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 참전 피아니스트 세이모어 번스타인

[스페셜리스트 | 문화] 김빛이라 KBS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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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빛이라 KBS 기자

“이건 이제 과거의 일이죠. 우리에겐 삶을 축복해야 할 우선권이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어요. 우리는 ‘현재’를 살아야 하고, 할 수 있는 한 최대한으로 삶을 축복해야 하는 거예요.” (“It’s in the past now. And I help my peoples also to understand, one of the priorities of living is to celebrate life. We have to be in the present and celebrate life as much as you can.”)


잊지 못할 인터뷰였다. 한창나이에 전장에서 죽음의 문턱을 수백 번 오갔던 아흔의 피아니스트는 수 십 년간 간직해온 한국전쟁 당시의 일기장을 펼쳐 보이며 말했다. 조심스럽게 꺼낸 일기장엔 매일매일의 유서로 가득했다. ‘죽음의 문이 열리는 것 같다, 살아서 돌아가지 못할 것 같다, 이미 천국에 닿은 게 아닐까….’ 음악가로의 꿈을 펼치던 미국인 청년은 이역만리 한반도의 전쟁터에서 그렇게 오늘이 생의 마지막인 일기를 써내려갔다.


다큐멘터리영화 <피아니스트 세이모어의 뉴욕 소네트>의 주인공을 만났다. 6·25전쟁 참전용사들을 위한 연주를 하러 우리나라에 오는 그의 이야기를 직접 담을 수 있단 생각에 가슴이 뛰었다. 이선 호크의 첫 연출작에 담긴 세이모어 번스타인의 모습은 정말 인상적이었다. 화려한 무대에서 부와 명예를 누리다 돌연 은퇴를 하고 스튜디오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백발의 음악가. 무대는 떠났지만 지금도 음악을 하며 행복해하고, 젊은 시절 참전기를 털어놓다 눈물을 흘리지만 이내 웃는 모습, 뭔가 달랐다. 식사자리에서 우연히 만난 번스타인으로부터 ‘지금까지 연기를 하며 배운 것보다 더 많은 걸 배웠다’고 말한 이선 호크처럼, 나 역시 짧은 인터뷰에서 전율을 느꼈다.


편안해 보이는 표정, 하지만 단단한 어투에서 열정과 여유가 동시에 느껴졌다. 그 두 가지 사이에서 평형을 좀처럼 찾지 못하는 요즘,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현답을 얻었다. 나이가 들어갈수록 예술가로서의 기쁨에 더 탐닉하게 된 음악가는 무대 위의 화려한 은퇴 연주회가 부럽지 않을 것이다. 삶을 오롯이 살아내려는 순수한 열정이 만들어낸 오늘날의 번스타인은 그 자체로 더욱 빛났다. 그러고 보면 나이가 들수록 욕심은 버릴 것이 아니라 꼭 지키고 있어야 할 덕목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하나라도 더 갖고자 하는 탐욕이 아니다. 후회 없는 하루를 살아내려는 욕심은 절대 잃어버리지 말고 가져가야 할 열정이리라. 그러한 열정의 욕심이 젊은이들에게 삶을 사는 작은 힌트를 주는 게 아닐까.


“얘들한테 ‘나를 말리지 마라’ 그랬어요.” 30도를 웃도는 7월의 어느 날, 대학교 캠퍼스 벤치에 앉은 할머니가 대본을 외우고 있다. 카메라 앞에 선 어르신도, 메가폰을 잡은 어르신도 마냥 즐겁다. 감독, 배우, 연출 모두 일흔을 넘긴 어르신들로 이뤄진 영화 촬영현장이었다. 단 몇 분짜리 영상, 영화라 말하기에도 쑥스럽다며 손사래를 쳤지만, 입가에 떠나지 않는 웃음에서 행복이 오롯이 느껴졌다. “아니 내 평생 직장 다니느라 하고 싶은 거 못했는데, 누가 나를 말려요.” 뉴스용 인터뷰를 위해 꺼낸 작은 마이크, 촬영용 카메라에까지 관심을 보이며 우리를 놓아주지 않았다. TV드라마에서 나오는 노인들, 그건 진짜 우리들의 이야기가 아니라며, 직접 카메라를 들고 나선 어르신들을 만나니 다시 또 가슴이 뛰었다. 현재를 살되 열정을 잃지 않으려는 순수한 욕심. 어르신들의 연륜과 지혜가 반짝이는 다양한 이야기들을 더욱 많이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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