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로 막고 기자 옥죄고…"마지막 자존심까지 무너뜨리나"

부당지시 반발 성명에 사측, 특별감사·징계
KBS 지역총국 기자들 13년만에 상경투쟁
기협 회장단 보복인사 항의 방문 '문전박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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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S가 최근 특별감사와 보복성 인사발령 조치 등 징계를 염두에 둔 행보를 잇달아 보이면서 기자들을 옥죄고 있다.


이에 지역총국서 13년 만에 상경 투쟁을 벌이는 등 기자들의 반발 수위도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정당한 언로까지 가로막은 KBS의 현실을 우려하는 목소리 역시 커지고 있다.


지역총국 기자들의 단체인 KBS전국기자협회 회원 100여 명은 지난 20일 서울 여의도 본사를 찾아 비상총회를 열었다.


‘성주 사드 반대시위 외부세력 개입’ 리포트 제작과 관련해 전국기자협회가 본사의 ‘부당지시’에 반발하는 성명을 발표한 것을 두고 사측이 해당 지역기자들에 대한 특별감사를 진행, 징계 수순을 밟자 항의의사를 밝히기 위해서였다. 광주 대구 대전 부산 울산 전주 창원 청주 춘천 등 KBS지역총국 기자들의 ‘집단 상경’은 지난 2003년 이래 13년 만이다.


▲KBS가 징계를 염두에 둔 잇따른 조치로 기자들을 압박하면서 반발도 거세지고 있다. KBS전국기자협회 비상총회가 열린 지난 20일 서울 여의도 KBS신관 앞 광장에서 이하늬 KBS대구 기자가 발언하고 있다.

이번 상경투쟁은 지난달 19일 KBS 뉴스9을 통해 보도된 ‘경찰, “성주 시위 외부 인사 참가 확인”’ 리포트에서 비롯됐다.


보도국 편집회의 결과 나온 제작 지시를 두고 대구총국에서는 ‘팩트 확인이 안 됐고, 리포트가 부적절하다’는 의견을 전했지만 본사에서는 ‘리포트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KBS의 색깔이 있는데…’ 등의 이유로 리포트 제작을 종용했다. 결국 해당 리포트는 이례적으로 대구총국 취재 기자가 아닌 취재 부장이 직접 리포팅을 했다. 전국기자협회는 다음날 이에 반발하는 성명을 발표했고 이후 KBS 고대영 사장의 감사요청에 따라 관련 기자들에 대한 특별감사가 이뤄졌다.


이하늬 KBS대구 기자는 이날 총회에서 “특별감사가 진행되는 동안 드라마 ‘태양의 후예’ 열 편 만드는 거보다 훨씬 더 큰 피해를 한 번에 회사에 안겨놓고 신변이 무사할 줄 아느냐’는 얘길 들었다. 대구 기자들이 한 일은 그나마 추락해 가던 KBS의 자존심을 조금이나마 세워준 거라 생각한다”며 부당징계 시도 철회를 촉구했다.


송현준 전국기자협회 비대위원장은 투쟁사에서 “기자들은 사실을 써야 된다. 아무리 좋은 취지, 의도가 있더라도 사실이 아니라면 기사로 써선 안 된다. 그렇게 한 것뿐인데 (회사는) 징계를 하겠다고 한다. 우리가 잘못했다고, 우리가 회사의 명예를 훼손했다고 한다. 정말 회사의 명예를 누가 훼손했나”라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우리 기자들을 얼마나 비참하게 만들려고 그러나. 마지막 남은 자존심까지 이렇게 무너뜨리려고 하나”라고 토로했다.


정규성 한국기자협회 회장은 이 자리에서 “오늘 진실 보도, 사실 확인, 현장기자의 의견은 무시한 채 왜곡보도를 강요하고 이제는 징계와 또 특별감사라는 이름으로 여러분을 억압하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언론의 자유를 심대히 위반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들의 우려는 기우가 아니다. KBS는 자사가 30억원을 투자한 영화 ‘인천상륙작전’의 홍보성 리포트 제작을 거부한 통합뉴스룸 문화부 서영민·송명훈 기자를 대상으로 지난 22일 중앙인사위를 열었고 현재 결과 통보만을 앞둔 상태다.


문화부 팀장과 부장이 지난달 29일 인천상륙작전에 낮은 평점을 준 영화평론가들을 비판하는 리포트 제작을 지시했지만 이들이 “편향된 리포트를 할 수 없다” “개별 영화 아이템은 홍보가 될 수 있다”며 거부하자 보도본부는 ‘정당한 취재지시 거부에 따른 취업규칙 위반’을 이유로 징계를 인사부서에 요청했다. KBS 관계자에 따르면 징계결과는 ‘감봉’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KBS는 안팎에서 나오는 비판과 우려에 귀를 막은 채 ‘징계성 액션’부터 취하고 있는 형국이다.


▲한국기자협회 회장단이 지난 17일 정연욱 KBS기자에 대한 부당인사에 항의하기 위해 직접 본사를 찾아 면담요청을 했다가 보안직원에게 제지당하는 모습.

한국기자협회(회장 정규성) 회장단 10여 명이 지난 17일 ‘이정현 녹취록’에 침묵하는 자사 보도국을 비판하는 기고를 했다가 돌연 제주로 발령이 난 정연욱 기자의 인사에 항의하기 위해 직접 본사를 찾아 면담요청을 했지만 KBS는 보안업체 직원을 동원, 본관 진입 자체를 막는 ‘문전박대’로 답했다. KBS는 회장단이 준비한 항의서 수령도 거부했다. KBS시큐리티 관계자는 “문의를 해봤지만 (항의서를) 받을 담당 부서가 없다”고 말했다.


KBS는 인천상륙작전 리포트와 관련해서도 실무자 대표인 KBS기자협회장이 이견 조정을 위한 보도위원회 개최를 요구했지만 묵살했다. 이는 방송편성규약에 보장된 사안인데도 거부한 것이다.


언론노조 KBS본부 관계자는 “데스크의 취재 지시에 반대의견을 표하고 거부했다는 이유로 징계를 한 건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일이다. 편성규약이 멀쩡히 존재하는데도 양심을 짓밟고 지시와 복종이라는 군대식 상명하복을 기자들에게 요구하는 사고 구조를 납득하기 어렵다”면서 “앞서 공방위 간사에 대한 징계를 두고 부당하다는 지노위 판정을 받은 것처럼, 전례가 되지 않도록 끝까지 시시비비를 따질 것”이라고 밝혔다.

최승영 기자 sychoi@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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