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사기관 탓 말고 언론도 반성해야

[편협, 여론조사보도 세미나]
대표성 있는 표본확보 불가능
휴대전화 안심번호 활용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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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13 총선에서 참패한 것은 여당도 아닌 여론조사, 언론이라는 말이 있다. 여론조사 업체가 신빙성이 떨어지는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언론은 이를 경쟁과 흥미에 초점을 맞춰 재생산하면서 민심의 변화를 제대로 읽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무책임한 조사 기관, 언론, 정치권 때문에 이 같은 결과가 나왔다고 질타했지만 문제점은 여전히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다.


지난 20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19층 매화홀에서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주최로 열린 ‘선거 여론조사 및 보도개선 세미나’는 이 같은 문제의식에서 열렸다. 학계와 언론계 관계자들은 문제점이 개선되지 않는다면 내년 대선에서도 민심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을 것이라며 냉정한 진단을 통해 관계 법령을 개정하고 전문 인력을 육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 20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 19층 매화홀에서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주최로 ‘선거 여론조사 및 보도개선 세미나’가 열렸다.

비과학적인 표본 추출은 그 중에서도 가장 개선될 점으로 꼽혔다. 발제를 맡은 김형준 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교수는 “여론조사가 틀릴 수밖에 없는 몇 가지 한계가 있는데 가장 큰 것이 비과학적 표집방식”이라며 “확률분포도 아니고 세대별로 할당해서 자료를 수집하는데, 특정 세대에는 가중치까지 둔다. 그건 여론조사가 아니다”고 지적했다.


신창운 덕성여대 사회학과 초빙교수도 “대표성 있는 표본 확보가 거의 불가능한 상태”라며 “할당추출 대안을 마련하되 직업, 학력 등 변수를 보완하고 재통화를 통해 응답률을 올리는 것이 급선무”라고 진단했다.
김현경 MBC 논설위원은 “구체적으로 조사 기관의 실사 시스템에 대한 대규모 점검이 필요한 것 같다”고 말했다.


휴대전화 안심번호를 활용해야 한다는 주장도 이 과정에서 제기됐다. 김형준 교수는 “최근 가정에 유선전화를 갖고 있는 집이 얼마나 되느냐”며 “그러나 총선에서는 조사 기관이 안심번호를 활용해 조사하는 데 굉장한 제약이 있다”고 지적했다.


이동우 YTN 보도국 취재1부국장도 “언론에서 실시하는 여론조사는 안심번호를 쓸 수 없어 거의 산사태 수준의 결과가 나왔다”고 말했다.


홍영림 조선일보 여론조사 팀장은 “이번 총선에서 휴대전화 안심번호를 쓰지 못하도록 정치권이 막은 것을 지적하지 못한 건 언론의 실수”라면서 “하지만 근본적으로 중요한 건 비용이다. 어디 가서 말하기도 창피한 수준의 비용으로 질 좋은 결과가 나온다는 것은 말도 안 되고, 언론부터 이를 반성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여론조사의 정확성에 대한 보다 근본적인 문제도 제기됐다. 현행법으로 선거 7일 전으로 규정된 여론조사 공표 금지 기한을 폐지하거나 최소한으로 단축해야 좀 더 정확한 예측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신창운 교수는 “휴대전화 안심번호를 집 전화와 결합할 수 있는 법 개정이 이뤄져야 하는 것은 맞지만 그것만으로 충분하다는 인식은 성급하다”면서 이 같이 주장했다.


김형준 교수는 “미국의 경우 선거 전날 여론조사 기관들이 일제히 결과를 발표한다”면서 “그래야 능력이 없는 조사기관이 자동으로 퇴출될 수 있다”고 말했다.


오일만 서울신문 논설위원은 “조사기관에 대한 감시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면서도 “시장에 의해서 퇴출되는 게 우리나라 현실에서 과연 가능한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언론 보도에 대한 따끔한 지적도 있었다. 김형준 교수는 “언론이 부정확한 여론조사 수치를 제목으로 뽑아내고 조사방식과 완전히 다른 해석 기사를 쓴다”면서 “민심을 편향적으로 끌고 갈 위험성이 있다”고 비판했다.


신창운 교수는 “11년간 중앙일보에 있으면서 언론과 여론조사는 태생적 불화가 있음을 느꼈다”며 “언론의 보도 행태와 여론조사는 함께 가기 힘들 것”이라고 한계를 인정했다.


언론 보도의 왜곡을 조금이라도 줄이기 위해 여러 개선방안들이 제시되기도 했다. 언론기관 내에 여론조사보도심의원회를 구성하고 여론조사전문기자를 양성해야 한다는 주장부터, 여론조사가 정확하다는 환상에서 벗어나 분위기를 파악하고 전달하는 용도로만 제한적으로 사용하자는 주장이 그것이다. 또 블로그나 SNS 등 대체 미디어를 발굴해 여론조사의 대안으로 활용하자는 방안도 제시됐다.


임석규 한겨레 총괄기획 에디터는 “최고의 온라인 인프라를 갖추고 있는 만큼 무선전화를 넘어서 더 과학적이고 비용도 덜 들 조사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강아영 기자 sbsm@journalist.or.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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