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소설 '싸드', 2016년 현실의 사드

[글로벌 리포트 | 중국]예영준 중앙일보 베이징 특파원

▲예영준 중앙일보 베이징 특파원

별로 자랑할 일은 아니지만 사실대로 고백하자면 이렇다. 나는 고고도미사일방어(사드)체계란 용어는 어렴풋이 알았지만 그것이 심각한 우리 일이 될 줄은 생각도 하지 못했다. 작가 김진명의 소설 <싸드>를 읽기 전까지는 정말 그랬다. 그건 나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대부분 국민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그 소설이 나온 게 2014년 8월이다. 미국과 중국 당국자들이 제각각 분명한 자기 입장을 밝히기 시작했고 정부는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을 때다.


소설을 읽은 독자들이 늘어나면서 사드를 배치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세간의 논란이 증폭되어 갔다. 국민의 판단 근거는 오로지 소설에서 얻는 정보 밖에 없었다. 돌이켜보면 소설에서나 있을 법한 이야기가 21세기 문명국가에서, 그것도 언론자유가 보장된다는 대한민국에서 벌어진 현실이다. 다음은 필자가 2014년 10월에 <중앙일보>에 쓴 칼럼의 일부다.  


이런 혼란을 정부가 부추기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미국 당국자들의 발언은 “괌에 있는 1개 포대를 한국에 (이동) 배치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는 정도로 구체적이다. 중국은 관·민 가리지 않고 기회 있을 때마다 “사드 배치는 한·중 관계에 심대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란 시그널을 보내오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 정부는 “공식이든 비공식이든 미국과 협의한 적은 없다”면서도 “만약 배치가 된다면 안보와 국방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변죽을 울린다. 전문가 토론회나 언론을 상대로 한 배경 설명 등은 실종 상태다. 그러니 국민들은 헛갈린다.


그런 상태가 2년 가까이 계속됐다. 북한의 4차 핵실험을 계기로 무성하던 논란에 종지부를 찍고 정부가 입장을 확정했지만 여전히 국민들은 혼란스럽다. 여론은 찬반으로 갈렸고 국회도 갈팡질팡이다.


어찌보면 정부의 자업자득이란 느낌이 된다. 정부는 지난 2년 동안 소설책 한 권에 적힌 정보 이상을 제공하지 않았다. 국민들을 상대로, 혹은 여론을 반영하고 형성하는 언론이나 국민의 대의기관인 국회를 상대로 한 설명도 없었다. 이유는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정부 스스로가 입장을 정하지 못해 시간을 끌었거나, 그게 아니면 이미 입장은 정해져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큰 나라 눈치를 보느라 쉬쉬하고 있었다는 얘기가 된다. 사드에 결사반대하는 중국을 상대로 최대한 전략적 모호성을 견지하며 때를 보려 했는지는 모르지만, 그게 지나쳐 실기(失機)한 게 아니냐는 아쉬움이 크다. 다시 2년 전 칼럼의 일부를 인용해보자. 


만약 사드 배치가 우리 안보에 필수적이라면 눈치를 보거나 할 일이 아니다. 다만 우리가 왜 사드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지 중국에 설명하고 설득하는 과제가 남을 뿐이다. 그게 안 된다면 여태껏 전략적 소통의 토대를 구축하지 못했다는 방증이 된다. 중국 시장만 바라보고 돈 벌 궁리만 할 게 아니라 전략적 소통의 공간을 넓히고 전략적 이해의 공통분모를 찾는 일을 일찌감치 서둘렀어야 했다는 거다. 시진핑 정부가 한·중 관계에 공을 들이는 건 한국의 투자와 기술이 아쉬워서가 아니라 그들의 대외 전략에서 차지하는 한국의 가치 때문이다. 사드 논란을 통해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에 의존해 온 이분법적 구도가 더 이상 통용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명확해졌다.
대외관계 못잖게 걱정스러운 건 국내 여론이다. (중략) 국내에선 찬반 양론으로 나뉘어 한바탕 홍역을 치를 것으로 보인다. 제아무리 기밀이 필요한 안보 현안이라지만 이미 소설책에서까지 미주알고주알 정보가 다 나온 마당에 정부의 설명은 턱없이 부족했고, 밀실에서만 논의가 이뤄진 데 대한 대가일 것이다. 지금 이대로라면 중국을 설득하기는커녕 제 나라 국민도 설득하지 못할 판이다.


흔히 말하기를 외교는 국내 정치의 연장이라고 한다. 외교 현안을 처리하는 데 있어 나라 안에서의 정당성 확보나 의견 수렴에 실패하면 외국을 상대로 한 교섭에는 더더욱 성공하기 힘들다. 자기 나라 국민을 상대로 한 설득에 성공하지 못하는 정부가 외국 정부를 상대로 한 설득에 성공하기를 어찌 기대하겠는가. 지금 사드가 꼭 그런 형국에 빠진 느낌이다. 앞에서 인용한 2년 전 칼럼 제목은 <사드, 국민 설득이 먼저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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