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미 좌·우파 힘 겨루기에 지역통합 멀어진다

[글로벌 리포트 | 남미]김재순 연합뉴스 상파울루 특파원

▲김재순 연합뉴스 상파울루 특파원

남미에서 작년 말부터 불기 시작한 우향우 바람과 좌파 정권의 상대적인 위축이 지역통합 노력에 균열을 만들고 있다. 유럽연합(EU)을 본떠 ‘하나의 남미’를 구축하자는 공감대 아래 남미에서는 그동안 크고 작은 통합 작업이 진행돼 왔다.


“남미의 문제는 남미 스스로 해결한다”는 기치 아래 2008년에 남미대륙 12개국이 모두 회원국으로 참여하는 남미국가연합이 창설됐고, 남미공동시장(메르코수르)을 중심으로 단일 경제블록을 만들자는 구상도 나왔다.


남미국가연합 12개 회원국이 주민의 자유로운 이동에 합의하고, 메르코수르 회원국들이 자동차 번호판을 통일하기로 한 것은 매우 중요한 실천적 행동으로 평가 받는다.


이런 과정의 배경에는 1990년대 말부터 남미를 뒤덮은 ‘좌파 대세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한때 남미에서는 12개국 가운데 10개국에서 좌파가 집권할 정도로 정치적 동질성을 유지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는 남미 국가들이 지역 현안에서 호흡을 맞추는 모습을 보기 어려워졌다. 정치적 이념에 따른 갈등과 편 가르기가 앞서면서 지역 국제기구들의 기능은 사실상 마비 상태다.


요즘 남미에서는 메르코수르의 순번의장을 정하는 문제가 주요 갈등 이슈 가운데 하나다. 브라질, 아르헨티나, 파라과이, 우루과이, 베네수엘라로 이뤄진 메르코수르는 회원국이 6개월마다 돌아가며 의장을 맡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다.


여기에 브라질과 아르헨티나, 파라과이의 우파 정권들이 이의를 제기하고 나섰다. 정치·사회적 혼란과 극심한 경제난에 인권탄압 비난까지 받는 베네수엘라에 순번의장을 맡겨선 안 된다는 것이다. 파라과이는 베네수엘라에 대해 회원국 자격 정지 등 제재를 가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제기했다.


베네수엘라는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외교장관은 베네수엘라를 흠집 내려는 우파의 일방적인 주장이자 국제관계의 원칙을 깨뜨리는 것이라고 불쾌감을 표시했다.


중도좌파가 집권하는 우루과이는 베네수엘라 편을 들고 있다. 결국 순번의장 문제로 ‘브라질-아르헨티나-파라과이’와 ‘우루과이-베네수엘라’로 갈라진 셈이다.


대통령 탄핵정국이 계속되는 브라질은 남미 최대 국제기구인 남미국가연합 사무총장과 언쟁을 벌이고 있다.
남미국가연합의 에르네스토 삼페르 사무총장은 지우마 호세프 브라질 대통령에 대한 탄핵 추진 이후 “브라질에서 민주주의 시스템이 붕괴하는 상황이 조성되면 회원국 자격을 정지시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삼페르 총장은 메르코수르 회원국들이 순번의장 문제로 갈등을 빚는 데 대해서도 “회원국이 돌아가며 순번의장을 맡는 것은 지역통합 과정의 안정성과 연속성을 위해 필요한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미셰우 테메르 대통령 권한대행이 이끄는 브라질 우파 정부를 향해 ‘베네수엘라 때리기’를 자제하라는 말도 했다.


작년 말부터 이어진 선거를 통해 남미에서 ‘좌파 대세론’은 침몰하고 있다. 작년 11월 아르헨티나 대선에서 중도우파 야당 후보가 승리했고, 12월 베네수엘라 총선에선 중도보수 야권이 압승을 거뒀다. 브라질에서는 2003년부터 계속된 중도좌파 노동자당 정권이 밀려났다. 올해 4월 페루 대선은 우파 후보의 승리로 끝났다. 10월 브라질 지방선거는 좌파 진영의 고전이 예상된다.


남미에서는 당분간 우파 정권의 강세 속에 세 회복을 노리는 좌파의 반격이 거셀 것으로 보인다. 지역통합을 위한 에너지를 모으기가 쉽지 않을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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