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약자 대변하는 기자 되고 싶어"

약국 불법조제 실태 고발한 배지현 한겨레21 교육연수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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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지현 한겨레21 교육연수생

배지현씨는 대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 여러 아르바이트를 했다. 빵집부터 교정교열까지, 직접 용돈을 벌기 위해 사방팔방 뛰었다. 그러다 지인에게서 비교적 시급이 센 약국 아르바이트를 추천받았다. 마침 유럽 배낭여행을 위해 큰돈이 필요한 참이었다. 약대생도 아니었지만 그는 2014년 초부터 1년여 동안 약국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단순히 카운터만 보지는 않았다. 그는 조제실에서 난생 처음 약을 조제했다. 불법이었지만 그때는 몰랐다.


지난달 초, 배씨는 한겨레21의 교육 연수생으로 선발됐다. 연수생은 6주 동안 멘토 기자의 교육을 받으면서 독자적인 기획 취재를 할 수 있었다. 그는 첫 발제 시간에 약국의 불법 조제 아르바이트 실태를 고발하는 르포를 쓰겠다고 제안했다. 선배들이 체험형 기사가 스타트를 끊기에 쉽고 적절하다고 했던 말이 생각난 것이다. 반응도 좋았다.


“사실 약국 불법 조제 문제를 고발하는 기사는 1990년대부터 종종 나왔지만 내부 고발은 없었던 상태였거든요. 스스로 불법을 저지른 사람이 얘기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죠.”


그는 바로 다음날부터 아르바이트를 구했다. 최근의 실태를 점검해보기 위해서였다. 다행히 이전에 일했던 경력 때문인지 3군데에서 면접을 보러 오라고 했다. 그는 3일 동안 각각 다른 약국에서 일하며 불법 조제 실태를 파악했다. 물론 예전과 달라진 건 없었다. 다만 단순히 아르바이트를 하는 것과 잠입 취재를 하며 아르바이트를 하는 건 차원이 다른 일이었다. 약 위치를 외우고 조제를 하면서 동시에 미리 만든 약 봉지의 개수 등 인상적인 것들을 외워야 했다.


“화장실을 갈 때마다 휴대폰 메모장에 옮겨 적었는데 그것도 한계가 있더라고요. 몰래 사진까지 찍으면서 아르바이트를 하려니 정신이 없었죠. 경력도 많은데 왜 이렇게 일을 못 하냐는 핀잔까지 들을 정도였어요.”


그렇게 꼬박 3일간의 경험을 그는 기사에 녹였다. 문제는 예전에 아르바이트했던 기억이 확실하지 않은 것이었다. 배씨는 당시 약국에서 함께 일했던 친구들을 다시 만나 인터뷰를 하며 기억을 되살렸다. 기억은 쉽게 살아났다.


“사실 그때도 죄책감이 심했거든요. 심혈관약인 미카르디스를 실수로 잘못 건네줘서 마음 졸인 적도 있었고, 점심을 먹을 때마다 자주 얹혔을 정도로 스트레스가 심했죠. 그 기억은 쉽게 잊히지 않더라고요.”


원고지 40매 분량의 기사는 그렇게 탄생했다. 선배들의 손을 거쳐 체험기 수준의 글이 그나마 기사가 됐다며 배씨는 겸손을 떨었지만 생생한 경험 때문이었는지 그가 쓴 기사는 포털 사이트 다음의 메인에 올랐다. 그 밑에는 ‘잘 몰랐는데 주의해야겠다’는 댓글을 포함해 ‘자기도 피해자였다’는 사람들의 고백이 쏟아졌다. 약사들에게는 항의성 메일이 왔고, 보건복지부에서는 실태 점검을 하겠다고 발표했다.


“준비가 안 된 상태에서 제가 쓴 기사가 이슈가 되니 두려운 마음이 컸어요. 하지만 다른 아르바이트생의 고백을 보면서 그래도 잘 썼다는 생각을 했죠. 복지부에서는 아직 실태 점검은 안 하고 있는데 같이 대안을 마련해서 잘 풀어나갔으면 좋겠습니다.”


그의 연수 기간은 지난 12일로 끝났다. 그는 짧은 기간 기자의 삶을 살아볼 수 있어 좋았다고 했다. “생각보다 힘들었지만 매력이 많은 직업인 것 같아요. 아쉬운 마음이 크지만 아직은 부족하니까 더욱 열심히 준비하겠습니다. 언젠가는 목소리가 작은 사람들을 대신해주는 정식 기자가 되고 싶어요.”

강아영 기자 sbsm@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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