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발전과 지진 그리고 동북아 안보

[스페셜리스트 | 외교·통일] 김동진 세계일보 정치부 차장

▲김동진 세계일보 정치부 차장

자연재해는 때때로 인간의 예측을 뛰어넘는다. 그러니 자연 앞에서 인간은 절대 교만해선 안된다.
그동안 지진 안전지대라고 믿었던 한반도에서 지난 12일 강진이 발생했다. 경북 경주시 부근에서 각각 규모 5.1, 5.8의 지진이 연이어 발생해 우리 모두를 놀라게 했다.


다행히 큰 인명 피해는 나지 않았지만 경북·강원 동해안 지역이 활성단층 위에 놓여 있어 언제든 지진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사실을 전 국민이 똑똑히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 지진이라면 그저 바다 건너 일본의 문제인 줄만 알았던 한국인들이 처음으로 지진을 자신의 문제로 느끼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한반도 남부 동해안 지역에서의 지진은 또 다른 위험과 연결된다. 바로 핵공포다. 국내 원전 25기중 무려 19기가 이 곳에 밀집해 있다. 이들 시설이 지진에 타격받을 경우 상상을 초월한 2차 피해가 날 수 있다.


원자력 전문가들은 국내 원전이 수직으로 지하 10㎞ 지점에서 지진이 발생할 경우 규모 6.5~7.0까지 견디도록 설계돼 있기 때문에 안전하다고 역설하지만 어디까지나 이상적인 환경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5년 전 동일본대지진은 이를 잘 보여줬다. 일본은 당시 규모 9.0의 강진과 뒤이어 발생한 거대한 쓰나미가 후쿠시마 원전을 덮치면서 엄청난 피해를 입었다. 국토의 절반이 인간이 살 수 없는 불모지로 변할 뻔 하다가 천만다행으로 최악의 순간만은 피했다. 하지만 지금도 수많은 사람이 고향을 버리고 대피해 있고, 방사능은 계속 유출되고 있다. 일본 정부는 대외적으로 원만하게 원전 사고를 수습했다고 선전하고 있지만 이를 액면 그대로 믿는 일본인들은 그리 많지 않다.


일본의 원전 전문가들은 그간 규모 8.0의 내진설계를 내세워 ‘안전신화’를 부르짖어 왔다. 그러나 막상 사고가 나자 이들은 어쩔 줄 몰라했다. 사건 초기 일본 정부의 대응을 상세히 기록한 책 <관저의 100시간>에 따르면 원전 전문가들이나 도쿄전력 간부진들은 수습 대책을 묻는 정부에 대해 “잘 모르겠습니다”, “못 들었는데요”, “매뉴얼에 없는데요” 라는 말을 되풀이하거나 아니면 긴 침묵만 지켰을 뿐이다. 그들은 설계도상에서 이론적으로 정립된 원자로의 안전성만을 이야기할 뿐 눈 앞의 ‘예상 밖’ 사태에 대해선 무책임한 아마추어들이었다.


이번 경주 지진은 외교안보 분야에서 우리에게 새로운 과제를 던졌다. 동북아 지역은 세계 최대의 원전 밀집 지역이다. 일본은 후쿠시마 사고 후 한때 ‘원전제로’를 표방했지만 지금은 다시 43기를 가동 중이다. 중국은 주로 해안 지역을 위주로 33기를 가동 중이며 20기를 추가 건설중이다.


원자력발전이라고 포장돼 있지만 사실 ‘핵발전’이라고 해야 정확한 표현이다. 세계 최대의 지진대국인 일본 뿐 아니라 한국과 중국도 결코 지진의 안전지대가 아니다. 지진판 위에 세워진 원전은 또 다른 의미의 핵무기라고 할 수 있다.


흔히 비핵화를 군사 영역에 국한해 이해하는데 이제는 그 영역을 민간 영역으로 확대해야 한다. 3국 가운데 어느 한 곳에서 원전사고가 발생하면 그 피해는 결코 한 나라에 국한되지 않는다. 장기적으로 동북아에서 원전을 0개로 만드는 프로젝트를 추진해야 한다. 북핵 6자회담처럼 동북아의 원전 폭증 사태를 막고 원전 긴급 재난시 공동대응하기위한 다자회담이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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