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언론인 정치 활동은 어디까지 허용되나

[글로벌 리포트 | 미국]국기연 세계일보 워싱턴 특파원

▲국기연 세계일보 워싱턴 특파원

한국의 헌법재판소가 지난 6월30일 언론인의 선거 운동을 포괄적으로 금지한 공직선거법 조항이 위헌이라고 판결했다. 한국의 언론인은 이제 자신이 지지하는 정당이나 후보를 위한 선거 운동에 활발하게 참여할 수 있게 됐다. 헌재의 이번 결정으로 한국에서 정치적 자유가 확대됐다는 긍정적인 평가와 언론의 공정성이 저해될 우려가 있다는 부정적인 시각이 엇갈리고 있다.


언론인의 정치 참여와 정치 성향 문제는 비단 한국 만의 일은 아니다. 언론인의 정치 활동이 보장돼 있는 미국에서도 주요 선거 때마다 이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미국 공화당의 대선 후보 도널드 트럼프는 CNN을 Clinton News Network라고 부르면서 이 방송의 스타 앵커 앤더슨 쿠퍼가 대선 후보 토론회 사회를 보는 데 반대하고 있다.


미국에서 언론과 각을 세우는 쪽은 공화당이다. 미국의 보수 세력은 미국 언론과 언론인이 대체로 ‘진보 편향(liberal bias)’이라는 ‘편향된’ 시각을 갖고 있다. 트럼프도 선거 운동 내내 자신이 진보적인 언론 보도의 희생양인 것처럼 행세해 왔고, 미디어와의 싸움을 통해 골수 보수 세력을 결집해왔다. 트럼프가 미국 언론의 보도 태도를 선거 전략으로 역이용하는 데는 그럴만한 근거가 있다.


미국의 정치 전문지 폴리티코가 지난 4월 백악관 출입기자 72명을 대상으로 정치 성향을 조사했다. 그 결과 자신을 공화당 지지 성향의 기자라고 자인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그렇지만 자신이 민주당원이거나 민주당 지지 성향이라고 응답한 기자는 전체의 25% 가량에 달했고, 무당파 성향이라는 응답자는 13명으로 나타났다. 또 백악관 출입기자의 90% 가량이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 후보가 백악관을 차지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폴리티코가 미국 대선전을 취재하는 정치부 기자 8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별도의 조사에서도 민주당원 정치부 기자는 21%, 공화당원 기자는 8%로 나타났다. 대선 현장을 누비는 이들 기자의 86%가 클린턴 후보의 승리를 예상했다.


미국 인디애나대학 라스 윌나트 교수 연구팀이 1971, 1982, 1992, 2002, 2013년에 실시한 미국 언론인의 지지 정당 조사에서도 민주당이 언제나 공화당을 압도했다. 지난 2013년 조사에서 민주당 지지 기자가 공화당 지지 기자보다 4배 가량 많은 것으로 드러났다. 특히 최근 들어 무당파 성향의 기자가 급증하고, 공화당 지지 기자가 줄어들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 2002년과 2013년 조사 결과를 비교해 보면 민주당 지지 기자는 35.9%에서 28%로 8%포인트가 줄었다. 공화당 지지 기자는 18%에서 7.1%로 급감했다. 무당파 성향의 기자는 32.5%에서 50.2%로 늘어났다. 이는 공화, 민주당의 극한 대결로 두 당을 모두 싫어하는 미국의 유권자가 늘어나고 있는 현상과 일치한다.


그렇지만 진보 성향의 미국 기자가 진보 편향적인 보도를 일삼는 것은 결코 아니다. 언론사별로 기자 윤리 강령이나 보도 준칙 등을 통해 기자의 편향된 보도를 제어하는 시스템을 가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시간주에서 발행되는 일간 ‘홀랜드 센티널’의 제인슨 바크지 편집국장은 자사 기자에게 공화, 민주당의 예비 선거에서 아예 투표하지 말라고 지시했다고 컬럼비아 저널리즘 리뷰(CJR)가 최근 보도했다. 본 선거와 달리 예비선거는 대체로 정당 행사 성격을 띠고 있는 게 사실이다. 미국 언론사는 윤리 강령 등을 통해 기자의 정치 집회 참여, 특정 후보자에 대한 기부, 특정 후보나 정당 지원 활동을 금지하고 있다고 CJR이 전했다.


한국이나 미국에서 언론인은 언론인이기에 앞서 유권자이고, 민주 사회의 시민이다. 그러나 언론인은 직업 의식과 소명 의식으로 자신의 정치적 성향보다는 ‘객관성’과 ‘공정성’에 무게 중심을 둬야 한다는데 미국 언론계가 공감하고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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