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나푸르나, 풍요의 여신을 느끼다

[그 기자의 '좋아요'] 홍석재 한겨레21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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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석재 한겨레21 기자

엄홍길 대장의 ‘휴먼스쿨’에서 보낸 신혼여행


큰 아이 태명을 짓던 때였다.
“네팔, 어때?”
“뭔가 ‘팔이 네 개’라는 말 같지 않아?”
“‘안나’는?”
“아이가 곧 태어날 텐데 ‘아이를 안 낳아?’라는 느낌이 드는데….”
“푸른이는 걸리는 게 없지?”
“그 이름 좋다. 그걸로 하자!”


지금도 그때 얘기를 하면서 웃는다. 주위에 아이 태명을 신혼여행지에서 따오는 이들이 많았다. 우리 부부는 2011년 겨울, 네팔 안나푸르나로 신혼여행을 떠났다. 풍요의 여신이 산다는 곳이다. 큰 아이 태명도 ‘안나푸르나’에서 ‘푸른이’라는 이름을 가져왔다.


여러 신혼여행지를 살폈지만, 아내는 안나푸르나를 가고 싶어 했다. 대학 시절 산악반을 했고, 평소에도 원체 산을 좋아했다. “유럽이나 동남아는 언제든 갈 수 있지만, 네팔은 오히려 특별한 때 아니면 못 갈수도 있어. 지금 가자!” 그때만 해도 국내 네팔행 비행기가 일주일에 한차례만 출발했다. 하필 여유 좌석이 없었다. 결혼 소식을 전했던 지인 가운데 엄홍길 대장이 있었다. 엄 대장은 네팔 산골마을에 초등학교(휴먼스쿨) 짓기 사업을 했는데, 우리 신혼여행 기간과 ‘2호 휴먼스쿨’ 문을 여는 날이 겹쳤다. 그는 “일행에 합류하라”고 권했다. 트레킹을 포함한 일주일간 ‘휴먼스쿨 여정’ 비용이 애초 계획했던 신혼여행 비용과 비슷했다. 그렇게 엄 대장과의 ‘안나푸르나 신혼여행’이 시작됐다.


첫날 타르푸 지역의 ‘휴먼스쿨’ 개소식에서 풍성한 마을 잔치를 즐겼다. 다음날부터 트레킹이 이어졌다. 해발 3200m 지대까지 오르는 코스는 뜻밖에 걷기 어렵지 않은 오르막이었다. 낮에는 호젓한 산길을 아내와 이야기하며 나란히 걸었다. 저녁에는 통나무 숙소 ‘롯지’에서 소박한 저녁을 먹고, 엄 대장 일행들 틈에서 따뜻한 이야기로 축복을 받았다. 안나푸르나의 날씨는 높이를 더해갈 수록 봄-가을-겨울로 변하는 경이로움을 느끼게 했다.


셰르파 족 출신 가이드는 용맹한 네팔 사람들을 말했다. 그는 셰르파 족 가운데서도 목숨을 걸고 등반을 전문으로 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해줬다. 그가 건넨 따뜻한 마늘차, 해발 3000m 높이에서 먹는 물고기 요리, 염소 똥을 연료로 물을 데워 몸을 씻는 샤워기, 말 그대로 ‘쏟아질 듯한’ 밤하늘의 별들…. 특별한 시간, 특별한 공간으로 여행을 떠나는 일을 다시 꿈꿔본다. 풍요의 여신이 마치 우리에게 손을 내밀었던 그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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