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송의 공공성과 시장 자유주의

[글로벌 리포트 | 영국]김지현 골드스미스 런던대 문화연구 박사과정

▲김지현 골드스미스 런던대 문화연구 박사과정

BBC 간판 프로그램의 방영권이 경쟁사인 채널4에게로 넘어갔다. 아마추어 베이커들의 경연을 그리는 ‘더 그레이트 브리티쉬 베이크 오프’(The Great British Bake Off)의 제작사인 러브 프로덕션과 방영사인 BBC가 갈등을 겪으면서 결국 해당 프로그램의 포맷사용권이 채널4에게 팔린 것이다. 


2010년 첫 선을 보인 후, ‘더 그레이트 브리티쉬 베이크 오프’(이하 ‘베이크 오프’)는 제작진이 제시하는 까다로운 과제들에 도전하는 아마추어 베이커들의 모습을 흥미롭게 그려내 공익성과 웃음을 모두 잡았다는 호평을 들어왔다. 올해 열린 영국 아카데미 텔레비전상에서는 ‘피쳐’ 부분에서 수상하는 영광을 얻기도 했다. 그야말로 공적 서비스인 BBC의 이미지에 딱 맞아떨어지는 프로그램인 것이다.


시청률 면에서도 이 프로그램이 만든 기록들은 여러가지다. 방영 이래, 연말 결산의 최고 시청률 집계에서 단 한 번도 10위권 내를 벗어난 적이 없을 뿐만 아니라, 2015년에는 스포츠게임 중계를 제외한 집계에서 영국 최고의 시청자수를 기록했다. 평균 시청자수는 1천 300만명. 이번 논란이 일기 전에 마지막으로 방영된 에피소드는 무려 1천 500만 명이 시청했다. 그 흥행성이 입증된 만큼 해외 판매도 활발하게 이뤄져 지난 해까지만 BBC 월드와이드는 세계 196개 지역에 그 방영권을 수출했다.


이런 엄청난 프로그램을 BBC가 놓치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BBC에게서 채널4로 그 포맷 사용권이 넘어갔다는 사실이 전해지면서 그에 대한 논란으로 영국의 소셜미디어는 달아올랐다. 팬들뿐 아니라 ‘가디언’과 같은 일간지마저 BBC편을 들며 채널4가 “빼앗은 것”이라며 자극적인 보도를 내놓았을 정도다.


그런데 사실 BBC가 올해 들어 방영권을 타방송사에 넘긴 예능 프로그램은 ‘베이크 오프’가 처음이 아니다. 지난 5월 영국 보수당 정부가 발표한 ‘백서’는 BBC가 관련 산업에서 지닌 독점적 지위를 감안, 그 서비스 규모를 약화하기 위한 여러 방편들을 제시하는 한편, 경쟁 방송사들과 포맷이 겹치는 프로그램들을 제작하거나 방영하는 것을 문제적인 사례로 거론했었다. 이에 BBC가 “공적 서비스 방송사(BBC)가 미국에서 판권을 사왔다”는 이유로 비판받은 ‘더 보이스’(The Voice)의 방영권을 포기하면서 그에 대한 논란이 일단락된 바 있다.


▲'더 그레이트 브리티쉬 베이크 오프' 프로그램을 소개하는 BBC 캡처

하지만 이번 ‘베이크 오프’의 경우는 그와는 무관한 문제라 할 것이다. 영국에서 개발한 고유의 포맷으로서, 영국 정부가 창조산업의 성공사례로 즐겨 거론할 정도로 정파를 막론하고 지지를 받아온 프로그램이기 때문이다. 실제 비슷한 시간대의 경쟁사 포맷들이 겹친 적도 없었다. 그래서인지 이번 ‘베이크 오프’ 사태를 영국 정부의 압력으로 해석하는 여론은 없다시피 하다.


이처럼 비판 여론이 고조되자, 채널4 측은 “우리가 가져온 것이 아니라”, “BBC가 (포맷 계약에) 실패한 것”이라며 지난 9월 27일에 열린 로얄 텔레비전 소사이어티(the Royal Television Society)의 회의장에서 그 입장을 분명하게 밝혔다. 자신들이 가격경쟁에서 이겼다는 논리다. 이후의 보도들에 따르면 채널4는 러브 프로덕션에 해당 프로그램의 포맷을 향후 3년 동안 이용하는 조건으로 7천 500만 파운드라는 거금을 지불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같은 회의에 참석한 제임스 퍼넬 BBC 전략본부장은 ‘베이크 오프’ 사태를 고려했을 때, 공적서비스방송사 중 하나인 “채널 4는 향후 가볍지 않게 규제될 필요가 있다”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거금을 들여 판권 경쟁을 하는 것은 “채널4의 사유화를 주장”하는 이들에게 좋은 명분을 주는 것이라며 이번 거래를 직접적으로 비판한 것이다. 이에 채널4의 제이 헌트 창조부 국장은 BBC의 프로그램을 사는 것이 채널4의 재정에 대한 논쟁과 연결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성공적인 포맷을 사들인 것에 기뻐할 뿐”이라고 반박했다.


결론적으로, 이번 사건에 대한 두 방송사의 시각 차이는 분명해 보인다. 시장논리에 따랐다는 채널4와 공공서비스가 가격경쟁을 심화시키는 것에 문제를 제기하는 BBC. 프로그램 포맷의 개발이 관건이 된 영국의 방송제작환경에서 이번 사건은 포맷 이용을 두고 방송의 공공성과 그에 대한 시장자유주의적 이해가 어떤 충돌을 빚는지를 보여줬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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