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동학대·성폭력 보도 신중에 신중 기해야"

<기자협회·여성가족부 주최 세미나>
적나라한 보도로 2차 피해 유발
성폭력 피해자에 책임전가 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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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동학대와 성폭력 보도로 인한 2차 피해를 방지하기 위해 언론인이 보도 가이드라인을 준수하는 한편 보도의 본질에 대해 깊이 생각해 봐야 한다는 의견이 나왔다.


지난 22일 한국기자협회가 여성가족부와 한국언론진흥재단의 후원으로 제주 서귀포 KAL호텔에서 주최한 ‘아동·여성 권익증진과 아동·여성폭력 2차 피해 방지를 위한 언론의 역할’ 세미나에서는 아동·여성 전문가들이 참여해 아동학대·성폭력 보도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2차 피해 예방을 위한 다양한 해결책을 제시했다.


토론자로 나선 이창호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아동학대 보도와 관련해 △전문성 부족 △피해자 사생활 침해 등을 가장 큰 문제점으로 꼽았다. 이 연구위원은 “아동학대 사건은 대부분 사회부 사건기자들이 많이 취재하는데 말이 안 된다는 지적이 있다. 아동학대 문제가 상당히 복잡해 잘 모르고 취재하면 전체적인 그림을 못 그릴 여지가 크기 때문”이라며 “또 너무나 상세한 보도로 인해 종종 2차 피해가 일어난다. 아동에 관한 취재는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아동·여성 권익증진과 아동·여성폭력 2차 피해 방지를 위한 언론의 역할’ 세미나가 지난 22일 제주 서귀포 KAL호텔에서 한국기자협회 주최로 열렸다.

또 다른 토론자인 송지혜 시사IN 기자도 “2012년 나주 초등학생 성폭행 사건 때 일부 언론사들이 선정적이고 자극적인 보도를 해 피해 아동의 어머니가 언론사에 손해배상청구소송을 한 적이 있다”며 “이후 있었던 칠곡 살인사건 등에서는 보도 태도가 조금 나아졌지만 여전히 일부 언론사에서는 2차 피해를 유발시킬 수 있는 무리한 보도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성폭력 보도와 관련해서도 언론의 잘못된 보도 태도가 도마에 올랐다. 발제자로 나선 법무법인 태평양의 이경환 변호사는 성폭력 보도에 있어 △엄벌주의를 강조하는 문제 △피해자에게 책임을 지우는 문제 △우발적 범행으로 묘사하는 문제 △‘폭력’이 아닌 ‘성’에 집중하는 문제 △적나라한 디테일을 보도하는 문제 등을 지적하며 “잘못된 사회적 통념들이 넓게 퍼져 있어 기자들도 무의식적으로 이를 성폭력 보도에 반영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윤정주 한국여성민우회 미디어운동본부 소장도 “성폭행과 아동학대 사건 보도를 보면 현장 검증까지 방송에 내보내고, 심지어 CCTV 장면이나 일러스트를 활용해 사건을 자세하게 설명하는 경우가 있다”면서 “우리나라는 인터넷으로 몇 십 년 전 자료까지 찾아볼 수 있지 않나. 피해자의 인권을 고려해 보도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를 위해 가이드라인을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하고 널리 홍보하는 것은 물론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창행 여성가족부 권익정책과장은 “경찰 쪽과 협력해 성폭력 사건 언론보도 권고수칙을 준비하고 있다”면서 “언론이 그런 가이드라인에 맞게 보도를 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말했다. 경찰청 성폭력대책과의 윤휘영 경정도 “기자들에게 성폭력 범죄 보도 세부 권고기준이 있는지 아느냐고 물었더니 10명 중 8명은 모르더라”면서 “문제점을 한 번 고민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창호 연구위원은 “과거에 비해 언론사가 많이 생겨났고 경쟁도 심해져 윤리교육이 더욱 강화돼야 할 것 같다”면서 “정부에서도 이 문제를 공론화시켜야 한다. 또 오늘 교육 내용이 계속해서 공유되고 확산돼야 한다”고 했다.


기사 말미에 ‘이 기사는 인권보도준칙 성폭력 범죄보도 세부기준을 준수하고 있습니다’라는 문구를 써 넣어 스스로를 검열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었다. 이경환 변호사는 “기사 끝에 그런 문구를 쓰게 한다면 기자들이 한 번 더 기사를 스크리닝하고 최선을 다할 것”이라면서 “보도 가이드라인을 잘 만드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을 적용할 사람이 필요하다. 기자들이 가슴 깊이 공감하고 피해자의 아픔을 느껴야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이날 사회를 맡은 김성해 대구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도 “‘곡성’이라는 영화에서 ‘뭣이 중헌디!’라는 대사가 있지 않나. 우리도 아동학대와 성폭력 보도에 있어 무엇이 중한지 생각해야 한다”며 “사회적 약자가 좀 더 인간답게 살도록 하기 위해 우리가 보도하는 것 아닌가. 왜 보도하는지, 누구를 위한 보도인지 그 본질에 대해 깊이 생각해봤으면 좋겠다”고 했다.

강아영 기자 sbsm@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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