱하는 초보적이고 기초적인 개념 중 하나이다. 더 확대해서 사람들은 성별, 종교, 사회적 신분, 연령, 국적, 빈부 등을 이유로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갖고 있다고 믿고 있다. 평등과 인권의 개념들이다. 7일 단식한 여당 대표에 쏟아진 스포트라이트와 46일간 단식에도 주목받지 못한 세월호 유가족을 굳이 비교하고 싶지는 않다.


그런데 과연 그러한가? 하고 의심할 만한 일이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다. 특히 기소독점권을 가지고 있는 검찰은 과연 사회적 신분 등을 이유로, 또는 대통령이나 권력과의 친소관계를 이유로 차별하지 않고 법을 집행하고 있는지 물어봐야 할 시점이다. 방석호 전 아리랑TV 사장의 ‘미국행 황제출장’ 논란도 그중 하나다. 그는 지난 2월에 사표를 냈고, 검찰은 방 전 사장의 업무상 횡령 혐의 등에 대해 수사에 들어갔다가 6개월만인 지난 8월 무혐의라는 결론을 냈다. 공기업의 말단 직원이 만약 법인카드를 저렇게 썼더라도 징계를 먹을 만한 일이었는데, 무혐의라니 어이가 없다.


박근혜 대통령과 특수관계인이라는 ‘최순실’씨가 연루됐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도 마찬가지다. 이 두 재단은 재벌기업으로부터 약 900억원의 후원을 받았다. 올 9월 논란이 일자 해당 대기업들은 “자발적이었다”고 서로 입을 맞춘 듯이 주장했다.


그러나 지난해 11월 한국경제신문의 수석논설위원은 ‘이런데도 법인세를 올리자고?’(http://www.hankyung.com/news/app/newsview.php?aid=2015111880821)라는 칼럼에서 그렇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칼럼은 “미르에 왜 돈을 냈냐고. 답은 “내라니까 냈다”였다. 누가 내라고 했느냐고 다시 물었다. “다 아시면서”라는 꼬리 없는 답이 돌아왔을 뿐이다”라고 했다. 그는 독재시대나 권위주의 시대에 유행했던 ‘준조세’와 같은 것이라고 비판했다. ‘대기업이 삥뜯겼다’는 것이다.


자발적이었다던 전경련은 지난달 30일 돌연 입장을 바꿔, 두 재단을 해산하고 신규 통합 재단 설립을 추진하겠다고 했다. 실소할 수밖에 없다. 두 재단 설립 과정에서 불법한 일은 없었는지, 편법을 저지른 적은 없는지 등을 꼼꼼히 따져서 관련자를 처벌해야 한다면 기소하고 처벌해야 한다. 특히 권력의 측근일수록 법 앞에서 평등이란 잣대를 더 확실하게 들이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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